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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22. 2019

나는 그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안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나 그 사람 알아’, ‘그 책 알아’, ‘거기 알아’라고. 안다는 것은 얼마큼을 의미하는 걸까. 얼마큼을 알아야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을 예로 들면 얼굴을 알고 이름을 알면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만나보고 대화를 나눠봐야 안다고 할 수 있으려나. 그것도 아니면 속 깊은 얘기까지 나누고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까지 알고 있어야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그럼 책은? 한번 읽은 책은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읽고 다 이해를 해야 안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알면 아는 거지.  


엄마는 종종 아빠에게 “내가 당신 속을 모를까 봐?”라고 했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억울하고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아빠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는 것이 아니라 그저 넘겨짚을 뿐인 듯 보였다. 엄마는 나에게도 “내가 너를 몰라? 너는 엄마 손바닥 안이지.”라며 진짜 내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기라도 하듯 말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내 마음을 몰랐다. 


나는 남편의 표정만 봐도 기분을 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대화 도중 갑자기 말이 없어질 때가 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 말고는 다른 표정들도 사라진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뭐 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구나. 도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내 기분도 한순간에 상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건 뭔가 생각이 날 듯 말 듯한데 잘 생각이 나지 않을 때의 표정이었다.  


남편도 마찬가지로 나의 어떤 표정을 보고는 “삐졌지?”라고 물었다. 나는 전혀 아니었고 아니라고 답했지만 남편은 계속 “삐졌는데 뭘. 내가 모를 거 같애?”라고 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가끔 상사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라며 내 말을 끊고는 여전히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나는 생각했다. 안다고? 나 말 다 안 했는데?

또 어느 때는 전혀 내 감정을 모를 것 같은 친구가 “나 그 감정 뭔지 알아”라며 불쑥 내 말에 끼어들어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면 그 감정은 내가 말하려던 감정과는 달랐다. 



혜민 스님은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분리감이 생기고 선입견이 생긴다고 했다. 안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궁금하지 않고 신비롭지 않고 시선이 가지 않기 때문에 나로부터 분리가 되고 선입견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 상대방을 잘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했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상대방의 말은 건성으로 듣게 되고, 표정이나 몸짓을 더 이상 살피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던 책도 다시 읽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문장이 있고 전과 다르게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화도 다시 보면 전에는 스쳐 지나갔던 장면이 크게 보일 때가 있고 몰랐던 등장인물의 표정이 보일 때가 있다. 때로는 느낌마저 새롭다.  


매일 보는 상대라도 오늘 처음 보는 것처럼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대해보면 어떨까.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느 때 표정이 달라지는지, 어떤 말에 특별히 반응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한번 바라봐 보면 어떨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지 않을까. 

 

늘 하던 일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실수가 생긴다. 사람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멀어지기 시작한다. 호기심을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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