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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Oct 18. 2020

기꺼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어른이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모르는 게 없는 줄 알았다. 그리고 무섭고 떨리는 것도 없는 줄 알았다. 근데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모르는 것 천지고, 여전히 어떤 일을 앞두고는 떨리고, 일이 잘못될까 두렵고, 앞날이 걱정도 된다. 근데 이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은 절대 그런 모습을 아이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어른은 언제나 완벽하고 너무나 크고 먼 존재였다.   

   

집과 학교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회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진다. 가까이에서는 상사가 저 멀리에서는 더 높으신 분들이 옛날 부모님이나 선생님처럼 불안해하거나 약해 보이는 모습 따윈 전혀 내비치지 않으며 항상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어릴 적과 다른 건, 어릴 때는 그 모습이 굉장히 커 보였다면 지금은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거다. 사람들 앞에서는 완벽해 보이려 애쓰지만 그리 완벽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쯤은 이젠 안다. 겉으로는 방대한 지식과 업무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고, 더불어 정확한 비전도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걱정도 많고, 고민도 많고, 때론 불안하기도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알지만 모른 척할 뿐이다.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려 애쓰는 사람에게 굳이 안 그런 거 다 안다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런 말을 건넬 수 있는 기회나 분위기도 주어지지 않지만.     



소위 사회에서 ‘높은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를 위엄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어릴 적 부모님이 ‘뭘 안다고 어른 말에 끼어들어’라며 어른의 세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의 세계가 별거 있나 싶다. 높은 어른의 세계 역시 그럴 것이다. 높은 어른이라고 불안한 게 없고, 떨리는 것도 없고, 걱정도 없으며 만사가 다 내 손안에 있듯 항상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높은 어른이든 그냥 어른이든 어린 아이이든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경험이 좀 더 많다는 것 말고는.      

완벽한 어른으로 보이려 애쓰다 보면 반드시 부작용이 있다. 우선 본인의 몸과 마음이 힘들다. 사람은 절대 완벽해질 수 없다. 불가능한 걸 가능한 것처럼 보이려 하니 당연히 힘들 수밖에. 다음은, 완벽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히면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려 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감추거나 부인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린아이일 때는 그런 어른의 모습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젠 아니다. 딱 봐도 안다. 뭔가 안 그런 척하고 있다는 걸. 뭔가 숨기고 있다는 걸. 그럴 땐 오히려 커 보이던 어른이 아주 작아 보인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진짜 어른’이라 불리는 한 작가의 강의가 있었다. 강의는 훌륭했고 반응도 뜨거웠다. 그런데 강의가 다 끝나고 작은 실수가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좋은 나머지 작가는 즉석에서 참가자들에게 어떤 제안을 했다. 당황한 운영진이 다음 스케줄 상 그건 어렵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무척 머쓱해하며 “아, 그랬나요? 내가 이래요. 집에서도 와이프한테 맨날 쓸데없는 소리 한다고 구박받는데 나와서도 이러네. 나도 참 주책바가지야.”라고 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에 사람들은 “남자들은 다 그래요.”라며 웃어넘겼다. “우리 아빠도 그래서 엄마한테 맨날 혼나요.”라고 말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경직될 뻔한 분위기는 더 화기애애해졌다. 어른의 작은 실수와 이를 대하는 꾸밈없는 태도는 사람들에게 더 큰 호감과 친밀감을 줬다. 게다가 전보다 더 큰 어른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미국 작가 매들린 렝글은 어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어른이 되면 더는 취약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취약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을 때, 실패의 위험이 있을 때,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을 때 등 여러 상황에서 사람은 누구나 취약해질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근데 어른들은 이 취약함을 받아들이길 꺼려한다. 밖으로 드러나는 건 더 두려워한다. 수치라고도 생각한다. 높은 어른일수록 더 취약함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에도 당황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으며 언제나 흔들림 없는 안정된 자세와 의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생각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우러러본다고도 생각한다. 큰 착각이다. 사람들은 완벽해 보이는 어른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도 기꺼이 보여줄 수 있는 어른을 더 크고 높은 어른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런 어른을 더 존경하고 따른다.      


“테이커는 약점을 드러내면 자신의 지배력과 권위가 약해질까 봐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버는 훨씬 더 편안하게 자기 약점을 드러낸다. 그들은 타인을 돕는 데 관심이 있을 뿐, 그들을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 갑옷의 빈틈을 보여주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스스로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명망을 쌓는 셈이다.” <기브앤테이크>에 나온 말이다. 진짜 어른은 자신의 취약점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꾸임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다. 


© ving_n,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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