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날씨의 체력과 파리의 치안
대학교는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회사는 새로 뽑힌 후임에게 인수인계를 완벽히 하고 나니 마음이 이토록 깃털처럼 가벼울 수 없었다.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땐 인수인계서도 없었고, 인수인계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더 많은 실수를 하며 업무를 배워야 했다. 이번에는 후임이 업무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서를 따로 작성해 전달했고, 철저히 도와주었다. 나도 받지 못했던 인수인계였기에, 후임은 어려움을 덜 겪기를 바랐다.
너무 귀여웠던 후임과 함께 일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던 건, 역시 내가 사람을 좋아해서였던 것 같다.
파리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유럽으로 여행을 왔을 땐 혼자였는데, 이번에는 둘이와서 감회가 새로웠다. 9년 지기 친구와 유럽, 그것도 파리로 여행을 오다니! 오랜만에 맡은 유럽의 향기는 그 낭만과 감성 그대로였다. 친구와 함께 여행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불화를 걱정하지만, 이 친구와는 몇 번 국내 여행도 다녀왔고 성격도 너무 좋아서 그런 걱정은 전혀 없었다.
친구는 '다 좋아!' 하는 성격이었다. 나는 MBTI에서 계획적인 J로, 시간을 철저히 정리하는 '프로 여행 계획러'였기에 서로의 성격이 잘 맞았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문제는 바로 파리의 날씨였다. 여름이라 낮 기온이 무려 39도에서 42도까지 치솟았다. 버스에는 에어컨 하나 없이 창문만 열려 있었고, 현지 사람들도 "이런 폭염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다행히 한국처럼 습하지 않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여행에서 체력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나는 20살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며 나름의 철학을 갖게 됐다. '넓은 세계를 여행하려면 다시는 오지 않을 곳이라고 생각하고 유명한 명소는 최대한 많이 둘러보자. 비행기 값이 아까우니 시간을 아끼지 말자.' 이런 마인드로 여행을 계획하다 보니 일정은 항상 타이트했다. 새벽 4시에 나가 밤 12시나 새벽 2시에 돌아오는 날도 여러 번이었다.
친구는 이런 빡빡한 일정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따라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게 정말 고맙다. 그 무더위 속에서 하루하루를 이겨내며 우리는 계속 걸었다. 걸음 수 측정 어플로 확인해보니, 하루 기본 2만 보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날씨 탓인지 우린 점점 말을 잃어갔다. 혹시 서로 짜증을 내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여기 좋다, 그치?' '응, 좋아.' 이런 무미건조한 대화만 이어졌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 혼자 첫 유럽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네이버 카페 ‘유랑’을 통해 동행을 구해 함께 여행했던 적이 있다.
"동행을 구해볼까?" 하고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는 선뜻 승낙했다. 우리는 동행자를 구해 몇 번의 일정을 함께 짰다.
동행을 구하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여러 음식을 다양하게 주문해볼 수도 있고, 여러 명이 뭉쳐 다니면 더 안전하기도 하다.
파리는 치안이 좋지 않다. 파리 지하철에서 친구의 핸드폰을 눈앞에서 도둑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 지하철문이 닫히는 틈을 이용해 친구의 핸드폰을 훔치려던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긴 남자를 만났었다. 다행히 친구는 핸드폰에 안전장치를 해둬서 뺏기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있던 파리 시민들이 가방을 잠그라고 몸짓으로 알려주며 도움을 주었다.
숙소 앞엔 항상 노숙자가 있었고, 지하철에서는 몇 날 며칠 씻지 않은 머리를 늘어뜨린 여성이 우리에게 돈을 달라며 위협하기도 했다. 그때 너무 무서워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동행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총 세 번의 동행을 구해 함께했는데, 그 과정에서 신기한 경험도 많이 했다. 만약 누군가 다시 돌아가서 동행을 구할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또 구할 거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들과 함께 나눈 시간은 단순히 여행의 일부가 아닌 인생의 한 바람으로 남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작은 아주 사소한 ‘쪽지’ 한 통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