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토록 짧고 명료하다.
(중학교 1학년 교육과정; '중등. 학교 가자'홈페이지, '효와 가족 간의 도리' 중에서 발췌)
가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려면 가족 간에 서로 사랑하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도리를 실천해야 합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서로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화목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가족 구성원으로서 할 수 있는 노력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십도 안 됐는데 왜 그렇게 살아?"
원재가 떠나는 날, 원재는 똑똑한 척을 하며 말했다. ‘왜 그렇게?’ 붙이고, '왜'와 '그렇게'를 끊어 읽어도 멍청한 문장이다. 나는 나이와 상관없이 내게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원재 스스로도 분명히 안다. 가진 게 많다면 당연한 것들이다. 좋은 집, 좋은 차, 외모가 멋진 배우자를 원하는 원재가 안쓰럽다. 그의 욕심이 허무맹랑하고 양심이 없다. 그러니 당연한 대답이었다.
"나이가 뭐 중요해? 보이는 게 가장 중요해? 있는 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보이는 게 왜 안 중요해?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알잖아."
"지금도 충분히 세상 단순한데 뭘 더 단순해? 너한테 그런 여유가 없는데, 욕심이야!"
원재는 아무 말 못 했다.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겼을까?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맞는 말이라고 해댔던 말들이 방향을 틀어 나를 조준하는 것만 같다. 원재를 기다리는 나도 욕심은 아닐까.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라고 보낸 문자, 원재는 '때가 되면 갈게.'라고 답장을 보내왔다. 그는 웃고 있을까? '조련', 그가 내게 바라는 것은, 그가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은 '착한 여자', 그러면서 언제나 자신을 가꾸고 밝고 명랑한 '외모가 착한 여자'다. 배우자 탓이 아니다. 내 탓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이토록 짧고 명료한 탓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두 눈을 가린 채, 가족 간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도덕적 해이'를 행하고 있다. 누군가 더욱 엉망진창이라면, 조금 더 쉬운 계산법이 되었을 것이다.
창가로 어둑해진 골목을 보았다. 주방 안에 작은 불을 켜고 앉았다. 그럴 때마다 진아를 그린다. 앞에 있다고 생각할수록 사무친다. 여전히 이십 대의 진아는 내 안에 엄마처럼 남아있다. 진아는 '언니, 내가 야구방망이라도 휘두를까? 나 엄마 닮아서 수영으로 활배근 굉장히 발달한 거 알지?' 말했다. '그래, 알지.' 답하며 진아의 머리를 쓸어내리면, 엄마가 나타난다. 상상 속 엄마는 환갑이 넘은 모습이다. 우리 엄마는 환갑일 테고, 진아는 나와 함께 마흔을 기다렸을 테다.
입에 약봉지를 털었다. 비만클리닉에서 처방받아서 살을 꽤 뺐다. 살이 빠졌을 뿐인데, 두통이 사라졌다. 약으로 빼는 다이어트는 부작용이 따르는데, 내 경우는 잠이다. 많이 잔다. 하루의 반은 잔다. 잠 때문에 가게를 늦게 열고 일찍 닫는다. 혼자 할 수 있을 만큼만 일한다. 돈은 아쉽지만, 쓰는 사람이 없으니 남는 장사다.
물을 한 컵 삼키며, 멍하니 앉아 아무도 오지 않는 문을 바라보았다. '내일까지만 기다리자, 원재가 오지 않는다면 가게를 내놓아야겠다, 팔리면 바로 웅이와 이곳을 떠날 것이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원재가 떠났듯, 아무런 소식 없이, 돌섬처럼 원재의 것들만 남길 것이다.
"웅아, 엄마 왔어!"
현관을 들어서는 데 흙구덩이 등산화가 보였다.
"엄마! 아빠 캠핑카로 전국일주 했대! 엄청 멋지지 않아?"
원재에 품에 있던 웅이가 나에게 왔다. 원재는 웅이를 가슴에서 내려놓으며 나를 향해 웃었다. 처음 봤던 맑은 청년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원재는 지난 세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만 같았다. 시간은 무심하게도, 우리 사이에만 정통으로 지나간 듯했다. 모든 것이 충전되어 보이는 원재와 방전된 나는 마주했다.
"정말?"
"다음에는 세계일주가 될지도 모른대. 그땐 꼭 나도 델고 간대!"
오랜만에 집에 웃음이 흘렀다. 웅이가 아빠 오면 먹자던 찜닭도 시켰다. 매콤한 입맛을 닮은 부자는 상봉 때만큼이나 환하게 웃었다. 웅이가 웃고, 내가 웃었다. 까만 얼굴이 어찌나 밝은 보름달 같던지, 웃는 원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주친 눈이 반짝였다. 별빛은 얼굴에 번져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오랜만에 아빠를 만난 아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들었다. 원재는 식탁을 치우고 앉아 있었다.
"웅이는 자?"
"어."
마주 앉았다. 원래라면 옆에 앉아서 TV를 바라보고 함께 앉았을 것이다. 복잡한 마음에 원재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당연히 돌아올 자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재의 자리가 내 마음에서 겉돌았다.
"선아야, 나 돌아왔어."
"... 알아."
"안 반가워?"
"... 반가워."
"잘 다녀왔다... 말 좀 해주지."
".. 원하는 게 뭐.. "
원재는 눈을 피했다. 눈을 마주치면 질문할 수 없었고, 대답할 수 없었다. 반갑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갑기 전에 정리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를 다시 봤을 때,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를 반기는 내 마음은 아주 멀리 숨어버렸다. 대신 나를 지켜주던 마음이 나타났다.
".. 선아야.. 너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말을 돌리면서 나를 훑는다.
"약"
"약... 무슨 약?"
"응... 정신과 약..."
"근데, 약 먹어서 빠진 거야? 빠지는 약인 거야?"
여전했다. 다정한 가면을 썼을 뿐이다. 원재는 여전히 비만혐오자, 인생 파괴자였다. 내가 한 질문은 교묘하게 피하면서, 원하는 질문을 해댔다. 삶은 단순하게 살고 싶지만, 대화에서는 묘기를 부리고 싶어 한다. 솔직하지 못하다. '살 빠져서 이제야 보기 좋다.'라는 말을 어렵게도 돌려서 말한다. 나 역시 의사에게 '다이어트'라고 거짓을 말했듯, 원재에게 '치료 중'이라는 거짓을 말했다.
"원재 씨, 당신이 원하는 게 뭐야?"
"인사 먼저 나누고.."
"당신은, 인사 없이 나간 사람이잖아."
원재는 주먹을 쥐었다. 다시 손바닥을 펴서 아무것도 없는 식탁을 쓸었다.
"너는 원하는 게 뭐니?"
"나? 지금은 웅이 아빠만이라도 남아주는 거."
원재가 돌아오면 원하는 대로 해준다고 했지만, 대답하고 말았다. 생각한 적도 없는데, 마치 '항상 그것만 소망해 온 것'만 같이 대답했다.
"원재 씨,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나도 네 대답이 필요했어. 잘 모르겠거든. 어떻게 대답할지만 생각해 봤어."
"그래서 내 대답에 뭐라고 답할 건데?"
원재는 크게 숨을 뱉었다. '후' 내뱉는 입술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팔뚝에서는 경련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식탁밑의 손에서 땀이 났고, 발가락은 쉴 새 없이 꼼지락 거렸다.
"글을 안 썼음 좋겠어. 아니, 나는 네가 글 쓰는 게 싫어. "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