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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 허구

by 달자

그녀는 어딘가에서 온 핑크빛을 자아내는 꽃과 노란색을 띤 꽃을 생경하게 둘러보았다. 건강하고 싱싱한 그 꽃은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다. 햇살을 받으며 피어난 생명들에 마음이 북받쳐 자연이 빚어낸 신비로운 빛깔들이 내일이면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녀의 영혼까지 물들도록 깊숙이 빨아들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항상 허구가 있다. 겉으로 표현하는 행동과 말이 속내와 다른 것처럼 그녀가 살고 있는 현실과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막연한 어느 공간에서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 그 복잡한 세계는 전부 허구다.


그녀가 바라는 삶과 그녀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식구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들은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되기는 좀처럼 어렵고 겨우 쫓아가는 정도이다. 그만큼 인간들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공을 들여 살아가지만 현실과 어긋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경험들은 목표설정이 되고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크게 작용한다.


그녀가 살아오는 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가치관이 정당했고, 당연히 그리 살아야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그저 제 고집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마치 그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살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융통성없이 살아온 게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인간관계 또한 그녀가 힘들게 굳이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의 순기능에 의해 자동으로 생성되고 소멸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은 그녀가 몸 닳도록 애써봐야 소용없고 그녀가 범접할 수 없는 운명의 끈이 그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처럼 억지로 붙이고 떼어놓는다고 해서 오래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이 어두운 하늘에 번개가 스파크치듯 그녀의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그녀가 과거에 만났던 사람이 준 상처를 현재까지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상처를 준 사람이 아니라 그녀의 허구이다. 그 허구를 받아들인 것도 내칠 수 있는 것도 그녀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든다. 상처를 계속 덧나게 하는 허구와 상처를 아물게 하는 허구를. 그녀가 어떤 운명의 끈을 잡을지는 아무도, 그녀 자신도 모른다.




그녀의 허구 속에는 욕심이 가득하다. 구멍 난 그릇에 매일매일 욕심을 채워 넣는다. 하루 종일 그 욕심을 붙들고 씨름하다 지치면 자책하기에 이른다. 힘이 없는 다른 허구는 욕심덩어리를 버리라고 중얼거린다.

아마 그녀는 그릇을 가득 채우려고 안간힘을 쓰다 그릇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알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나간 시간도 다가올 시간도 모두 허구이다. 그러면 지금 그녀가 보고 느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겉모습이다. 그녀는 자신의 속사정조차 모르고 지나친다.


그녀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정면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유일한 방법. 거울 속에 비친 분홍빛 꽃이 어느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는 최고로 아름다웠던 분홍빛 꽃이 떠오른다.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는 분명 있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


어느 순간 거울 속의 그녀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녀는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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