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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Aug 25. 2024

2화. 우라질, 시발점(Origin)으로 돌아가자.

즐거움과 슬픔

길 잃은 중생은 오늘도 욕을 한다.


우라질, 나는 이 단어가 좋다. 현진건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단어다. 마음을 전달하는 리듬이 있다. 소설 속 한 톨은 투명한 위로다. 시발점이라는 말도 좋다. 일본식 잔재표현이라는데, 발음과 의미가 상반돼서 좋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말한다. '우라질, 시발점으로 돌아가자.'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나면 , 몰래 의미 있는 욕을 하는 게 어이없어서 깔깔 거린다.


그렇게 욕하고 웃어도 좋아지지 않는 시간도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즐거움과 슬픔 중에서 고민하고 있다. 평화로운 즐거움과 원재의 존재가 그리운 슬픔이다.


가게에 원재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이 "사장님 어디 멀리 갔어요? “물었다. “없다고 생각한 지 오래됐어요." 대답했다. 웃고 넘어가기. 말은 쉽다.


시간은 자꾸만 거꾸로 간다. 과거를 떠올린다. 보고 싶을 때는 연애 때로 가고, 미울 때는 어제로 간다. 낮에는 버틸만했다. 바빴다. 원재가 떠난 자리는 컸지만, 쉴 새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깨와 무릎이 아파서 파스를 발랐고, 두통약을 하루에 네 알씩 먹었다. 그림자가 여전히 둥둥 떠다니는데, ‘원재는 이제 없는 사람’이라고 공기는 나에게 말을 해댔다. 지난날의 나는 복잡했다. 지금의 나도 복잡하다.


원재가 있어도 힘겨운 오후, 원재가 아닌 내가 떠나는 상상을 했었다. 내가 떠난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는 날들을 상상했었다. 시뮬레이션. 아이와 나의 가방을 쌀지, 아이를 두고 몸만 나갈지, 상상했었다. 삶은 최악을 떠올릴수록 현재가 빛났다. 늘 상상과 실제는 달랐다.


떠날 이유가 없는 지금은, 원재가 돌아오지 않을지, 원재가 애를 모르게 데리고 갈지, 상상해 댔다.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소주를 꺼냈다. 반 병쯤 비웠을 때, 숨이 목에서 턱, 하고 막히는 소리가 났다.


 무서웠다. 감정들이 퇴적되고 있었다. 원재가 영영 찾아오지 않는다면, 우리 웅이는 어쩌지? 이기적 이게도 '내 아이'가 먼저 걱정되었다. 남편 말고 아빠로 제 자리를 지켜달라, 애원해 볼까. 가슴을 치며 울었다.


숙취에도 잠은 오지 않았다. 아침부터 여동생은 잔소리를 해댔다.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며 정신의학과를 가라고 했다. ‘그럴까, 낮이면 견딜만한데’, 하면서도 ‘안 되겠지, 밤마다 힘드니까.’ 웅이를 학교에 보내고 한참을 현관에 앉았다. 걸을까, 하다가 택시를 잡았다.


 조금 떨어진 동네에 가정의학과에 갔다.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간호사를 기다리고, 아직 출근 전인 의사를 기다리면서도 ‘그냥 갈까’ 또 고민했다. 첫 환자로 들어갔다. 공복혈당장애가 의심되고, 간수치도 높다고 했다. 무엇보다 우울증이 있는 것 같으니 약을 병행하자고 했다. 원재가 없는 시간 나는 나약해지고 있었다. 원재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원재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냥.. 저 다이어트약을 지으러 온 거라서요..”


진료비는 2주 치 5만 원, 약값은 2주 치 3만 원. 8만 원으로 위로받기 시작했다.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스스로를 믿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게로 오는 길에 제일 큰 커피를 샀다. 그리고 노트북을 켰다. 아직은 고요한 아침이다. 소설의 첫 문장을 열었다.


"나는 이혼을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약은 규칙적으로 정확한 시간에 정해진 양을 먹어야 했다. 아이가 약에 대해 물으면 살을 빼기 위해 먹는 다이어트약이라고 말했다. 여동생이 묻지 않고 쳐다볼 때도 말했다. '살 빼는 중이라고.' 멋쩍게 웃으면, '그래, 다이어트 좋지.'답한다. 어려운 공부를 하는 기분이 든다. 혼자만 열심히 과외받는 기분이다. 제일 어려운 건 뭘까? 삶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는 자기 객관화다. 알기 위해 노력하면 고통이 동반한다. 잘 될 때도 아프고, 안될 때도 아프다. 그래도 괜찮다.


해가 맑은 날에는 원재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늘 거친 표현들이 문제였다. 거친 표현들은 애정이기도 했다.


진상할머니가 있었다. 역 뒤에 작고 오래된 노포였다. 술이 끝까지 취한 70대 여사장은 전화할 때부터 '원래 먹던 집이 오늘 문을 닫아서 싼 맛에 시켰다.' 비아냥댔다. 그러고는 시간을 재촉하는 전화를 해댔다.


- 언제 오는데? 안 오나?


"주문이 많아서, 시간 많이 걸린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아니면 취소해 드릴까요?"


몇 번 전화를 받다가 화가 끝까지 올라서 취소해주겠다고 했다.


- 바쁘든가 말든가, 가시나가 미친나, 취소는 무슨! 빨리 갖다도!


" 아니, 사장님! 말이 너무 하시네요! 장사하신다는 분이..."


- 뭐라노!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친정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은 사람, 어른이었다. 동시에 사장이고 진상이었다. 노인의 거친 말들에 울고 있는 나를 보고 화가 난 원재는 배달 가자마자 헬맷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보소! 할매요! 장사한다는 사람이 뭔교? 뭐 믿고 이따구로 행동하는 거요? 뭐 있으요? 어데서 내 마누라를 울리는교? 나도 못되게 말해보까요? 사람들, 여기 못된 할망구 함 보소!"


원재는 평소 잘 쓰지 않던 사투리를 써댔다. 노인은 술이 확 깼다. 앉아 있던 손님들은 일제히 원재와 노인을 번갈아 봤다. 노인은 귀까지 새빨개져서 원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잔돈도 됐다며, 돈을 원재 손에 쥐어줬다. 덧붙여서 새댁한테도 미안하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원재는 가게로 돌아와서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한 채, 열불이 나서 입에서 험한 말들을 내뱉으며 '너를 위해 싸웠노라, 승리했노라, 내가 너를 지켰노라.' 승전소식을 전했다.


나의 수호자, 그런 부도덕한 원재를 사랑했다.


나의 파괴자, 그렇지 않은 원재는 사랑할 수 없었다.


원재는 남들 앞에서 스타다. 술자리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생일이라 케이크를 사들고 근처 호프집에 갔을 때였다. 단출하게 생일파티를 했다. 친구들끼리 의례적으로 “너는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똑똑하잖아. “하는 말이 나오면 반 병째라는 뜻이다. 한 병이 넘어가면 멋진 사람이 된다. 분위기를 화사하게 한다. 모든 이목이 집중된다. 2병, 술이 취하면 사람들 앞에서 ‘우리 이야기’를 한다. 그냥 웃고 있어도 중간은 가는데, 작은 흉이라도 꺼내서 술안주로 삼는다.


그런 원재가 미웠다. 그리고 여전히 밉다. 영원히 미울 것이다. 술을 마시고 나를 꺼낸다. 앞에 두고 남들에게 나를 흉본다. '언제까지 참나?' 구경하는 표정이 징그러웠다. 정이 조금씩 떨어졌다. 혼자만 기분 좋게 걸치고, 너덜너덜하게 흐느적대는 형상이 흉측했다. '좋다!' 말하며 마시는 술은 어떤 의미에서 좋은 것일까? 입으로 들어가는 술은 머리로 바로 향하는 걸까? 피와 섞여 온몸을 돌아다니는 건 아닐까?


마지막 잔을 비울 때가 되면, 싸우고 흥분한 채 삿대질을 해댄다. 나를 말리는 사람은 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 대곤 ‘쉿!’이라고 손짓했다. 그 모습에 멈칫했다. 원래의 원재라면 용서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켜만 봤다. 순간 진상이 된 기분이었다. 내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손짓은, '너만 감추면 너의 흉은 아무도 모른다.'라는 뜻이었다. 원재는 신세한탄하며 술주정을 했다. 자기 객관화의 고통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선택했다. 끝없는 마침표처럼 마음을 이해 못 해주는 가족을 원망했다.


 그런 원재는 쓰다가 망친 원고지 같았다. 버리려니 쓴 것이 아깝고, 쓰려니 지운 글자들이 겹쳤다. 화해하고 집에 들어가라는 지인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데, 한껏 망신을 주고는 망신을 준 사람과 화해라니. '오늘 생일이니까, 앞에 아이가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까.' 이유를 댄다. 억지로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아이와 먼저 자리를 일어났다.


제일 치욕스럽던 순간은 혼자 기분이 나아져서 가까이서 대화하고 싶어 할 때다. 대화?


“내 방에서 나가. “


이렇게 말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온 세상이 고요하다. 내가, 뭘 어떻게 더 해야 하지?


밤사이 고민하며 잠들었다. '참기', 그 이상은 없었다.

꿈을 헤맸다. 꿈에서도 답을 찾지는 못했다.


원재를 기다리고 있는 나와

원재가 돌아오면 끝내겠다는 내가 충돌한다.


원재를 사랑하는 나와

원재를 미워하는 내가 마주한다.


우리는 만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다.

지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다.


우라질, 시발점으로 돌아가자.


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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