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완서 님 / 나목(裸木)
박완서 작가님의 첫 작품 나목(裸木)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집착하는 두 가지, 엄마의 말과 의치가 있다.
전쟁 중 피난을 못 간 두 오빠는 행랑채에 숨어 살다 하필 그곳이 폭격을 맞아 처참하게 죽는다. 그곳에 오빠들을 숨긴 것은 더 깊고 안전하다고 판단한 경아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딸인 경아는 엄마의 이 말과 사지가 찢겨 붉은 피로 낭자한 두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평생 떠올리며 살아야 했다. 자신이 오빠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과 두 아들을 잃고 흘린 엄마의 말 때문에 사는 동안 경아는 전쟁에 대한 공포, 불안감, 죄책감에 시달리며 산다. 그 후로 엄마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경아는 엄마의 따뜻한 손길, 눈길조차 못 받고 멀건 김칫국만 받아먹고 산다. 두 아들을 잃고 깊은 우울의 늪에 빠진 엄마를 예전의 다정했던 엄마로 돌려놓기 위해 엄마의 의치를 기필코 끼워놓겠노라고 다짐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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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 그 지독한 반쪽의 슬픔과 허기증에서 어떻게 하나가 되는 환희와 포만을 얻는 것일까. 어떡하면 가끔 엄마의 딸이 되기를 그만둘 수 있을까. 어머니한테 의치를 다시 끼우게 할 수는 없을까. 그렇지, 의치를 끼우게 해야지, 강제로라도 내가 어머니와 딸인 게 아무리 거북해도 못 면하듯이, 엄마도 거북한 의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으리라.
의치를 끼우게 해야지. 강제로라도, 애원을 해서라도.
그러고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곧이어 살고 싶다로 고쳤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두 상반된 바람이 똑같이 치열해서 어느 쪽으로도 나를 처리할 수 없다.
어머니는 그림자처럼 나와서 문을 열었다. 문득 어머니는 긴 낮동안 무슨 생각으로 소일하였을까가 궁금해졌지만 묻지는 않았다. 나도 어머니의 대답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것도'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무것도 생각 않는 상태, 완전한 허(虛) 이런 걸 나는 짐작도 할 수 없다.
내가 어머니를 미워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어머니의 완전한 허일 수 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머니의 식사하는 모습, 특히 저작하는 추한 입 모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질 안 한 회색빛 머리가 이마며 귓바퀴에 함부로 늘어져 있으나 얼굴에는 별로 주름이 없는 대신 잘다란 주름이 의치를 빼놓은 입술 둘레에 모여 입술을 보기 싫게, 마치 잘못 꿰맨 상처 자국처럼 닫아놓고 있었다.◿
작가는 글 속에서 의치를 뺀 엄마의 입모양을 호물때기라고 표현했다. 검색해 보니 호물때기는 북한말이었다.
의치를 뺀 시아버지의 모습은 더욱더 죽음과 가까워 보이게 하는 서늘함이 있다. 의치의 딱딱 소리, 뼈처럼 하얗고 오차 없이 가지런한 것이 말할 때마다 튀어나오는 공포스러운 느낌을 처음 접했을 때, 그 소리와 장면이 하루 종일 머리에서 맴돌았다.
나이가 깊어질수록 인지 장애로 인해 입은 점점 크게 벌어지고 이가 다 빠져 뻥 뚫린 채로 웃는 모습을 무심코 봤을 때, 정지화면처럼 내 머리에 박힌 커다란 입은 빛도 다다르지 않는 까마득한 동굴 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다른 소설의 어느 작가는 한껏 벌어진 노인의 입은 이제 더 이상 저항 없이 누군가의 강퍅한 손길을 받아들이고 입에서 분비물이 흘러도 제 손으로 닦지도 못하고 뭐가 들어오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모든 걸 받아들이는 굴욕적인 모습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오목하게 앙다문 무표정한 얼굴에서 무의식적으로 어느 순간 뻥 뚫리는 입은 뭐라 표현할 길 없는 인간의 고집과 동물적인 본능사이의 경계선을 오간다.
조금의 의식이나 삶의 의지가 남아있는 경우의 의치는 먹기 위해서 끼워야 하고 먹는 즐거움을 갖게 하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의치를 맞게 끼우려면 손을 써야 하고 씹겠다는 것은 삶의 의지인 것이다.
소천하신 시엄니는 가난하고 고단한 시골 생활을 겪으며 치아 관리는 소홀했던 어른이었기에 내가 결혼했을 때 이미 의치를 끼고 사셨었다. 젊으셨고 삶에 강한 의지를 가진 시엄니의 씹는 소리는 의치가 내는 소리와 함께 내 기억에 남아있다. 질긴 고기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아주 열심히 꼭꼭 씹어드시는 모습을 보고 음식에 욕심이 많으신가 보다, 그때는 그렇게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알츠하이머에 파킨슨병, 갑자기 몰아닥친 병으로 몸져누워 사시다 돌아가실 때까지 시엄니는 동굴 같은 입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셨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흐릿한 동공, 근육은 다 빠져 흘러내릴 것도 없던 앙상한 살가죽은 그저 뼈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고 마지막까지 음식에 대한 집착은 버리지 않으셨다. 벌어진 입으로 남편의 떨리는 숟가락을 모두 받아먹던 시엄니의 삶의 의지, 마지막까지 의치는 시엄니와 함께 했다.
경아는 엄마의 의치를 찾다가 가지런히 정리된, 온기가 사라진 엄마의 서랍장을 보고 이미 오래전에 엄마는 경아의 엄마가 아닌 죽기 위해 살아가는 허깨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경아는 현실과 망상을 오가며 발칙하게 또는 불안한 사랑을 이리저리 떠돌며 부유하다 한 남자의 아내로 정착하게 된다. 전쟁이 남긴 마음의 상처와 끝내 엄마의 따뜻한 손길 한 번 받지 못한 결핍은 치유하지 못한 채 철없던 여인에서 상식적인 여인으로 낯선 듯 망연하게 돌아온 것이다.
시엄니가 불편한 의치로 꼭꼭 음식을 천천히 씹으셨듯, 박완서 님의 문장을 꼭꼭 곱씹어 읽었다. 날 것 그대로인 것도 있고, 푹 익어 머리에 도달하지 않고 몸에 바로 흡수되는 것도 있었다.
음식의 재료를 풀어헤쳐놓은 것처럼 감정을 그대로 주르르 쏟아낸 그 문장들에 취해 주인공인 경아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박완서 님이 경아 같아서 그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