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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Sep 29. 2024

7화. 이유는 많지

내가 '김 씨'이기 때문이라니...

'나는 네가 글 쓰는 게 싫어...'


-


"그거면 돼?"

"응."

"알았어. 며칠 쉬고 다음 주부터는 가게 나와. 피곤할 텐데 얼른 자."

"음... 낼 봐. 그럼, 잔다."


대략 알았다는 투로 고개를 흔들었다. 조용한 밤, 원재의 방 안에서 스스로 질문하는 듯한 '습'하는 숨 삼키는 소리가 몇 번이나 새어 나왔다. '너무 쉽다', 쉽게 쟁취한 승리, 원재는 무감각했을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원재가 아니라, 웅이의 아빠다. 그래서 포기할 수 있었다. 원재와의 오랜 부부싸움에서 터득한 게 있다. 싸움을 끝내고, 원재가 결투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 원하는 게 뭐든 크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된다. 내게 있어서 글이란, 원재라는 사람보다 가치가 훨씬 컸다. 아이는 글쓰기 가치보다 몇백 배의 가치가 있었다. 아이의 목숨과 내 손모가지를 두고 결정하라면, 당연히 아이다. 손목을 내어줬다고 생각했다. 내 목을 걸어도 똑같지 않았을까. 오늘 소설의 마지막 한 줄을 완성해야 했다.

마지막 줄,

'재원은 돌섬의 끝에 섰다. 아래를 봤다. 두 팔을 벌리고 숨을 크게 쉬었다. 잠시 후 낮은 파도가 크게 일렁였다.'


컴퓨터를 정리하고 서랍에 넣었다. 원재가 머무는 동안에 꺼내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 김씨 집안 여자들이 원래 결혼을 잘 못혀. 우리 누부야, 고생만 하다가 가네.“


고모의 장례식날 아버지는 덜큰하게 취했었다. 나오는 대로 말하는 아버지는, 가끔,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를 대단한 것처럼 말하곤 했다. 언제나 삶과 죽음은 이유가 있다. 부모의 사랑으로 삶이 시작되었고,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선택하거나, 죽음으로 끝난다. 그런데, 많은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내가 김씨기 때문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면 죽음이 값져 보이는 건가,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도, 불안했다. '인생의 갈림길'이 있다면, 결혼과 파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불안한 내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듯 말했었다.


“결혼이 살면서 제일 큰 이유지만, 기대만 하지 않으면 불편한 덩어리 같을 거라. 산에 올라가면 큰 돌 있쟈? 작은 돌도 있쟈? 돌, 그 돌! 어차피 김씨 집안 여자들은 결혼을 잘 못혀. 사랑이라는 게 불안해 보여도 지금은 최선인겨. 기대하지 말어. 그러면 실망도 없어. 행복을 바라지도 말어. 그러면 불행도 없으여."


물어보지 않았다. 꿰뚫는 아버지가 싫었다. 아는 게 많은 아버지도 싫었다. 다 괜찮은 아버지가 미웠다. 내가 아버지의 말에 반문하며, '엄마도 김 씨였어?' 물으면 화는커녕 '아부지도 일부로 그런 건 아니여. 그래도 내 잘못이 있쟈.' 할 게 뻔했다. 익숙해진 죄의식, 그게 또 그렇게 밉다. 아버지의 말은 언제나 부드러웠지만, 나는 뾰족했다. 날카로웠고, 관리 안 한 도끼날처럼 뭉툭했다. 싸워도 이기지 못할 싸움, 늘 아버지 말은 듣기만 했다. 대답하지 않았다. 엄마도 김 씨였냐고, 그래서 결혼을 아버지랑 했고, 우리를 낳았고, 아들이 죽어서 병들어 죽었냐고, 코 끝에 달았을 뿐이다.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게 늬엄마 만난 거고, 제일 못한 게 늬 엄마 쉽게 떠나보낸 거다. 우리 집 여자들이 불행한 게 이 아부지가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런가벼. 늬도 내 탓 혀라."


삶이 고단할 때마다 아버지 탓을 했다. 결혼을 하고는 남편 탓을 했다. 아버지가 없다면 나의 아버지는 원재가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원재는 아마도 나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볼 것이다. 엄마의 밥, 엄마의 빨래, 엄마의 청소, 엄마의 간식... '엄마의' 것들이 '아내의'로 바뀌었을 뿐이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내의 사랑은 종류와 크기가 다르지 묽기가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나처럼, 내가 그런 것처럼.


원재가 나갔다 온 뒤, 우리는 함께 자지 않았다. 충분한 잠을 말하기도 하지만, 충분하지 않은 관계를 말하기도 했다. 가끔, 원재가 다시 떠나겠다고 나설 때를 시뮬레이션했다. 며칠 정도는 글을 왕창 쓰고, 며칠 정도는 인생이 괴로울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현실을 받아들이겠지. 웅이와 나는 원재 없이도 잘 사는 방법을 서서히 터득했다.


그렇지만 남들 눈에는 바뀐 게 없었다. 원재는 가출을 '인생 출장'이라고 불렀다. 시적으로 표현하면, 시가 되는 마술이 있기라도 한 것일까. 원재의 경험담은 조선시대 민화에 나오는 무용담처럼 들리기도 했다.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남해 번쩍. 호계는 하루에 두 번씩 찾아왔다. 원재의 이야기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는지,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내가 남해에 정박했을 때는...' 이야기로 시작하면 자리를 피했다. 개들은 집 나갔다 들어오면 짖지도 않고 조용히 있던데, 사람이 관성이 더 좋았나 보다. 원래의 자리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털썩 주저앉은 원재를 보며, 조용한 한숨을 쉬었다. 나는 주방에 양파를 까러, 감자를 깎으러, 마늘을 벗기러 갔다. 호계가 또 자기 부인 욕을 할 때, 핸드폰 녹음기를 켰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언젠가 내 글로 나올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나는 가끔 단어를 틀리게 말했다. 패스트푸드는 인스턴트라고 하고, 초가공식품을 초완전식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좋더냐?’에서 김중배가 다이아몬드를 준건지 김중배가 한 말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뜻도 제대로 모르고 말할 때도 있었다.


이 약속도 그런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의 원재는 없어도 웅이 아빠는 돌아왔다.


그래 이유는 많지.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

김 씨라서 그럴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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