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함의 속박
오늘은 늘 가던 길보다 더 나아갔다. 한참 공원 조성 중이라 지저분하고 흙길이었다. 한적해서 혼자 걷기는 좀 겁이 났지만 알록달록 가을 나무들의 유혹에 못 이겨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왼쪽으로 호수가 잔잔히 흐르고, 풍성하던 잎들을 다 떨구고 봄을 위해 씨앗을 숨겨놓은 나무들도 많았다.
나는 걸을 때 하늘보다 땅을 더 많이 보면서 걷는다. 나뭇잎의 다양한 모양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한 뿌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 사이로 아주 작은 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면 정지한 듯 보여도 카메라렌즈로 확대해 보면 가냘픈 잎들이 바람에 파르르 떨고 있다.
조물주가 이렇게 작게 만들어 놓은 이유는 뭘까? 누구의 눈에도 띄지 말고 오래오래 살아가라고 그렇게 만들어놨을까?
걷거나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확 풀어진다. 그때는 온갖 시름이 별게 아니게 된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 정도로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혼자 걷는 아이에겐 왜 혼자인 거냐고 묻기도 하고 노인에게는 따스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탁 뜨인 공간에서 걷거나 뛰는 행위는 마음을 비우고 몸을 강건하게 하기 위한 공통점이 있어 길 위의 사람들은 평화로운 마음으로 전환된다. 또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주위에 감도는 공기가 사람을 너그럽게 만든다.
착함이란 뭘까? 그 사람 착하다는 말은 예전 같으면 칭찬으로 들었는데 요즘은 너무 착하면 바보라고 한다. 손해 보는 사람, 우유부단한 사람, 만만한 사람, 부탁하면 무조건 잘 들어줄 사람이라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착한 것보다 적당히 이기적인 사람이 잘 살아간다고 한다.
내 부탁을 잘 들어주면 착한 사람이고 거절하면 못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어쩌면 착한 사람은 쿨하지 못한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거절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착함의 속박은 감정과 직결된다. 부탁을 거절하면 나중에 어떻게 얼굴을 볼까 하는 그런 미안함과 찝찝함이 있어 그 또한 감당하기 힘들다.
우스운 일이지만 착함에도 정도가 있어서 착한 사람이 착한 사람에게 이용당하기도 한다. 착함의 기준은 순전히 주관적이어서 자신이 싫은 일을 떠넘기고 좋은 사람이라며 치켜세우기도 한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나보다 관계를 더 중시하는 것일 때가 많다. 나를 먼저 생각하면 굳이 안 해도 될 일이지만 관계를 생각하면 꼭 해야 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착함 그 자체로 태어났다면 머리 굴리지 않고 순수하게 양심껏,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겠지만 하필 나는 보여지는 착함에 반응하는 사람이라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보상을 염두에 두고 행하는 인정욕구에 목말라하는 어른인 것이다. 그러니 양심이라는 것은 필수라기보다 선택이 될 수가 있다.
누구는 그런다. "넌 착해서 탈이야." 이 말은 다분히 착해서 손해 본다는 말일 테지만 속으로는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참으로 착함의 기준은 애매하다. 사람이 늘 착할 수만은 없으므로 일생을 일관성 있게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다.
아마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 마음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농도의 선한 마음으로 부침 없이 대하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작고 귀여운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휘이익- 새를 향해 휘파람을 불었다. 요리조리 목을 움직인다.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하늘과 땅에 메아리치듯 크게 울렸다. 작지만 존재감을 뿜어내는 발랄함과 어디론가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저 새가 별안간 부러워졌다.
생각이라는 것 없이 그저 본능적으로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의 행동에 꼬리표를 붙이고 왜 그랬냐고 일일이 설명을 붙이는 생각의 저주에 시달리는 일이 참으로 지겨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