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 돌보기
낮에는 햇빛으로 저녁에는 달과 별빛을 보며 흐르는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나를 느낀다. 정체돼 있는 것처럼 보여도 모든 사물이 변하는 건 늙어가는 자신을 보면 알 수 있다. 겉모습은 생기를 잃어가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청춘이다. 다 해낼 것처럼 OK를 외쳐도 금세 다리가 꺾인다. 세상도 나 만큼이나 조용하게 또는 떠들썩하게 변화하고 있다.
나의 일상은 여전히 식구들 끼니 챙기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갈망에 젖어 매일 똑같으면서 다르게 살아간다. 어느 날은 편안하게 어느 날은 불편하게. 나의 불편함은 노크도 없이 조용히 들이닥친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무의식 중에 떠도는 불편한 감정의 기억들.
나의 감정을 받아들이기까지 여러 사연과 글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나와 연결시켜 괜찮아지는 연습을 실천하며 살고 있다. 내 감정을 인지하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연습이다. 그 연습은 내 막연한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 따져보는 것과 같다. 분노, 미움, 증오, 시기, 질투, 비교, 복수, 이런 평소에 좋지 않은 감정이라고 느낀 것들에 자동 반응하지 않고, 좋고 나쁨도 부여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내 감정을 무심하게 읽어보는 것이다. 왜 또 과거의 생각을 떠올리냐고 나를 떠밀듯 채찍질하지 말고 그냥 턱, 나를 놔두는 것이다. 그러면 내 마음이 확장되면서 본능적으로 나의 면역체계가 발동된다. 그 면역체계는 자신을 치유할 수 있는 항체와도 같은 것이다.
나쁘다고 느끼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나 자신을 더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 나쁜 감정이니 얼른 내쫓으려고 반응하지 말라고 한다. 책을 통해 이런 연습을 하면서 차오르는 (나의 경우는 심장까지 벌렁거리며 기억을 재생할 때가 많다) 과거의 기억들을 내치지 말고 그냥 받아들임으로써 결국은 소멸시키는 과정까지 매 순간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연습하다 보니 삶의 활기를 느끼기도 한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받은 고통, 내가 나중에야 깨달은 수치심, 죄책감 이런 것들을 하나둘 씩 머릿속으로 꺼내며 또는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기억들을 흥분하지 않고 그저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연습과 옆에서 친구가 말없이 위로해 주듯 내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느껴보는 것이다. 그런 연습을 하다 보면 그런 기억들이, 힘들게 했던 감정들이 묽어지면서 소멸되어 간다. 그러면 언젠가는 오롯이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될 거라 내심 고대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일상은 거의 똑같아서 이제는 오늘이 며칠인지 내 나이가 얼마인지 오늘이 어떤 특별한 날인지 모든 게 무뎌졌다.
특별한 날이라고 칭하는 것들은 이미 망각해 버렸고 나뿐만 아닌 내 가족들도 마찬가지가 되었다. 그렇다고 슬프거나 마음이 아프지도 않다.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섭섭함과 너를 챙겨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이제는 뾰족한 달이 둥그런 달이 되는 우주의 이치를 알아채듯 세월의 흐름이 나를, 식구들까지도 초연하게 만들었다. 그저 그런 감정들은 잠깐 나를 톡 치고 금세 사라진다. 단조로운 일상으로 하루의 기쁨이 채워지지 않으니 아주 소소함에서 특별함을 찾는다. 하얗게 쌓인 눈 위를 뽀드득 걷거나 눈이 내린 후의 청명한 하늘을 보며 마음을 정화시키거나 날 내려다보는 눈부신 달빛을 보며 아이처럼 소원을 빌어본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세월의 야속함과 무심함을 느끼고, 전부를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인생길에서 나는 어느 한 지점 참여자이면서 관찰자로 남아있다.
오늘은 어떤 감정으로 하루를 보냈는지 나의 가슴에 손을 얹어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감지되는 모든 것들이 이제는 나를 향해 뛰어들라고 말해주고 있다. 내 심장은 아직도 뜨거운데 육신은 방황하고 나른한 상태를 못 견뎌한다. 아직 청춘인 마음을 따라잡기는 어려우니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건강한 몸으로 오늘을 살아가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