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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Oct 13. 2024

9화. 닳아 없어질 몸

낮은 울음소리

어김없이 아침은 왔다. 누군가의 아침도 '시작'이라는 단어로 불릴 것이다.


낮은 울음소리를 들었다.


모두가 기분 좋은 토요일 아침일 텐데, '일어나요, 일어나, 제발'이라는 말과 울음소리가 퍼졌다. 누군가의 슬픔이 고통으로 울리고 있었다.


바닥에 가라앉은 소리,

낮고 조용했지만, 모든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만 같았다. 진동했다. '으' 혹은 '아' 혹은 '의' 혹은 '지잉' 소리를 내며 내 발목을 흔들었다. 다른 이야기 없이 같은 문장만 반복하는 슬픔은 영원할 것만 같다. 세수를 하며, 거울에 찬물을 부었다. 모든 상상과 착각을 씻었다.


복도를 지나가며 차갑게 갇힌 공기에 귀를 기울인다. 슬픔이 크게 진동하며 울리는 것만 같다. 궁금한 건가, 같이 슬퍼하는 것인가, 눈치 없이 나오는 나의 검은 부분을 엄지로 누른다. 개미만 한 녀석이, 어디, 감히, 숨을 크게 내쉰다. 그래도 아침은 끊임없이 시작된다.


손가락으로 쓰지 못해도, 생각으로 쓴다. 마지막까지 고민이 많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재원은 작은 확신이 생겼다.

돌아가는 길이 길게만 느껴진다. 그녀는 재원을 기다리고 있을까?

아니라도, 아이만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녀를 떠나면, 나는 행복할 것이다. 아이가 없으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 알고 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빈번하게, 또 오가는 생각 중에 선택해야 했다. 행동보다 마음을, 마음보다 현실을, 선택해야 했다.


서쪽으로 차를 향했다가,

동쪽으로 향했다가,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곧, 재원은 또 다른 확신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매일 입던 옷을 입고 빗자루를 들고 있는 그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남자가 나오더니 빗자루를 뺏고 바닥을 쓸었다. 둘은 마주 보고 웃으며 장난쳤다. 아이는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남자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는 아이가 트럭 보조석에 앉았다. 남자도 다녀올게, 그녀에게 손을 흔들면서 트럭에 올랐다.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그녀는 손을 흔든다. '잘 다녀와. 저녁에 봐.' 손에 가득 쓴 것처럼,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그녀는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재원이 떠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므로, 그녀를 탓할 자격이 없다. 재원은 골목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있던 집, 내가 자던 침대, 내가 품었던 아이를 데리고 남자의 얼굴만 다른 형태였다. 예전보다 살이 빠진 그녀는 말쑥하게 앞치마를 입고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다녀와, 웃으며. 내가 없어도 내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가 집 문을 발로 차고 나올 때일까? 내가 부동산에 투자하고 10년간 번 돈을 날려 먹을 때부터 일지 모른다. 아니, 그녀를 때렸을 때부터인지 모른다.'


재원은 또다시 자신의 세상을 항해하기로 했다. 결혼이 울타리였을까, 감옥이었을까. 이혼으로 부순건 탁월한 혁명일까, 망조의 객기였을까....




여기에서 나는 글을 멈춰야만 했다. '네가 글 쓰는 게 싫어.', 원재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나를 궁금해한다고,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싫은 이유가 만일 '우리 사이를 방해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감정이라고 여긴다면, 배신처럼 느꼈을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를 위해서 잠시 멈춰야만 한다고, 영원히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원재는 아내인 나를, 자신 인생에 참모로 생각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모든 말이 쉽고, 모든 간섭이 쉬운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금지도 쉽다. 기분에 따라 '해제'도 쉽다. 조심스러운 게 없고, 결심도 없다. 머리와 입 사이에 꾸미기 효과가 없어서, '그래도 사람은 좋다'라는 자기들끼리의 평가에 만족한다. 우리가 한바탕 솎기 하기 전, 다른 사건이 있었다. 주방 한 구석에서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호계가 들어왔다. "제수씨, 안녕하세요? 뭐해요? 공부해요? 뭘 쓰는데요?"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면서 입구에서 나를 향해 직진해서 왔다. 노트북 화면에 글자로 가득했다. 내가 글 쓴다는 사실은 원재가 말해서 알 텐데, 호계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입으로 웃었다. 안다, 나에게 그저 말을 걸고 싶었을 뿐이었다. 입은 웃고, 눈은 흔들리고, 손은 당황하고 있었다. 호계는 뭐가 그렇게 궁금할까? 예고 없이 가까워진 거리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방에 들어오라고 허락한 적 없고, 내 노트북을 보게 허락한 적 없는데. 내가 내 행동을 호계 너에게까지 설명하며 살아야 하나?' 그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순간 원재가 사백안을 하고 나를 정면으로 째려봤다. '너희 둘이 친구지, 나랑 친구 아니잖아. 예의와 친선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건 아니야?'라는 의미로 둘을 번갈아 봤다. 그리고 호계는 인사를 하고 떠났다. 


" 너, 이제 호계 어떻게 볼래?"


대답하지 않았다. '호계를 안 보면 제일 좋겠어, 봐야 한다면 다음에는 거리를 동반한 예의와 친선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남들에게 그저 알고 싶은 재밌는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는 진지하고 핵심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호계와 너는 책을 만 오천 원짜리로 보고, 나는 책을 작품으로 본다. 적힌 '가격 15000원'은 종이값이다. 최소한의 값이다. 노력에 대한 값이 아니다. 책을 내서 팔고 싶다, 가 아니라, 완성하고 싶다. 


생각과 맞물려 마지막 한 줄을 썼을 때를 떠올렸다. 원재는 나의 울타리였을까, 감옥이었을까. 쓰고 있던 글에서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야만 살 것 같았다. 마음에 계속해서 살아있을 것이라 달랬다. 이야기에 살아있다면 영원히 방황하고 있었을 것이다. '재원'이라는 이름은 '원재'와 같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나와 같을 수도 없었다. 나였고, 원재였다.


원재는 출근과 동시에 묵은 유리창의 얼룩을 닦고 있었다.


가게 주방을 정돈하며, 선반에 손을 빠르게 퉁겨본다. 피아노보다는 작은 보폭으로, 컴퓨터보다는 약한 압력으로.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원재와 함께 했던 시간보다 원재가 없던 잠시였다. 원재는 항상 말했었다. '너는 많이 달라.', 쉽게 말하는 게 미웠다. 가끔은 사람을 미워하면, 나를 사랑할 것 같은 착각에 이른다. 어리석은 어른이 되어, 어리석게 말을 하고, 어리석게 행동하는 동안 알게 된 한 문장은, '다르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다.' 하나뿐이었다. 그저 남 탓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내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는, 너를 기쁘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너에게 미움받지 않기 위한 것.

네가 더 이상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나와 아이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결론을 내리고 다시 보니, 인간스러운 원재가 보인다. 원재는 몸에 있는 모든 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들은 쓰고 나면 닳아지고 없어질 몸을 가지고 산다. 일도 힘들고, 결혼도 힘들다. '힘들다'라는 총체적인 말은 불편하다. '괜찮다'라는 말만큼 불편하다. 사실이 아니라고 거부하는 것도, 현실을 미화하는 것도 불편하다.


"원재, 사랑해."


그런 원재를 뒤에서 안았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과, 인간으로 겪어야 하는 모든 세상을 통감하면서. 원재는 대답대신 손을 포개었다.


굶지 않고, 춥지 않게 산다고 해서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은 없다. 저마다의 '인간으로 살기 때문에' 갖고 사는 마음이 있다. 같이 산다고 해서, 같은 인생을 살 필요 없다.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무엇을 하며 사는지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사는 동안 '서로 어리석음'을 알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어리석으니, 서로를 인정하면 된다.


“제수씨, 안녕하신교? 원재! 내 왔데이! 구름과자 하나 먹으러 가자!”


호계... 너는 이런 순간에도..


'우라질, 시발점으로 돌아가자..'


낮게, 가장 낮게, 소리 내어 울어본다.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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