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오마주 Sep 01. 2024

3화. 행운의 편지

닮은 사람의 닮은 인생


김진아,


동생과 나는 5분 차이 쌍둥이다. 나는 아빠를 닮았고, 동생은 엄마를 닮았다. 같은 성별 쌍둥이는 복사본처럼 닮는다는데, 우린 외모도 성격도 다르다. 그래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닮았다. 어릴 때부터 같은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같이 읽곤 했다. 우리가 같은 대학에 갈 줄은, 같은 과에 갈 줄은, 같은 동아리를 갈 줄은, 같은 남자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김선아, 김진아? 네가 언니야?"

"아니요. 진아가 동생이에요."


우리들의 아빠는 우리들의 출생신고를 마음대로 했다. 동사무소에 공무원이 잘못 입력했다고 했다가, 이름 따위는 사는 데 지장 없다고도 했다. 진아는 진선미 할 때 진이 맞고, 선아는 '착할 선'이 아니라 '신선 선'이다. 아빠는 착하게만 사는 사람으로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변명했다. 그래서 언니인 내가 선아, 동생이 진아다. 엄마는 우리 이름을 잘 부르지 않았다. 첫째 똥강쥐, 둘째 똥강쥐라고 부르곤 했다. 엄마의 호칭이 듣기 좋았다. 주인 있는 강아지는 언제나 사랑받고 예쁨 받으니까, 제때 밥을 먹으니까... 그렇게 우리 넷만 있어도 좋았었다. 엄마는 한꺼번에 생긴 딸들 때문에 시어머니인 할머니에게 미움을 받았다. 아들, 그놈의 아들. 시달리다 못해 우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에 막내 석도가 태어났다. 석도는 태어나자마자 아팠다. 걸어보지도 못하고 하얗고 동그란 채, 가장 늦었으면서 가장 빨리 갔다. 짧은 시간 함께였다. 가족 모두의 몸과 마음이 아팠다. 엄마는 석도를 더 좋아했나 보다. 우리를 남기고 석도와 떠났다. 너무나도 쉽게.


 아빠는 어린 우리 자매를 재울 때, 매일 엄마이야기를 해줬다. 엄마는 충남 태안 사람이었다. 경상도 토박이인 아빠가 사업이 망하고 도망치듯 떠난 섬에서 만났고, 우리가 생겼다. 그때 아빠가 서른셋, 엄마가 스물 하나였다. 외동딸의 임신 사실을 알고는 친정에서 쫓겨나듯 떠났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여름마다 서해를 갔었다. 빈 집, 아무도 없는 바다, 끝이 없는 지평선에 대고 할 말이 얼마나 많은지, 웃고 울고 깊은 가슴 끝으로 외쳤다. 돌섬이야기를 할 때의 반짝이던 엄마 눈빛을 기억한다. 엄마는 늘 왼쪽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무릎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손끝을 쳐다보며, 바다의 짠내가 그립다고만 했다. 태백산줄기를 따라 흘러내려와도 우리가 다 크면, 연어처럼 고향으로 갈 거라던 엄마는, 연어가 되어 떠났다. 바람을 거슬러, 바다를 거슬러, 떠났다. 어려서일까, 엄마를 바다 절벽에서 보낼 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엄마는 늘 함께였다. 매일밤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기억되었다.


 진아는 클수록 엄마를 닮았다. 아빠는 진아를 보면서 행복해하기도, 슬퍼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야만 했고, 시간은 지나는 동안 남기는 것만큼 없어지고 있었다. 이십 대의 진아로 연어가 되었을 때, 우리 집은 기둥 없이 서있었다. 아빠와 나는 슬퍼할 겨를 없이 아파할 겨를 없이, 남은 일상을 겪어야만 했다.


 감정이 정렬되고, 일련의 사건들이 잊힌 계절에 원재를 만났다. 원재는 어두운 나를 안아주기에 충분히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다. 원재의 모든 것은 원색이었다. 수묵화 같던 내 인생에 원재는 빛깔이 되었다.


 만난 지 1년째, 원재는 내게 결혼하자고 했다. 대답대신 웃기만 했다. 우린 결혼하기에 가진 게 너무 없었다. 집을 구할 수나 있을지, 결혼식은 할 수 있을지, 걱정만 앞섰다. 원재를 아빠에게 보여주러 태안을 갔을 때였다. 인사, 그리고 여행인 줄만 알았다. 바다와 바람, 그리고 밤은 낭만이 있었다. 돈이 많지 않았던 우리는 야외마당이 있는 구이집에서 조개를 조금 사서 구웠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커플이 있었다. 여자가 열 살은 더 많아 보였다. 회와 해산물이 가득 있고, 종류별로 조개가 끓고 있었다. 불판에는 장어를 굽고 있었다. 원재가 눈을 힐끔댔다. '신기하다'와 '부럽다'가 섞인 눈빛을 감추기엔 달이 밝았다. 연상연하 커플과 푸짐한 음식들을 번갈아봤다. 남자가 술이 너무 많이 취해서 혀가 다 풀렸을 때, 여자는 가방과 남자를 어깨에 메었다. 너무 많이 샀다며 먹어도 된다며, 가는 길에 장어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그때 원재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원재의 표정, '먹고 싶다'와 '부끄럽다'가 섞이지 않은 채 섞이려 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울었다. 원재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창피했냐며 물었다. 원재도 서로 표정을 감출 수 없었음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깊게 생각하고 있던 것은, 우리에게 결혼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그날 원재에게 모든 걸 말해야만 했다. 가장 깊숙하게 넣어놨던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원재에게 연애하면서 가족 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 없다. 


"오빠, 우리 오늘 왜 왔는지 알아? 우리 엄마 고향이 여기 태안이야. 어린 나이에 가난한 아빠를 만나서, 맘고생만 하다가 떠났는데, 짠내가 그립다고 매일 말했어. 엄마가 가고, 진아가 가고, 나도 기숙사 있는 회사에 취업을 하고.. 아빠는 그리운 가족 곁에 있고 싶다고 하더라..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데 말이야.. 내가 내 가족을 만나는 방법은 오직 이곳에 올 때뿐이야.. 오늘은 오빠를 우리 가족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게 청혼에 대한 대답이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진아가 있다. 모두 연어가 되어 함께 있다. 그런 나를 가족으로 안아 주던 원재였다.


김진아, 스물 하나였던 우리 진아,

진아와 나는 같은 사람을 좋아했었다. 모든 여자 아이들이 좋아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동아리에서 춤 잘 추기로 유명한 복학생 선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배가 엄청 잘생긴 건 아니었다. 180이 조금 안 되는 키에 하얀 피부, 렌즈를 끼고 다니고, 시험기간에는 검은 뿔테안경을 꼈다. 해가 뜨거운 날에는 'B'가 적힌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녔다. 늘 다정하고, 재밌고, 유쾌했다. 선배는 우리를 '선진'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우리를 앞에 앉혀놓고 '선진이는 꽃다발 같아.‘했다. 둘이 붉어진 얼굴이 정말 꽃 같았다. 우리는 '그대 나비 되어주오.’ 장난쳤었다.


"우리 동아리는 소설 쓰는 동아린데, 왜 춤 잘 추는 애가 유명하냐?"

"기집애같이 얼굴만 하애 가지고 순~ 샌님 같은 놈이 뭐가 좋아?"

"저런 놈 만나봐야 맘고생만 죽어라 하는 것도 모르고..."


모든 시기와 질투 속에서도 인기는 대단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진아와 팔짱을 끼고 동아리방에 갔었다. 웅성이는 동아리방, 선배가 오토바이사고로 죽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렸다. 진아는 주저앉아 '아아'소리를 내며, 가슴을 쳤다. 바닥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진아와 선배가 연애를 하고 있는 줄은, 진아가 그 선배의 아이를 가졌을 줄은, 매일 옆에 있는 나도 전혀 몰랐다. 임신 사실을 알고, 둘은 결혼하려고 했다. 선배는 진아가 먹고 싶다고 했던 홍옥을 밤새 찾아다니다가 사고가 났다. 울음을 그친 진아는 다른 사람 같았다.


"어떻게 혼자 키운다는 거야? 너 아직 스물 하나야!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애 아빠도 죽었다며? 평생 엄마 그리워하면서 고생하는 이 아빠를 보면서도 기어코 낳아서 키우겠다는 거야?"


진아는 끝까지 아이를 낳겠다고 했고, 아빠는 키울 거면, 나가라고 했다. 둘 사이에서 뭐가 맞는지, 내가 편들어줘야 할 곳은 어딘지, 정하지 못한 채 지켜봤다.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잘 해결되겠지, 믿고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진아의 쪽지, 마음을 추스르려 엄마를 보러 가겠다던 진아는 엄마가 뿌려진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러 영영 갔다.


 진아의 자리를 치우지 못하고, 진아를 곁에 둔다. 여전히 진아와 함께다. ’모순‘, 대학 입학기념으로 서점에서 같이 산 책이다. 읽고 울었던 책표지를 어루만지던 봄날, 햇살이 너무 따사로워 어지러움을 느낄 때쯤이었다. 지난여름은 팔에 스치는 햇살이 너무 따갑고 아팠다. 나만 가지는 통증이 서럽기만 했다. 그리운 사람들을 잊지 않으려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위로받고 싶지 않았다. 진아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 매일 물었다. 쌍둥이인 우리는 살아가면서 진진이의 엄마와 이모처럼 남편에 의해서 다른 삶을 겪게 될까, 돌섬이야기를 하던 엄마와 같은 눈빛을 하고 물었다. ‘언니는 어떤 삶이 나은 것 같아?’ 물었을 때, 진아를 꼭 안으며 말했다. 그날은 진아에게도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한 날이었다.


"우리 둘 다, 글 쓰는 걸로 먹고살 거야. 난 원하는 대로 국어 선생님, 넌 나의 월급도둑 소설가."


진아는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너무 좋겠다.' 했다. 김진아 작가, 김선아 선생님.


같은 책을 나란히 두고 손바닥으로 훑었다. 더운 여름 공기는 책에 진아처럼 남아있었다. 진아의 책을 들었다. 네모 반듯하게 접힌 종이가 한 장 떨어졌다. 진아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나의 언니,

나는 언니가 나보다 글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언니는 언니로 살았으면 좋겠어. 나를 위해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우리를 위해 사는 동안 포기하고 살아온 것들을 봤잖아. 늘 아빠의 외로움이 보였어. 엄마를 그리워하는 게 보여. 세상을 살면서 가장 외로운 게 뭔지 알아? 곁에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나에게 없다는 거야. 물론 언니의 동생이라 늘 고마워. 내가 나일 수 있게, 나를 늘 안아주고 보듬어 줘서 고마워. 양보해 줘서 고마워. 그렇지만 언니가 외로운 건 너무 싫어. 언니가 양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진아인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 언니가 책임감보다는 차라리 동생처럼 자신을 생각했음 좋겠어. 나를 닮았으면 좋겠어. 오늘부터 언니 좌우명은 '진아를 닮자.'

ps 언제나 언니 곁에 있을게

-스무살의 진아가“


여전히 수첩에 포개어 놓았다. 진아의 마지막 편지....

꺼내볼때마다 되읊는다. '진아를 닮자.'


진아를 닮자...

진아를 닮자...

진아야, 나의 동생 진아야...


여전히 내 옆에 남아 있는 진아를 떠올린다. 진아라면 지금 어떻게 했을까? 원재에게 연락을 했을까? 벌써 일주일이 되어간다. 문자를 쓰다 지웠다.


그러다, 울리는 아빠의 전화.


”응, 아빠.“

-“바쁘냐? 웅이는 괜찮아? 아파서 못 왔다며? 그람시롱 안와도 되는데 정서방이 왔더라. 그래봐야 낚시꾼들 민박인데, 뭣이 고칠 게 있다고..”



he is my ideal type, but...
다음 주에 계속...



 


이전 03화 2화. 우라질, 시발점(Origin)으로 돌아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