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낮은 음악의 소리를 올렸다. 조용히 가사 없는 음악이 창문을 곁다리로 건넜다. 귓속으로 가득 차 오르면 아침이 온다. 대단하지 않은 소음으로 정확하게 쏘아 올린 공처럼 마음은 튀어 올랐다.
건조해진 날씨, 차가워진 공기, 잠든 방 안의 공기를 깨워 화장실을 가려고 얇은 남방을 벗었다. 비누향기가 젖은 손에서 났다. 대충 수건에 손을 닦았다. 수건 향이 스치듯 지나가고, 다시 마른 손이었다. 이부자리에 다시 들어가니, 여전한 온기다. 다시 걸친 남방에서 눅눅한 베개 냄새가 났다. 설사, 아침이 와서 깼어도, 일어나지 않을 밤의 향기였다.
술에 잔뜩 취해 기분이 좋았던 지난밤, 우리는 함께 했다. '결혼을 하면 실컷 할 줄 알았어.' 바람난 가족에서 호정은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십 대에 봤던 영화들은 이해 못 할 이야기들을 늘어놨었다. '결혼'이라는 환상에 대한 또 다른 환상을 꺼냈었다. 충격에, 말도 안 된다며, 가짜이야기들에 진저리를 쳤었다. 아직은 너희들의 공감대가 아니라는 듯, 그러한 자격증이 없다는 듯했었다. 결혼해 보니 알겠다. 그때, 왜, 우리가 제도와 마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생존과 이상을 구별 못했는지 알겠다. 현실은 무지한 자들에게 불친절하다.
그러나, '가끔 세상과 화해'하기도 한다. 같은 마음을 확인하는 날이면, 엔딩은 영롱해진다. 슬픔을 베이스캠프로 한 감정들을 크게 요동친다. 당연한 것을 도파민이 가득한 것들이라 여긴다. 영원할 것처럼 시도하곤 하지만, 금기시되는 어떠한 것쯤으로 여기게 된다. 과정들은 한 줄로 요약해 버린다. 결론만 꺼내본다. 마지막에는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을 한다. 배달어플로 통닭 시키는 것처럼 쉽게 이야기한다.
물론, 쉽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호계는 화해에 실패한 자였다. 가족이 그를 떠났다. 얼굴만 보고 나이를 알아볼 사람이 어디 있나, 스물이 넘었다는데, 학비 벌려고 일한다는데, 호계는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사업가였다. 배신당한 사업은 경찰 조사 한 번에 넘어졌다. 세상은 호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지만, 원재는 호계에게 언제나 너그러웠다. 보통의 삶을 온전한 삶과 같은 방정식에 두지 않았다. 호계의 외로움은 자유로운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가 허락하고 불허하는 삶은 공허했다. 이혼은 최악의 선택은 아니었다. 호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무너질 듯한 세상을 간신히 비켜 이겨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원재는 그런 호계를 슬퍼하고, 안쓰러워했다.
호계가 나오는 날, 원재가 가게로 데려왔다. 나는 밥상을 차렸다. 생선을 굽고 불고기를 했다. 잡채와 전을 샀다. 계란말이와 시금치나물을 했다. 두부 한모와 김장김치를 식탁에 냈다.
호계는 밥을 먹으며, 목으로 울었다. 볼이 터질 듯이 먹으면서, 맛있다, 연발했다. 원재는 그런 호계에게 물을 따라주고, 등을 토닥였다. 호계에게 밥을 마저 먹으라고 하고는 일어났다. 나는 주방에 양파를 까러, 감자를 깎으러, 마늘을 벗기러 갔다. 호계가 더 이상 욕할 자기 부인이 없었지만, 핸드폰 녹음기를 켰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언젠가 내 글로 나올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호계를 보내고, 원재와 마주했다. 원재가 노트북을 꺼냈다.
"이제, 써도 돼."
말없이 원재를 바라봤다. 허락받은 자는 기쁘면서 슬펐다. 당연한 것들을 도파민쯤으로 여기며, 고마워해야 한다. 노트북을 건네받았을 때, 온기 없음을 깨달았다. 살아있지 않는 이야기들에게 애도했다. 그러나 답했다.
"고마워."
원재는 두 번째 맹세를 했다.
"이제 다신, 너랑 웅이 두고 나가는 일은 없을 거야."
원재의 말을 듣고 있으면 가족이라는 것은 결혼이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결속력은 각자의 역할을 갈구하는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으로 나의 자리, 확인된 나의 것, 광활한 세상에서 허락된 작은 역할이었다.
그동안 밀린 글들을 쓰느라 시계가 바쁘게 움직였다.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이외는 쓰기만 했다. 웅이도 스스로 일어나 씻고, 스스로 학교에 갔다. 원재는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했다. 빨래를 널고, 양파를 깠다.
"이번에는 청소년 성장 소설을 써보는 건 어때? 싹수없고 쌈박질하고 다니는 싸움 1 대장 고등학생이 어쩌다가 분뇨수거차를 마주하는 거야. 거기에 일하는 나이 많은 양반한테 싹수없게 해서, 세상의 벌을 받는 거지. 2장의 첫 씬은 싸움으로 가자고. 패싸움을 하는 날이었어. 센척하려고 육두문자를 뱉으니까, 방귀가 나오는 거야. 센 욕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소리로 나는 거지. 주먹을 날리는 순간, '펑!' 소리가 나는 거야. 바지가 터져버리는 거야. 방귀 때문에 수치스러워서 싸움을 못해, 점점 힘들어지는 거지. 싸울 때, 방귀를 뀌면 모양이 빠지니까, '너 그러면 나쁜 사람이야!' 이런 어바리 같은 드립을 치다가 싸움도 제대로 못하고 학교에서도 입지가 멍청해지는 거지. 어느 날은 너무 화가 나서 욕도 하고 주먹도 막 날렸는데, 똥까지 싸버린 거야. 그러다가 절망하는 거지."
"결과적으로 걘 어떻게 되는데?"
"스스로 삶을 마감해."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고 하지 않았어?"
원재는 차가운 회를 먹을 때면, 시를 쓰기도 했다. 곡류 술을 먹으면, 혓바닥에서 감성이 자란다고 했다.
"별은 별인데, 반짝이지 않는 별은 이별"
"응, 어디서 들어본 듯한 말이야."
"그럼 이건 어때? 별은 별인데, 반짝이지 않는 별은 이별이 아니라 삼별도 아니라 사별이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원재는 자유롭게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주 깊게 되새김질한 생각들을 말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작은 생각 조각도 말했다. 원재의 바뀐 모습은 즐거움이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가만히 우리의 모습을 보던 웅이는 칭찬세례를 내렸다.
"엄마랑 아빠랑 친하니까 좋다. 엄마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글 쓰도록 해."
웅이는 다 큰 어른처럼 다정히 내 등을 손으로 쓸면서 안았다. 따뜻한 아이의 손이 마음을 손다림질했다. 위로받고 칭찬받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좋았다고,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면, 솔직히 좋았다. 한번 더 문장을 되새김질했다. 웅이는 전부 알고 있었겠구나. 보고 있었겠구나. 읽고 있었겠구나. 슬펐겠구나. 이제야 선명하게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원재는 이미 눈시울이 붉어져있었다. 원재가 크게 우리를 끌어안았다.
"아빠, 나 삼겹살 먹고 싶어. 행복동에 무한리필 고깃집 가자."
"가자! 먹으러 가자! 후식으로 잔치국수도 한 그릇 하자!"
"오예오예,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구슬 아이스크림도!"
먹는 이야기는 돌림노래처럼 계속되었다.
가게 문 앞, 조금 더 멀리, 진아가 웃으며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가도 되겠다고, 우리 약속처럼 언니가 정말 언니로 살고 있으므로.
진한 자줏빛 그림자를 남기고 천천히 사라져 갔다.
*연년세세 잊지 않을 것이니 언젠가 다시 새로운 문장이 되어 돌아오렴. 돌아와서 내 숨결이 닿지 않는 곳에서 발생했다 사라진 진실을 들려주렴. 이제 우리 작별인사를 하자. 그땐 우리 변변히 작별인사도 못 했으니. 창틀에 내려놓았던 팔을 거두어 일어섰다.
잘 가... ... 나를 아껴주고 보살펴준 일 소중히 간직할게.
너무 길지 않은 슬픔을 쓰지 않았음을,
다행스럽게 끼리끼리 함께 하고 있음을,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우리라는 이름으로.
책꽂이의 알랭 드 보통이 물었다.
우리는 사랑일까?
질문이 아닌 대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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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신경숙) 오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