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트리뷴(Chicago Tribune) 본사 편집실에는 커다란 현수막에 ‘어머니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그거 확인해!’라고 적어 걸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라도 언론사 기자는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한 마디일 터이다. 실제로, 일선 기자들이 취재와 보도를 위하여 기사 작성에 나설 때에 상급자로부터 가장 흔하게 듣는 소리가 ‘확인했어?’인 것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확인하고 그를 토대로 글을 적었는지를 묻는다. 일이 벌어진 현장에 가서 손수 확인을 하든지 아니면 믿을 만한 복수의 소스를 근거로 분명히 확인을 한 다음에야 책임 있는 기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이 흔들리면 기사를 읽는 독자는 심각한 혼란에 빠질 위험에 처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1950년작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녹음이 우거진 숲 속에서 벌어진 어느 사무라이의 죽음을 놓고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이 모두 서로 다른 증언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사실에 분명히 근거하지 아니하고 상상과 해석이 앞서고 자기 생각이 버무려질 때에 벌어질 수 있는 혼돈과 혼란을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모든 담론은 움직일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하여야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을 생각과 의견이 사실에 앞서 개진되어 두드러질 때에 토대가 되어야 할 사실은 그 힘을 잃고 진실에 이를 방도는 사라지게 된다. 그런 끝에 허무맹랑한 주장과 고집이 판을 치게 된다. 개인적인 생각에 머물 것이면 몰라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칠 담론의 전개가 필요한 사안들에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며 그 확인은 필수인 것이다.
어느 공당의 대표가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자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해석이 정말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 확인되어야 한다. 혹 그 사실이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되지 않았다면 그를 토대로 한 해석은 모두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혹 ‘사실확인’에 관하여 철저하지 않은 채, 섣불리 해석으로 나아간다면 벌어질 수 있는 그 모든 오역과 오해는 어찌할 것인가. 듣자 하니, 그가 언급한 사안은 이미 여러 각도에서 확인된 바 언론과 법원 등의 검증이 이미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덜 확인된 채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되는 일이 이제는 없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이미 정리되고 정돈된 마음에 혼란과 분노를 더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현대 언론에 있어, 기사 작성은 이제 객관적인 사실의 기계적인 전달과 공정한 보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사안과 사건에 대하여 기사와 논평은 얼마든지 기자와 저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른 해석과 담론의 전개를 가능하게 한다. 책임 있는 의견의 개진과 분명한 주장의 표출도 현대 언론에게는 당연히 가능하다. 다만, 기본은 그 모든 생각과 표현이 ‘확인된 사실’에 근거한 것이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처가 중요하고 근거가 필요하며 확인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글쓰기와 말하기는 그래서 위험하다. 언론이든 정치든 우리 사회에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사라져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상의 자유가 물론 소중하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개진함에 있어서는 꼼꼼하고 신중한 사실의 확인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다.
개인 독자로서 기사와 담론을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읽고 접하는 글과 생각들이 과연 ‘사실’에 근거한 담론들이었는지 살피며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디지털문명은 현대인의 삶에 편리함과 풍요로움을 가져왔지만, 정보의 더미 속에 자칫 ‘사실확인’에 소홀하게 만드는 위험도 함께 도사리고 있다.
해석에 앞서 사실을 살펴야 한다. 사실을 토대로만 해석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