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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무게

▶ 가벼워서 힘들다.

by 달자
© 달자


난 왜 그토록 더웠던 진하디 진한 초록의 여름이 그리운 걸까? 산책할 때마다 대지를 가득 매운 초록의 물결이 자꾸 떠오른다. 환하게 웃어주던 꽃봉오리들과 살랑살랑 호수를 유영하는 오리 떼, 하늘을 가르며 훠이훠이 날아가는 왜가리들, 여기저기서 움트고 움직이고 살아있는 것 같은 생동력이 그리운가 보다.

온통 초록이었던 것들이 가을로 물들었다가 이제 다 떨어져 앙상한 겨울이다. 바삭하게 말라버렸거나 한두 개 남은 나뭇잎들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찬 바람이 휙 지나가면 힘없이 떨어질 나뭇잎을 애처롭게 바라보다가 빼빼 말랐지만 잔근육이 자글거리는 건강한 노인처럼 꺾일 듯 꺾이지 않는 기세와 하늘로 치솟은 나뭇가지를 보노라면 마음 밑바닥에서 스르르 웅장함이 올라온다.


흐린 하늘에 눈 부신 해가 내 머리 바로 위에 있다. 해의 잔광이 내 눈을 아프게 했다. 해의 오라를 정면으로 바라본 대가일까, 현기증이 몰려와 한참 눈을 감고 그대로 서있었다.

©달자




남천나무의 오묘한 빛깔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나 홀로 보기가 아까울 정도로 화려하면서 다양한 잎새들이 촘촘하게 엉켜있다. 빨간 가지가 열매에 생기를 불어넣듯 불그스름하고 싱싱해 보였다. 색깔이 다 빠진 겨울과 대조적이라 햇살을 받으며 살랑거리는 남천나무의 빛깔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달자 (남천나무)




걷다 보니 고라니가 열심히 뭔가를 먹고 있다. 메마른 겨울 숲에 먹을 게 있는가 보다. 나의 기척을 느꼈는지 천천히 주위를 기울이다 또 천천히 사라져 간다. 잘 살아라!

© 달자 (고라니)




때가 되면 알아서 독립하는 동물들의 세계와 달리 인간의 자식들은 알아서 독립하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나이에 맞는 환경을 잘 조성해줘야 한다. 제 알아서 잘 컸다는 자식들을 보면 부모가 좋은 본보기였을 것이다.

자식들의 표정과 말투를 보면 내가 평소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를 깨닫게 될 때가 있다.


가족과의 대화는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고 한다. 만약 부정적인 감정이 있다면 그 대화는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의 데이터로 상대의 반응을 미리 짐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말을 꺼내면 분명 어떻게 답을 할지 뻔히 알기 때문에 눈길도 주지 않을뿐더러 말을 꺼내기도 전에 건드리지 말라는 압박의 신호를 표정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내 진심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에, 너의 미래가 뻔히 보이기 때문에 늘어놓는 잔소리가 다름 아닌 진심이 담긴 사랑의 표시라는 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다들 그냥 두라고 한다.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더라도 그건 자식 몫이고 본인이 몸으로 깨달아야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이해할 것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한다.


참, 어렵다.

당장 어떻게 될까 봐, 그 당장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늘 노심초사하는 부모마음은 아랑곳없이 늘 청춘인 것처럼, 시간이 무한정 샘솟을 거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식들의 철없음이 애석하기만 하다. 부모의 시행착오를 거치지 말았으면, 시간 낭비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의 기대가 초점 없는 허공에 대고 총질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 달자


풍성했던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의 속살을 보니 사람 피부처럼 갈라져 터진 곳도 있고 푸석푸석 금방 우수수 떨어질 것 같기도 해서 슬쩍 만져보았다. 하지만 겹겹이 쌓인 나무의 피부는 모진 바람에도 잘 버틸 만큼 단단하고 옹골찼다.

나도 곧게,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제 할 일을 어김없이 해 나가는 나무처럼.


죽은 가지에서도 새 잎이 돋아나듯 살릴 건 살리고 버릴 건 버리는, 세상풍파에 도가 튼 그런 나무 같은 어른.

그렇게 자연에 녹아들고 싶다.



© 달자


쉽게 포기하고 도망가는, 매사 그럴 거라 단정 짓고 적응해 버리는, 어제의 다짐을 오늘은 뭉개버리는 가벼운 마음의 무게가, 늘 이런 나라서 더 이상 발전 없을 거라 못을 박고 정작 내 본심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인간이면서, 진심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삶을 대하자고 글까지 쓰면서 이렇게 속 끓이며 한심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 겸손하지도 온유하지도 않은 나라서, 결국은 이런 나를 극복하고자, 햇살은 이길 수 없지만 우뚝 서있는 저 가로등만큼은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하찮으면서 거창한 마음을 풍선 불듯 한껏 부풀려 붕 뜬 가슴을 안고 시름의 둥지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갔다.


© 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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