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희망이 ‘소방관’이라는 어린이들이 꽤 있다고 한다. 오늘처럼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세상에 거칠고 험한 뉴스들이 흘러넘쳐도, 화마(火魔)로부터 사람들과 재산을 지켜주는 모습이 어린이들의 눈에도 감동을 주는가 보다. 동해안을 할퀴고 지나간 산불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와 상처를 남겼으며 정부와 지역공동체에 수다한 숙제를 안겨주었다. 계절적으로 건조한 공기와 때마침 불어오는 광풍에 급속하게 번져가는 불길을 하루 만에 막아낸 모든 이들의 수고와 헌신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난 수년간 우리에게 여러 모양으로 학습효과를 남긴 ‘안전’을 생각하는 사회 일반의 경계심이 이번 산불로부터 인명과 재산을 지켜내면서 시험대에 올랐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산불지역과 유사한 지리적 계절적 환경을 가진 여러 지역들에서 이번보다 훨씬 큰 피해를 남겼던 사례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이번에는 천만다행의 경우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소방 공무원들과 산림청 특수진화대 등 현장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막아낸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전국 각지로부터 출동하여 강원도의 산불을 함께 막아낸 이번의 경험은 아직도 우리에게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를 이루어낼 희망의 불씨가 남아있음을 확인하는 계기이기도 하였다. 더없이 경쟁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다투기만 하는 세상의 모습 가운데에도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위하여 모두의 가슴과 손길을 모았던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한다. 공동체를 위협하며 다가오는 위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으며 빈부를 구분하지 못하고 좌우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안전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일은 모두가 공평하게 안아야 하는 짐이 아닌가.
'포항지진’도 지역의 공동체가 공평하게 지혜를 발휘하여야 한다. 이를 두고 이념으로 덧칠을 하거나 진영의 정치적 이득을 생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지역에 닥쳤던 우리 모두의 불행이며 모두에게 함께 닥쳤던 피해였음을 기억하면서 이를 어찌 함께 극복하고 새로운 지역공동체로 나아갈 것인지 생각을 모았으면 한다. 이를 잘못 다루어 자칫 갈등과 불화의 빌미가 된다면, 지진으로부터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를 모두가 떠안을 참이다. 책임의 소재를 차분히 가려내고, 피해정도에 상응하는 적절한 보상과 배상방법을 찾아내며, 포항의 미래를 열어가는 회복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일련의 모색과 구상의 길에는 지역 공동체가 상식과 지혜를 모아 우리 지역이 이전보다 더욱 맑고 밝으며 미래지향적인 도시공동체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보통 시민의 눈에는 산불에도 지진에도 담론을 진영의 울타리에 가둘 까닭이 없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불이 난 자리에 달려가 힘을 합친 끝에 그나마 다행스런 결과를 보지 않았던가. 지진으로 무너진 지역의 경제와 심사에 우리도 한번 공동체가 하나가 되어 슬기로운 결과를 맞아볼 수는 없을까. 내 편과 네 편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으며 편을 가른다 하여 더 챙길 이득도 딱히 보이지 않는다. 이제껏 혹 따로 앉아 생각을 모아왔다면, 이제라도 무릎을 맞대고 앉을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지진 담론에 진영의 논리가 끼어들지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의외로 소박하다. 지진도 결국 ‘안전’과 뗄 수 없는 사안이 아니었던가. 커다란 충격과 혼돈을 겪은 터이라 격한 감상과 아픈 기억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지역의 미래를 세우기에 속좁은 진영논리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폭넓게 바라보고 더 멀리 내다보는 시선의 지평을 가져야 한다.
산불을 막아내며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엿본 김에 지진을 딛고 일어서는 길에서 이 지역의 ‘공동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해 본다. 지역은 내 것일 수도 없고 네 것일 수도 없다. 포항은 우리 모두의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