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보경이와 하루

기대와 설렘,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파동

by 오기우기

2024년 12월 21일 토요일

유기견 보호소는 2층과 3층으로 나뉘어 있다. 3층에는 조금 더 예민하거나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아이들이, 2층에는 비교적 순한 아이들이 생활한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3층 바닥 공사가 진행되면서, 공사 기간 동안 3층 아이들이 모두 2층으로 내려와 지내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보호소에서는 이를 ‘2주간의 겨울방학 캠페인’이라 이름 붙였다.

강아지를 워낙 좋아하는 나로서는, 2주간이라도 따뜻한 공간에서 혼자 사랑받으며 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 캠페인이 좋은 의도로 다가왔다. 나는 바로 짝꿍에게 2주간 임시보호를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고, 예상과 달리 흔쾌히 “2주면 가능하다”고 허락해 주었다.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 짝꿍이지만, 애교 많고 귀여운 외모를 가진 강아지라면 짝꿍의 마음도 조금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래서 ‘보경이’라는 아이를 임보하겠다고 신청했다. 운이 좋게도 보경이를 임보할 수 있게 되었다.

보경이는 심장사상충을 앓고 있어 보살핌이 더 필요한 강아지였고, 사람 손길을 무척 좋아하는 걸 보면 집에서 키워졌던 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고, 더 잘해주고 싶었다. 보경이를 일요일에 데려오기로 약속하고, 오늘은 임보를 위한 준비에 하루를 쏟았다.

집에서 사용할 홈캠, 안전펜스, 강아지 방석과 장난감, 식기, 배변패드까지 하나하나 신중히 챙기며 상상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강아지와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 벅차올랐다.

‘보경이와 함께하는 2주는 얼마나 따뜻하고 즐거울까?’

그땐 몰랐다. 나에게, 우리에게,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오전 10시 40분

드디어 보경이가 우리 집에 오는 날. 평소 주말엔 늦잠을 자던 내가, 오늘은 7시도 되기 전 눈을 떴다. 아침부터 들뜬 마음에 짝꿍과 함께 밥을 차려 먹고, 씻고, 준비를 마쳤다. 차에 애견용 카시트를 설치한 뒤 보호소로 향했다.

보호소에 도착하자, 보경이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보경이는 보호소에 온 이후 한 번도 가정 임보를 간 적이 없어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모른다고 했다. 평소에도 문 앞에 앉아있다 문만 열리면 탈출을 시도한다고, 특히 조심하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긴장했지만, 막상 보경이를 보니 마음이 풀어졌다. 짝꿍을 향해 금세 등을 내주며 다가오는 보경이의 모습은 어쩐지 순하고 착한 아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짝꿍 역시 귀여운 외모에 마음을 열었고, 나도 그 모습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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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경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지만, 차 안에서 보경이는 불안해 보였다. 뒷좌석에서 트렁크 쪽으로 몸을 움직이며 왔다 갔다 했고, 진정되지 않는 듯 초조한 기색을 보였다. 17kg의 중형견인 보경이를 위해 넓게 공간을 만들었지만, 내가 옆에 타지 않은 걸 후회했다.

집에 도착하자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다. 방석 위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조심스럽게 집안을 둘러보는 모습에 ‘적응이 빠른 아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채 20분도 가지 않았다.

갑자기 보경이는 짖기 시작했고, 이어서 끊임없는 하울링이 이어졌다. 문과 안전문을 긁고,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에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왜 이렇게 예민한 아이를 상처 주고 버릴 수 있었을까. 그런 사람들에 대한 원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보경이 옆에 앉아 다독이면 진정되는 듯했지만, 내가 손을 떼기만 하면 또다시 짖고 하울링하며 문을 긁었다. 강아지를 좋아하지 않는 짝꿍은 점점 얼굴이 굳어갔고, 결국 “우리가 데리고 있기엔 무리일 것 같다”고 말하며 부정적인 의사를 드러냈다.

나도 그 말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그래도 처음이니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금만 더 애정을 주자고 설득했다. 몇 시간이 지나 보경이가 잠들자 조심스레 TV를 켰는데, 그 소리에 또다시 민감하게 반응해 짖고 하울링을 시작했다.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반복되었고, 결국 집에서도 목줄을 채운 채 지켜봐야 했다.

산책시간이 되어 보경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산책은 잘했지만, 배변을 하지 못했다. 실외배변을 하던 아이라 집에서는 아직 화장실을 찾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짠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며 위로했지만, 돌아오자마자 거실 한가운데에서 쉬야를 해버렸다. 당황스러움보다 먼저 밀려든 건 미안함이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보경이가 느낀 혼란과 불안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그저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인데, 혹시 보호소가 더 보경이에겐 안전한 쉼터였던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괜히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괜히 데려와 상처만 더 준 건 아닐까.

밤이 되자 우리는 보경이를 거실에 재우기로 했다. 불을 끄고 나서야 겨우 조용해졌고, 다행히 밤새 하울링 없이 조용히 잠들었다. 하지만 우리 방에 누운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불안해 보이던 짝꿍의 표정이 자꾸 떠올랐고, 나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지길, 우리가 보경이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때는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얼마나 다급하고 아찔한 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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