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 눈밭을 걷다.

by 달자
©달자


밤새 눈이 온 천지를 덮었다. 와~아, 애들처럼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눈길을 뽀드득 밟으러 나갔다. 감기에 걸리라지, 뭐. 그래도 너무 좋다. 발을 딛는 무게감이 힘들지만 내 코끝이 깨끗하게 정돈되는 느낌이 마냥 좋아서 한참 공기를 들이켰다.


아직 발자국이 없는 곳도 있고 이미 개 발자국과 새 발자국이 군데군데 귀엽게 수 놓인 곳도 있다. 커다란 개 발자국을 따라 나도 따라 걸어 보았다.


영하의 기온이라도 눈이 오고 나면 춥다는 느낌보다 상쾌한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눈이 불러온 상쾌한 기분을, 그 냄새를, 온몸에 가득 채웠다. 이런 느낌이 행복일 거야,라고 멋쩍게 중얼거렸다.


©달자


소복하게 눈을 이고 있는 저 잎새들이 황홀하다. 멀리 보이는 나무가 하얗게 덮여 있는 모습도 근사하다. 온통 하얀빛.

새소리, 바람소리, 내 발자국 소리가 어우러져 고요한 아침의 교향곡이 내 귀를 잔잔히 울렸다.

두통에 시달리는 무거운 머리가 청명한 공기에 싹 사라지는 느낌. 답답한 가슴을 쭉 펴고 훅~ 숨을 내뱉었다.

©달자


커다란 나무는 추운 겨울바람에도 한 치의 웅크림 없이 하늘로 쭉쭉 뻗어있다. 저기 높은 가지의 뾰족한 끝에 손을 뻗으면 왠지 나무의 정령과 통할 것만 같다. 다 생명이라고 생각하니 웅장해진다.


하얀 눈밭에 내 발자국을 고르게 수놓았다. 눈 밟는 소리가 들리고 조용히 내 숨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 어딘가에서 새소리가 들린다. 작은 무리의 새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신나게 날아간다. 나도 날고 싶다.




매일 똑같은 길을 걸어도 자연의 숨소리는 매 순간 새롭다. 자연에서 느끼는 새로움과 달리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즐거움이 지겨움으로 변할 때가 있다. 너무 지겨워서 내 글을 쳐다보는 것도, 쓰는 것도 싫어진다.


우울할수록 코미디영화를 찾는 사람도 있고, 더 슬픈 영화로 눈물을 일부러 쏙 빼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취향은 가지각색이건만 내 글이 한 가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왜 이리 지겹고 따분할까?


살다 보면 '이게 아닌데' 싶은 느낌. 다 거짓으로 치장한 기분. 벗어나기 위해 가면을 쓴 것 같은 그런 느낌.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쓰고 있는 가면은 다 본인의 것이라고. 굳이 가면이라고 각각 이름을 달 것이 아니라 다 내 모습이니 받아들이면 된다고. 그에 따른 감정까지도.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변덕스러움을 그저 손님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잠깐 스치고 지나가겠지 싶은 마음이 오래도록 안 가고 버틸 때, 그래도 습관처럼 쓴다. 여전히 결이 같은 방향으로. 지겨워도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이 마음은 주인이 아니라 손님이다. 이 손님이 안녕히 돌아갈 때까지 멀리서 지켜보는 중이다. 그러고 나면 부글거리는 마음이 가라앉겠지.


바람에 눈이 날린다. 눈이 지저분한 길을 하얗게 덮은 것처럼 나도 괜찮은 기분으로 우울한 마음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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