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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옥 Feb 16. 2021

오지랖엔 센스도 아깝다

예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작사가 김이나가 나왔다. 함께 출연한 한 중년의 남자 게스트는 김이나에게 아이가 있냐고 물었다. 김이나가 계획이 없다고 하자 그는 그러니까 자꾸 우리나라가 저출산이 되는 거 아니냐며 나무라듯 말했다. 이에 김이나는 “제가 국가의 숫자를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니까요”라며 아이를 낳지 않아도 ‘왜 안 낳았냐’는 질문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이런 일들은 참 많다. 어른들과 TV를 같이 보다 보면 어른들 기준에 결혼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결혼을 안 한 연예인들이 나오면 한 마디씩 한다. “아니 쟤는 왜 결혼을 안 해.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이들은 어쩌면 해당 연예인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하면 반가움의 표시로 다짜고짜 이렇게 물을 지도 모르겠다. “왜 결혼을 안 해. 이렇게 잘생겼는데(예쁜데).”      


이런 일은 비단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결혼 안 한 회사 동료는 허구한 날 “왜 결혼을 안 하냐, 못하는 거냐, 안 하는 거냐, 눈이 너무 높은 거니냐.”란 말을 들어야 했고, 맞벌이를 하고 있던 나는 집에서 요리는 좀 하냐, 애는 누가 돌보냐, 남편은 뭐하냐는 질문을 무슨 공식 질문처럼 여기저기서 받았다. 그중에서도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친척들이 최고였다. 왜들 그렇게 밥 해 먹는 걸 궁금해하는지. 밥은 해 먹냐, 남편 아침은 주냐, 애는 더 안 낳을 거냐,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한다, 등등. 그만 좀 하지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럴 때 정색을 하면 세상 속 좁은 사람이 된다. “무슨 말을 못 하겠네. 뭘 이런 걸 가지고 화까지 내” 뭐 이런 상황이 되어 버린다. 그런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최대한 웃어넘기려 해 보지만 얼굴 근육이 경직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김이나의 대답은 참 현명해 보인다. 게다가 당차 보이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함께 한 게스트들이 대선배들이라 ‘아, 네. 그렇죠.’ 하고 대충 넘어갔을 법도 한데 거기서 자기 소신을 뚜렷하게 게다가 정색하는 일도 없이 똑 부러지게 말하지 않았나. 이러기가 참 쉽지 않다. 보통은 갑자기 누군가가 훅 하고 던지는 질문에 아무 대꾸도 못 하고선 꼭 뒤돌아서 아까 이렇게 말할 걸, 이라며 후회하고 그러지 못한 자기 자신을 원망하기 일쑤다. 그러면서 다음에 또 누가 그러면 그때는 이렇게 답해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역시 같은 상황이 되면 다시 머리가 멍해진다.


<모든 관계는 심리학으로 풀린다>에서 저자 류혜인은 이런 듣기 싫은 오지랖에는 굳이 상대방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그러게요”라며 공감의 말을 하라고 한다. 예를 들어 “취업은 했니?”, “그 정도 연봉 받고 어떻게 생활하니?”하면 “그러게요, 저도 취업하고 싶은데 잘 안되네요”, “그러게요, 일은 재미있는데 연봉이 적어서 저도 아쉽네요”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굳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 하는가 싶을 수도 있지만 서로 알맹이 없는 대화를 한 셈이니 상관없다. 그러니 그렇게 대화해 놓고 눈치 보거나 속 썩을 필요도 없다. 대화가 끝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어떤 책에서는 무례하게 굴면 웃으면서 센스 있게 답하라고도 하는데 난 센스도 아깝다 생각한다. 이렇게 여기저기 오지랖에 갖은 참견을 다 하는 사람은 어차피 센스 있는 답을 해도 못 알아들을 확률이 크다. 애초부터 남의 말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니까. 자기 생각을 어필하는 게 목적이라 상대방의 센스 같은 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물론 나도 예전엔 혼자 분해하기도 하고, 뭐라 센스 있는 답을 할까 궁리도 해보고, 가끔은 정색도 해보고 이것저것 다 해봤지만 그 어떤 것도 기대하는 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이런저런 경험 끝에 다 부질없는 짓이고 다 에너지 낭비라는 걸 알고부턴 듣고 적당히 ‘네’라고 답하고 흘려버린다. 뭐라 답하든 어차피 결정도 내가 하고 행동도 내가 하는 거니까. 

    

이렇게 잘 알면서 나도 가끔은 어떤 말을 해 놓고는 스스로 ‘웬 오지랖이야. 나나 잘할 것이지’라고 할 때가 있다. 상대방이 왠지 잘 모를 것 같고, 이건 나만 아는 것 같고, 내가 하는 방식이 더 나아 보일 때다. 그럼 나도 모르게 나서서 알려주고 설명해주고 심지어 직접 해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하고 나선 항상 아, 아까 그러는 게 아닌데, 어차피 내가 말해줘도 그 사람은 그 사람 방식대로 할 텐데, 괜한 참견을 했네, 하는 생각이 뒤늦게 올라온다. 그때서야 상대방이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싶어 지고 혼자서 막 부끄러워지고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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