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이 가르쳐준 느린 용기
2024년 12월 20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귀여운 강아지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아이들의 짖는 울음소리는, 나를 반겨주는 소리라고 믿고 싶다. 산책 봉사는 대체로 평일 오후 7시에 시작되지만, 30분 전에 도착해 잠시 여유를 가졌다. 산책을 나가기 전, 한쪽 자리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있자 강아지들이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강아지들이 주는 행복은 따로 있구나’ 싶었다.
어느 보호소나 그렇겠지만, 이곳 역시 다양한 사연을 가진 강아지들로 북적북적하다. 이날은 처음 보는 강아지가 나에게 총총 걸어와 애교를 부렸다. 하얀색 복슬복슬한 장모 털에 사모예드를 닮은 듯한 웃는 얼굴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분명 나와는 오늘이 처음인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다니.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엉덩이를 툭 붙이며 앉아서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조심스레 손을 내밀자 부드럽게 털을 맡기듯 기대오는 그 모습에 마음이 순간 녹아내렸다. 외향적이고 애교 많은 아이를 만나니 오늘은 정말 행운이 있는 날이다.
오늘의 산책 짝꿍은 ‘숙희’라는 강아지였다. 25년간 불법 번식장으로 운영되어 온 부산의 한 곳에서 구조된 허스키였다. 이전에도 숙희를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작은 방 안에서 해먹에만 누워 지내며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혹여 내가 다가가면 놀라거나 무서워할까 봐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숙희가 스스로 방에서 나와 봉사자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산책도 가능해진 것이다. 오늘은 그렇게 숙희와의 첫 산책 날이었다. 정말 설레는 순간이었다.
사실 숙희에게 더 애정이 갔던 이유는, 나 역시 허스키와 비슷한 아이를 9년간 함께했던 추억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하늘이’는 지금쯤 맛있는 밥과 간식을 잔뜩 먹으며 돼지가 되어 있겠지. 숙희와의 첫 산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숙희는 사람이나 다른 강아지에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산책을 좋아하는 듯했다. 아직 눈빛에는 생기가 덜했지만, 처음 봤을 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 보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오늘 숙희는 천천히 걸으며 가끔 웃는 얼굴도 보여줬고, 조심스럽게 주변 냄새를 맡으며 길을 따라 나섰다.
산책을 하며 숙희의 옆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낯선 손길에도 가만히 길을 걷고 있는 숙희의 모습이 너무나 기특했다. 괜히 숙희가 나를 믿어준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수많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버텼을 숙희가 이렇게 천천히라도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봉사는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산책을 마친 후 밥을 주고 다른 강아지들과 놀다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 있었다. 숙희는 산책을 다녀온 후 나에게 따로 다가오진 않았지만, 나는 그런 숙희를 졸졸 따라다니며 애정을 듬뿍 쏟아주었다. 아직 마음의 문이 완전히 열린 것은 아니지만, 오늘처럼 작은 변화를 쌓아간다면 언젠가는 숙희가 먼저 다가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기대는 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오늘 보호소에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애교를 부렸던 그 강아지의 이름은 ‘보경’이라고 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어쩐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나에게 다가왔던 그 따뜻한 시선과 행동 하나하나가 다시금 떠올랐다. 보경이는 하얀 털에 밝은 인상, 외향적인 성격까지 갖춘 정말 매력적인 강아지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는 우리 집 예비신랑인 짝꿍도 이 아이를 보면 마음이 달라지지 않을까? 짝꿍은 평소 강아지에 큰 관심은 없지만, 사모예드나 시바견 같은 외모에는 유독 약하다. 보경이는 딱 그 포인트를 찌르는 아이였다. 언젠가 짝꿍도 이 아이를 보고 미소 지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다음 봉사 땐 보경이와 더 가까워질 수 있기를, 그날은 나의 하루가 온전히 보경이와 함께일 수 있기를 바란다.
서둘러 집으로 향하려고 밖으로 나서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느새 눈이 오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