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 없이 찾아온 막내
2020년 8월 4일 화요일 오후 2시 55분.
평화로운 화요일 오후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늘 낮잠이 밀려오곤 한다.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던 나. 백수란? 낮잠을 즐겨줘야 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좁디좁은 내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어머, 당신 미쳤나봐!!! 당장 가지고 나가!!!" "당장 다시 갖다줘! 절대 안 돼. 미쳤어?"
거실에서 엄마의 고함 소리에 화들짝 잠이 깼다. 계속되는 소음에 방문을 열었다.
"뭔데, 왜 그래?" "이거 봐! 니 아빠를 봐! 니 아빠가 미쳤나봐!!"
그때까지만 해도 정말 몰랐다. "왜, 아빠가 뭘? 무슨 일인데?"
아빠는 안방 침대에 겉옷만 벗어 둔 채 대자로 누워 주무시고 있었고, 그 옆 바닥에는 갈색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니, 주먹만 한 크기의 하얀 강아지가 벌벌 떨고 있었다.
"세상에…"
콧등엔 상처가 있었고, 코는 말라 있었으며 몸에서는 쾌쾌한 냄새가 났다.
"이 백구는 어디서 난 거야?"
엄마 말에 따르면, 아빠는 술을 많이 드신 후 갑자기 병아리를 키우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때마침 모란시장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며 장날에 가셨다가 하얀 강아지를 데려왔다고 했다. 이미 강아지 사진을 엄마에게 보내며 의사를 물었지만, 엄마는 단칼에 "절대 안 돼"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의 강아지는, 사진 속 귀여운 강아지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였다.
26년 넘게 우리 집에 강아지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족 모두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집에 사람이 자주 없었고 아빠는 털 날리는 동물을 가장 싫어했으니까.
엄마는 강아지에 대한 지식도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들고 온 아빠의 행동에 분노하고 있었다.
나 역시 생각이 복잡했다. 모란시장에서 분양되는 강아지 대부분은 ‘파보’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 집에 온 이 아이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솔직히 말해 오래 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엄마, 강아지 상태가 너무 안 좋으니까… 정 주지 마."
처음엔 강아지를 다시 갖다주겠다며 박스를 아빠에게 집어던졌던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말했다.
“강아지 키우려면 사료, 패드, 물그릇, 밥그릇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얼른 사와야 할 것 같아."
결국 나에게 시켰다는 뜻이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벌벌 떨고 있는 백구가 안쓰러워 강아지 용품들을 사 왔다.
“하얀 게 두부 같네. 두부 어때?”
아까 박스를 던지던 엄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강아지 이름까지 지어주셨다.
병원에 데려가니 피부병과 기생충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고, 예방접종도 시작했다. 진돗개를 닮은 진도믹스였는데, 진도 아이들은 대부분 실외배변을 한다더니 두부 역시 100% 실외배변견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저녁으로 가족들이 돌아가며 두부를 산책시켰다. 하루에 적으면 2번, 많으면 4번까지.
산책을 나간 첫날이 생각난다. 줄을 매고 걷던 두부는 처음에는 마치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을 웅크린 채 낯선 길을 바라보는 두부를 향해 엄마는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두부는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엔 내 발곁에 조용히 기대어 앉았다. 그때 알았다. 이 아이는 단지 겁이 많을 뿐이라는 걸.
우리 가족은 어느 순간 “우리는 그냥 유기견 하나 키우는 거야”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아빠 말로는, 처음에는 귀엽고 말짱한 백구를 보고 데려가려 했다고 한다. '그 아이 내가 데려갈 거예요, 진짜예요.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진짜 데려가려고요.' 그렇게 할머니께 분명하게 말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2만 원이라고 가격을 말했고, 아빠는 '금방 다시 올 테니까 그 아이 꼭 남겨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잠깐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돌아왔을 땐, 그 강아지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분양된 뒤였다. 아빠는 '내가 데려간다고 했던 아이 어디 갔냐'며 할머니께 따졌고, 할머니는 '먼저 데려가는 사람이 임자지, 뭐' 하며 시큰둥하게 말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실랑이가 이어졌고, 그 중 남아있던 강아지는 축 늘어진 강아지 하나만이 박스 안에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그 강아지는 이미 나갔으니, 이 아이는 만오천 원에 데려가라"고 했고, 아빠는 5천 원 깎아준다는 말에 실랑이 끝에 결국 이 아이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아빠는 이후에도 수십 번 넘게 말했다.
2020년 8월 4일. 그날 나는 하얗고 작은 아이, 막내 동생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