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사라져 간다.

▶ 끝이 가까워지면 어떤 느낌일까.

by 달자

일어나자마자 혈압약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인 후, 한번 후루룩 뱉어내고 약을 조심히 꺼내 여러 번 입 안에 굴려 중심으로 모아 쭉 삼킨다. 약을 먹는 쉬운 일도 어떨 땐 갈피를 못 잡고 목에 걸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그게 뭐 별거라고 약간의 트리우마가 있다. 안 넘어갈 경우 쓰디쓴 맛을 혀가 알아버렸을 때의 곤혹감. 쓴 맛은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질색이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가면, 아버님이 바둑 TV를 무음으로 틀어놓고 앉아 계신다. 내가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계시다 나를 인식한 듯 몸을 쭉 펴신다.

어김없이, 어두운 새벽, 거실의 아버님 지정석 소파에 앉아 TV를 응시하고 계시는 모습은 아버님이 돌아가셔도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표정으로 알 수 없는 아버님 마음을 알고 싶기도 하고, 몰라서 다행이기도 싶은 며느리의 마음을 아마 아버님은 모르실 것이다.




어제 냉동실에서 꺼내놓은 생선 2마리를 준비해 놓고 쌀을 안쳤다. 손이 자유롭지 못한 아버님께 생선을 구워드리는 일은 잠깐의 고민이 필요하다. 손이 떨리니 살을 못 발라 드시는 아버님을 위해 손을 잘 쓰는 사람이 도와줘야 한다. 예쁘게 구워 놓은 생선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별로라 구워진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고 싶지만 집어드시기 편하게 어쩔 수 없이 다 구운 후, 여러 조각으로 분리해야 한다.

하지만, 먹고사는 일은 본능적인 것일까? 아버님은 손 잘 쓰는 우리보다 아주 깨끗하게 잘 발라드신다. 생선을 잘 발라먹는 사람은 내가 볼 때 타고나는 것 같다. 나는 요령 좋게 잘 발라먹지 못해서 아버님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괜한 고민을 했다.



식구들 마음보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를 더 잘 아는 남편의 머릿속은 늘 바다에 가있다. 바다의 날씨를 확인하고 누가 몇 마리를 잡았는지 사진으로 구경하고 부러워하고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오랫동안 미워했는데 그렇게라도 어딘가에 몰입할 것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안 그랬으면 사사건건 사소한 일로 다툼이 잦았거나 있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신경 쓰는 것에 나는 질려버렸을 것이다.




해가 바뀌면 뭔가가 달라질까? 내심 기대감도 있고 불안감도 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의 몸 상태가 언제 소진하실지 불안하고 취준생인 딸의 합격소식이 내심 기대되고 일하면서 연애도 하고 틈만 나면 놀러 다니는 아들놈의 미래도 걱정되고, 이제는 뭐라 할 수 없는 자식들의 행동거지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나 조차도 모르고 누가 먼저 소실점을 향해 달려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국은 사라질 것에 대한 집착이 점점 사그라들고 걱정근심에 사로잡혔던 잡다한 것들이 어느 순간, 내 소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서로 해하지 않고, 하루의 일들을 아무 탈없이 무사히 마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이 되었다.



옛날 같으면 직장보다 결혼을 더 염려했을 나이인데도 결혼에는 털끝만큼 관심도 없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하나 둘 있는 자식에게 의지하기에는 피로 맺은 끈끈한 관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있다. 아파도 혼자서도 잘하는 노인이 되어야 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글을 쓰고, 때 되면 식구들이 잘 있나 확인하고 같이 밥 먹고 산책하는 소소한 일들이 언젠가는 내 의지로 안 될텐데, 라고 생각하니 등이 서늘해진다.




어쩌면 인간은 현재를 살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은, 점심은 또 뭘 해드릴까? 부터 시작해서 산책 가기 좋은 날씨인지, 아침에 읽을 책은 어떤 내용일까? 커피를 마실까? 말까?

아주 어릴 적, 아들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느닷없이 떠오르고, 부모님 얼굴, 동생얼굴이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뒤죽박죽 떠오르기 시작한다.


내 뒤로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이 끝이 보이는 것도 있고, 희미한 것도 있고, 아직 팔팔한 것도 있다. 부디 모든 것들이 아무 탈없이 잘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커피미소.jpg pixabay / 웃어요, 활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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