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우뇌와 좌뇌를 자유롭게 각각 사용할 줄 아는 계산사이다. 다른 직업보다 두 배이상의 수입을 보장하기에 힘들게 자격증을 땄다.
조직에서는 그를 2주간 냉동해 그의 뇌 속에 어떤 드라마(스토리)를 입력했고 그는 암호화된 그것을 숫자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그는 이용할 가치에 맞게 훈련과정을 해냈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가 풀어야 할 드라마의 제목은 '세계의 끝'이다. 하지만 그는 암호화된 것을 수치화할 뿐 진짜 내용은 알 수 없다.
조직에서는 인간의 뇌를 실험하고 호기심 가득한 뇌생물학 박사는 사람들의 뇌 속에 여러 회로를 만들고 두 가지 이상의 사고 시스템이 가능한지 실험하게 된다. 하지만 조직과 박사의 의견차이로 그 실험은 멈추게 되고 그의 연구는 조직의 수중으로 넘어간다.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그는 그의 뇌 속에 저장된, 어떤 세계인지 알 수 없는 '세계의 끝'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박사는 그 세계에서 잃어버린 것과 잃어가고 있는 것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내일 정오까지.
그는 과연 무엇을 잃었을까? 그는 생각한다.
그는 사람과 감정을 잃었고, 자신을 부정하며 살아온 젊은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고 지금 남은 인생을 이대로 두고 가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는 삶에 눈물조차 흘릴 수 없는 깊은 슬픔을 느낀다.
남은 시간 동안 그는 전에 많은 도움을 받았던 도서관 사서인 그녀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고 작은 선물도 한다.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일상을 하며 자신의 소지품을 하나씩 태운다.
그는 약속된 장소에 차를 세우고 자신이 당한 일들을 생각하며 모든 이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용서하고 축복했다. 그리고 그는 밥 딜런의 음악을 들으며 서서히 잠든다.
그의 뇌 속에 저장된 '세계의 끝'은 불사의 세계다. 그에게 꿈 읽기라는 업무가 주어지고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림자와 헤어져야 한다. 그림자는 곧 마음이다. 농밀한 감정을 가진 마음을 애초에 잘라내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잘라내고 살아가는 사람은 고요함과 평온함을 영원히 느끼며 살 수 있다.
싸움도 증오도 없는 곳, 그래서 사랑도 없다. 단지 친절함만 있을 뿐.
그림자는 이 마을의 완벽함은 일각수(유니콘)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마음인 그림자를 잘라냈지만 살아가면서 생기는 마음의 찌꺼기를 일각수가 흡수해 바깥 세계로 가져가 몸에 축적하고 그 무게로 인해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죽은 일각수의 두개골에 흡수된 것들을 읽어내고 그것들을 공중에 흩날린 후 남은 두개골은 전시하게 된다. 그렇게 완벽한 듯 불완전하게 마을은 유지되는 곳이니 이곳은 우리가 살 곳이 못된다고 설득한다. 하지만 그는 이 마을은 출구가 없고 높은 벽으로 인해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림자는 사랑과 고통, 기쁨과 슬픔을 느끼며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그를 설득하지만 결국 그는 그림자의 탈출을 도와주고 자신은 남기로 한다.
그는 깨달은 것이다. 이 세계를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형상화한 그 세계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높은 벽과 출구가 없는 그곳에서 그는 어떻게 책임을 다 했을까?
그림자를 보내고 돌아간 세계에서는 고통이 따른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또한 그를 기다리는, 어릴 때 마음을 잃은 여인에게 돌아가 어떻게 마음을 찾아주었을지 궁금하다. 힘들지만 그가 그렇게 할 것임이 글을 통해 느껴졌다.
그의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들어가 보면 사건의 발단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의 뇌는 연구 실험대상이 되었고 그의 무의식에 새겨진 '세계의 끝'에서는 강제로 그림자를 빼앗겼다. 모두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 그로 인해 그는 돌아보게 되었고 '나 자신'에 대한 각성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과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가 인식하는 잃어버린 것과 잃어 가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은 전체적으로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현실적인 고단함과 세밀한 감정을 아주 공감되게 끼워 넣은 탓에 소설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 주인공 '나'의 대사
"나는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그림자를 끌고서,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면서 나이를 먹고, 그리고 죽어가겠지. 내게는 그런 세계가 맞는 것 같아. 마음에 휘둘리고 질질 끌려가면서 살아가는 거지."
아마도 주인공은 황금빛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높은 벽에 부딪히고,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마음(그림자)을 빼앗겨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자신의 나약한 모습이 싫어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애써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고 돌아 결국은 나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들이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 발췌 ⁜
◸내 인생의 찬란함이 지난 35년 동안 93퍼센트나 소모되었다 해도,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나머지 7퍼센트를 소중하게 껴안고서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한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하나의 책임인 듯 생각되었다.
나는 내 인생을 비틀린 채로 내버려 두고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걸 마지막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함을 잃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자 나는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나 고독을 넘어선, 나 자신의 존재를 근원부터 뒤흔드는 높고 큰 너울이었다. 그 너울은 끝없이 출렁거렸다.
내게는 책임이 있어. 나는 내 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세계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버릴 수는 없어. 미안해. 정말 미안하고, 너와 헤어지는 것도 괴로워. 하지만 나는 내가 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해. 이곳은 나 자신의 세계야. 벽은 나 자신을 둘러싸는 벽이고, 강은 나 자신 속을 흐르는 강이고, 연기는 나 자신을 태우는 연기야.◿
두 세계에서 가장 강조한 단어는 나 자신이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나라는 주인공이 두 세계의 어느 교차점에서 어떻게 극적으로 만날지 궁금해하며 읽었는데 책을 덮을 때까지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알아채기까지 여러 번 책을 뒤적거렸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고통스러운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을 때, 용기를 내어 마음이 가는 대로 그것이 옳건 아니건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의 고통에 굴복하는 나약함을 버리고 고통을 뚫는 강하고 책임감 있는 '나'로 거듭난 것일지도 모른다. 고통스럽더라도 그곳을 기어이 뚫고 살아가는 강한 '나'로 말이다.
어쨌든 '세계의 끝'은 무의식의 세계다. 변수가 많고 활동적인 내가 느낄 수 있는 의식의 세계와는 다른 비활동적이고 막연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자 간절히 원했던 바를 무의식에서 발현한 것은 아니었을까?
책을 읽는 내내 작가의 의도를 캐치하려고 애쓰며 읽었다. 다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이고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을 덮은 후 뭔지 모를 여운이 깊게 남았다. 그 뭔지 모를 것을 찾기 위해 바쁘게 머리를 굴렸지만 나의 한계는 어쩔 수가 없다.
때로는 책을 읽는 순수한 행위로 뭔가 답을 찾지 말고 편하게 읽는 습관도 좋을 듯싶은데, 읽는 내내 뭔가 놓친 듯한 느낌에 마음이 조급했다. 장편소설이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무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고 그의 문장은 놓칠 수 없다는 강벽관념에 시달리기까지 했다. 그가 소설 속에서 서술한 여러 가치와 신념에 가닿고자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이것만으로 만족하련다. .. ..
*모든 이미지는 pixabay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