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의 전염성

▶ 미야베미유키/ 무쿠로바라(단편집 中)

by 달자

불행한 남자 A가 있다. A는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파할 때쯤, 하필 A의 옆으로 술이 취한 청년(C)이 지나가다 눈이 마주친 A를 보더니 갑자기 칼을 들고 달려든다. 서로 대적하다 A는 C가 흘린 칼을 줍게 되고 A는 당황하여 멀뚱히 그저 손에 쥐고 있을 뿐이다. C는 일어나 A를 향해 달려오다 헛디뎌 칼을 향해 푹 쓰러진다. C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이는 분명한 정당방위, 증인도 여럿 있고 당연히 A는 무죄다.

C의 이름은 무쿠로바라. 불행의 씨앗이다.


현실은 어떨까?

동료들의 뇌 속에는 과정을 다 지켜보았음에도 결과만 뚜렷이 남는다. A에게는 살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어버렸다. 'A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사람을 죽였다.'라는.

A는 자신을 슬슬 피하는 사람 속에서 결국 퇴사했고 가정도 잃고 돈도 잃었다.

그리고 A에게 죄책감이라는 커다란 감정이 뿌리내렸다.


A는 정당방위로 인정받았고 무죄판정도 받았지만 실제로는 모든 걸 잃었다. A는 피해자인데도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는 결과가 A의 마음을 들볶고 있다.



또, 한 사람. 가여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형사반장 B가 있다.

A는 가끔씩 살인사건 기사를 들고 B를 찾아온다. 모든 사건의 살인자는 C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C는 이미 A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기사를 들여다보면 각기 전혀 다른 사람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다.

답답한 B는 A의 머릿속을 헤아려본다.

'A로 인해 죽임을 당한 C는 정말로 나쁜 인간이다. 무시무시한 남자다.'라는 사실을 몇 번이고 바깥에서 확인하는 걸로 본인은 도망칠 길을 찾는 건 아닐까? 그래서 흉악범의 발자취를 확인할 때마다 '봐, 또 그놈이 사람을 죽였어, 아직 살아있다, 나는 그놈을 죽이지 않았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B는 A가 가져오는 살인 사건 기사 내용을 자세히 조사해 봤다. 공통점이 발견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지나가다 걸린 아무나 죽이고 싶은 충동성이 모든 사건의 살해동기였다.


모든 실제 사건의 살인자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A의 무의식에 이 사건의 살인자는 모두 C다.

이런 A의 심리가 위통을 겪을 정도로 B는 마음이 쓰인다.


A는 계속 B를 찾아온다.

B는 A를 밀쳐내고 싶은 마음과 돕고 싶은 두 마음으로 아주 무겁게 갈등한다. B는 양심상 A를 거절할 수 없다. 끝내 차근차근 문제에 접근해 보기로 한다.

일단, A가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그 한 사람을 그려보라고 했다. 실체를 끄집어내 그건 허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A가 내민 그림 속에는 형사반장(B) 자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아주 완전하게 똑같이.


B는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말도 안 돼.'


B는 문득 멀리서 걸어오는 동료를 발견한다. 평소에 아주 제멋대로인, 남의 아픔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형사이면서 범죄에 깊이 빠져 나 몰라라 하는, 눈에 거슬리는 인간이다.

B는 갑자기 분노가 솟구쳐 동료에게 돌진한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아빠!'





A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 모두로부터 내쳐진 분함이 뒤섞여 홀로 괴로웠을 것이다. 유일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B에게 A의 무의식이 투영된 것일까?

A는 B를 통해 C를 살려냈다.

B에게 투영된 C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널 죽일 마음이 결코 없었어. 근데 왜 넌 하필 내게 왔지? 너 때문에 난 모든 걸 잃고 외톨이가 되었지. 어떻게 할 거야? 난 널 죽이지 않았어, 네가 살인자야.'


A는 이렇게 된 나를 어찌할 거냐고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기도 하고 엉뚱하게 생명을 빼앗았으니 그 괴로움으로 일상이 깨졌을 것이다.


수도 없이 생각한 끝에 살아난 허구를 향해 자신의 불행을 속으로 끌어안다가 밖으로 꺼냈다가 겉으로는 본연의 선량한 모습을 보였다가 그의 무의식에서는 원통함과 분노를 표출했다. 제발 이 놈을 잡아달라고 말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절대. 절대. 조용히 외치면서 A의 무의식은 B를 향해 달려갔다.



B는 어떤가?

B는 형사반장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에 반해 가정은 직업 특성상 소홀할 수밖에 없다. 자식들은 아빠라고 부르기보다 '반장'이라고 부를 정도다.

카리스마 있는 형사이기전에 한 인간의 내면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으로 가여운 A를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너무 깊숙이 들어간 것일까? A의 불행이, 그가 느끼는 감정이 고스란히 전염된 B는 마음이 아픈 것뿐만 아니라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A가 그토록 잡아달라고 하는 놈의 얼굴이 자신의 모습인 것을 보고 그 충격에 B마저도 살인 충동을 일으킨다. 감정노동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평소에 아니꼽게 생각했던 동료를 보고 순간적인 충동이 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화는 차곡차곡 쌓여서 폭발한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 싸워야 하는 정의로운 직업이라 믿었기에 그것에 반한 동료를 본 순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불안전한 상태의 B는 순간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불행을 공감하고 해결해주려 했던 B의 무의식에 불행의 씨앗이 전염된 걸까? 터질 것처럼 팽팽했던 끈을 탁 끊어버린 딸의 외침이 다행히도 현실로 돌아오게 해 주었다.




인간이라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가도 순간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현실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인자라는 당치도 않은 딱지를 달고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도 많다.

불완전한 인간인 탓에,

때로는 눈에 가시 같은 상대에 대해 죽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일도 수두룩하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인간의 양심은 자제하라고, 몹쓸 마음이라고 끊임없이 뇌로 전달한다.


사람들은 그동안의 관계를 떠나 어떤 결과에 대해 이미 마음으로 정해버린 기준에 따라 상대를 가까이할지 멀리할지 구분한다. 평상시의 선량했던 A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닥친 살인자라는 결과물을 이미 기준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모든 감정에는 도덕적 양심이라는 잣대가 고개를 든다. 도덕적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이 있다. 대다수가 옳다고 하면 바로 합리화가 된다. 잘했든 잘못했든 암묵적으로 합리화시킨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A는 내쳐진 것이다.



A의 현 상황에 가여운 마음을 느끼든, 안 느끼든 그건 개인 사정이다. 그래서 B에게 찾아와 호소하는 모습에 가여운 마음이 드는 건 B의 사정인 것이다. 도덕적으로 당연히 사정을 봐줘야 할 의무는 없다.

자신이 느끼는 가여운 감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비양심적이라 생각한 B는 결론적으로 피폐해졌다.


그런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도덕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며 비판을 가하는 사람은 개인의 기준에 따른 것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그 도덕을 지키려고 양심이 애쓰고 결국은 잘 참았다고 자신에게 보상하는 게 옳다는 생각은 삶의 가치관에 따라 차이가 날 것이다. 설령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형사라도 말이다. 모든 시민의 불행한 사정을 다 들어줬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이다.


누구든지 A가 될 수도 있고 B, C가 될 수도 있다. 우연히 다가온 불행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누군가는 주변에 참으로 많다. 그 불행을 같이 나누고자 하는 사람은 있지만 해결해 줄 사람은 없다. 결국 개인의 문제인 것이다.




불행한 남자와 불행이 전염된 남자의 끝은 알 수없다. A는 계속 B를 찾아올 것이고 속 시원한 해결책이 나올지도 미지수다.


이 짧은 소설로 인해 나에게 내장된 양심이라는 카드의 딱 정해진 기준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살면서 마음이 따르는 양심이 분명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건 사실이지만 그 기준을 따박따박 따르지 않고도 사람들은 잘 살아간다.

생각해 보니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는 내 기준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간혹 나를 못살게 구는 감정에 시달릴 때가 많다. 떨쳐내려 해도 안 떨어지는 감정은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양심의 잣대가 쥐고 흔들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 나의 사정과 상관없이 양심이라 불리는 놈이 고개를 쳐들 때, 과감히 거부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는 것을 조용히 마음 한켠에 꾹꾹 눌러 새겨 놓았다.




이제 글을 마치려 하니 마음 한쪽이 찝찝하다. 자꾸 측은지심이 고개를 쳐든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불쌍한 A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냐구.....' 내 맘도 울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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