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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받아들이기

by 달자

아침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바라본 창밖에 분홍빛 노을이 가득 퍼져있다. 어찌나 색깔이 고운지 계속 한눈팔게 했다. 사진을 찍을까, 말까 잠깐 고민하다 얼른 아침을 해야겠기에 눈에만 담았다. 주홍빛 노을은 흔하지만 분홍빛은 자주 못 보는 색이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직도 분홍빛이 내 눈에 선하다.


오늘 아침은 김치참치찌개다. 주인공인 김치와 갖은 야채, 고추장 넣어 바글바글 끓이다가 마지막에 참치를 넣었다. 좀 더 끓인 후 마지막 간을 본 순간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저번에 쓰다 남은 참치가 문제였을까?

한 캔을 다 쓰기에는 양이 너무 많아 덜어놓았는데 처음의 신선한 맛은 낼 수 없었는지 원하던 맛이 안 났다. 할 수 없이 맛술과 참치 액젓을 넣어 마무리했다.

김치의 묵은 맛과 깊게 우러나온 달짝지근함이 일품인 그 맛의 기대가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다른 반찬도 맛이 없고 기분이 상한 탓에 맥이 탁 풀렸다.


앉아서 받아먹는 사람은 처음 맛을 보기에 맛있다고 먹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음식을 하는 사람은 수시로 맛을 보기 때문에 처음보다 더 맛있는 맛을 내기 위해 애를 쓴다. 만족스러운 맛이 아닌 음식을 상에 내놓을 때 약간의 미안함이 있다. 내가 한 음식을 믿고 먹는 식구들의 첫술부터 실망을 안기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닌 음식을 먹어야만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먹을 게 딱히 없어서, 그냥저냥 밥 한 끼 때우려고, 음식을 한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등등....

외식이 아니고서야 집밥을 먹을 때는 음식의 맛을 함부로 평가하는 건 암묵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관례이다. 잘못 말했다간 서로 의가 상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본인이 한 음식에 대한 맛 평가를 엄청 많이 기대하는 사람이다. 맛있다고 해줘야 후환이 없다. 하지만 내가 한 음식에 대한 평가는 대쪽같이 명확하게 말해준다. 짠 음식에 대한 맛 평가는 더욱 그렇다.

오늘의 김치찌개의 맛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은 건더기만 대충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배수구로 버렸다. 내 정성이 빨려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면 아버님은 어떠셨을까? 아버님은 밥까지 다 말아 드시고 잔 음식 하나 없이 다 드셨다. 며느리의 성의를 무시하지 못해 억지로 드신 걸까? 그렇다면 감동이다.




가끔 음식을 먹는 일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할 때가 있다. 너무 아파서 입맛이 까끌해도 살려면 먹어야 될 때도 있고, 식욕이 넘쳐흘러 과식할 때도 있고, 오늘처럼 맛이 없어도 차려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꾸역꾸역 먹어줘야 할 때도 있고, 너무 먹고 싶지만 가격이 비싸서 못 먹을 때도 있다.


입에 넣고 꿀꺽 삼키기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 암 투병 중일 때는 밥 먹는 것처럼 세상 고역이 없다. 밥 한 톨도 넘기기 힘들 때, 투병 중인 딸이 가여워 당신도 힘든 몸으로 밥을 차려내신 엄마를 생각하며 식탁에 머리를 박은 채 한 줌을 겨우겨우 먹던 날, 그런 날들이 모여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 비록 토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꾹 참고 먹는 일.. 먹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울 때도 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 수도 있지만 때로는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먹는다. 이렇게 음식이 목으로, 내 위장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니까..




맛없어도 그냥 먹어주면 안 되었을까? 그렇게 티 내면서 맛없음을 표시하는 남편이 미웠다. 알아도 모르는 척 넘어가면 어디가 덧날까? 그렇게 다 버릴 정도는 아닌데.

나도 그렇지만 인간이 절대 바뀌지 않는 게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에 베인 생활습관이다. 어떤 이유로 잠깐 숨어있을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본모습으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상대방의 성향을 내 뜻대로 바꿀 수 없듯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 그래야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된다. 상대방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받아들여야 편안해지는 가족관계가 아이러니하지만 남편과 내가 일심동체라서 평등한 게 아니라 끌어당기지도 밀리지도 않는 팽팽한 두 선이 끊임없이 대립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야 하는 관계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고 싶지는 않지만 지고 싶지도 않은 관계. 나는 엄연히 사랑에는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살다 보니 완벽한 희생은 없었다. 서로가 잘 살기 위해서는 사랑 안에 희생보다 평등이 더 우선돼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평등이 없는 희생은 사람을 구차하고 아니꼽게 만든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



난 이제 남편과 자식들과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오로지 나와 싸운다. 여러 가지 감정과 들쑥날쑥 부대끼며 살고 있다. 나이 들수록 마음이 아프면 몸도 같이 아프다.

처음이어서, 내 맘 같지 않아서, 일에 지쳐서, 더 끌어낼 정신도 없어서 힘들 때, 남들이 살아가는 인생을 보며 그래도 저 밑바닥은 아니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 시간이 스승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스승은 어제이고 내일의 스승은 바로 오늘이라고 했다.


나이 들수록 손톱이 빨리 자란다. 길어진 손톱에 김치 국물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잘라내야지. 못된 마음도 이렇게 잘라내면 좋으련만, 자꾸 자라는 손톱처럼 나의 못되고 어리석은 마음은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는다.


오늘도 웃자. 마음이 살고 싶은 희망으로 꽉 차오를 때까지.. ♡




*이미지 출처는 pixabay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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