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오마주 오리지널 창작소설
형벌 같은 하루는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각자의 슬픔은 만나면 물처럼 섞이고, 섞인 물은 생명체에게 검은 세상을 준다. 고이지 않고 흘러간다고 한들, 어떤 이에게 슬픔이 흐르고 지나간다고 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남에게 좋은 사람이 가족이라는 건, 빛의 그림자처럼 남은 감정들을 감당해야 했다. 부드러움 발을 굴릴 디딤돌이 되어야 하고, 부드러움을 담을 단단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 사람을 나눠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별명정도일 때,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말이다. 동호회에서 이야기들을 수첩에 나란히 적어나간다.
슬픔 동호회의 단어들,
쓸데없는
진상의
어눌한 말의
한 템포
딱 귀여울 만큼만 못해?
왜 선을 넘어?
무슨 대단한 조언이야?
연은 어딘가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그곳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싶다. 그리고 생각했다. - 소리정도는 '푸슝'났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사라지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연은 평생 동안 기분을 손톱만큼만 드러내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꿀꺽 삼켜 입을 꼭 다물고 있으면, 자연 발화되어 소멸하게 했다. 모든 것은 다른 것일 뿐, 잘못된 건 없었다.
섬을 집으로 들이면서 연은 미소 지었다. 연은 섬이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해 외모를 단장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알알히 맺힌 땀이 이마에서 반짝였다. 섬 한 손에 박카스 한 박스, 한 손에는 뚝. 누구나 갖고 있는 정확한 거리를, 가까워지는 거리를, 반겼다.
“형님! 오셨어요?“
섬은 천장부터 집을 훑었다. 대문에서 잔디밭을 지나 낮은 세 개의 계단을 오르고 또 다른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양말을 신은 게 얼마만이더라? 뚝을 씻긴 게 얼마만이더라? 포슬한 털을 말려주며 노래를 흥얼거린 게 얼마만이더라? 천장부터 거실의 갈색 가죽 소파에 눈이 멈췄다.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큰 소파,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침대 같은 소파, 그리고 테두리에 파도같기도, 회오리 같기도 한 나무 문양. 작고 큰 세월의 흔적들이 있었으나, 여전히 새것처럼 광택이 났다. 섬은 소파로 향하며, 마룻바닥의 삐걱 거리는 소리가 마음에서 나는 것만 같았다.
"집이라는 게 이렇게 생겼구나... 고마워."
섬은 자기도 모르게 나온 '고맙다'는 말에 머쓱해졌다. 연은 대답 없이 음료수를 건네며 가볍게 미소 지었다. 집이라는 말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어서 입을 삐죽였다. 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녹음 시작할게요, 오늘은 최근에 감옥 갔던 이야기를 해보죠.”
섬은 목을 가다듬고, 어깨를 두어 번 폈다.
"깡패가 싸움이 아닌 일로 붙들려 들어간 건 창피한 일이야. 하지만 어차피 망한 인생이니까, 한 번이 어려웠지, 그다음부터는 큰일이 아니더라고. 그날도 그냥 지나간 날 중 하나였을 뿐이고. 옮긴 건 종이 쪼가리였지,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옮긴 게 어떤 거죠?"
"대포통장.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몰랐어.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만들라고 했을 뿐이고, 약간의 수수료를 주고받으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었지."
연은 수첩에 '4:15 pm Real thing?'이라고 썼다. 가끔 섬이 곁눈질로 수첩을 보는 것만 같아서, 섬이 영어까지는 모를 거라고 생각한 자신이 섬뜩해졌다. 전부 입으로 다 내뱉을 순 없어서, 대답을 썼을 뿐이라고 자기에게 변명했다. 여태, 연은 섬의 말을 다 믿었다. 믿었다기보다, 거짓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섬이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생각의 근거는 많았다. 똑똑하다면 지금 인생이 이럴 리 없고, 똑똑하다면 자신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꺼내놓지 않을 것이고, 똑똑하다면 당장 죽어도 괜찮을 것처럼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은 섬을 위태로운 전야처럼 봤다. '뿌리가 무너진 나무들이 가득한 섬', 그 모든 분위기가 섬을 압도했다.
"포상금이 있더라고. 몰랐어. 그렇게 쉽게 꼬리가 잡힐지도 몰랐고, 꼬리 끊기 당할지도 몰랐지."
연은 수첩에 '꼬리 끊기'라고 쓰고는 한참 손이 멈췄다. 섬은 연이 수첩에 무엇을 쓰는지 궁금해서 눈을 심하게 깜빡였다.
"쉽게 시간이 갔지. 가끔은 내가 어디가 아픈지, 뭘 고쳐야 할지 모르겠어. 어디가 안 아픈지, 어디를 그냥 두면 될지 찾는 게 더 빠를 지도 모르지. 항상 다리가 아팠는데, 절뚝여야 해서 절뚝이는 기분도 들어. 팔을 써서 먹고사는데 어깨와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파서 쉬운 일을 했는데, 마음이 아프더라고. 세상이 날 그냥 두지 않는 건지, 내가 세상을 쥐고 흔드는 건지, 내 세상만 어지럽고 엉망진창인 건지."
"슬픔은 동호회 같은 거죠. 비슷한 감정들이 모이면 소용돌이치니까요. 모이면 모일수록 당연한 것처럼 보이니까요."
연은 수첩을 닫았다.
"형님, 식사나 하러 나가시죠."
연은 지긋지긋한 슬픔 동호회에서 빠져나가고 싶은 핑계를 댔다. 섬이 뱀눈깔을 하고 말하는 거짓눈빛의 틈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수수한 곤란함이 떠올랐다. 지난날의 과오를 핑계대기 핑계대기 바쁘고, 운이 나빠서 감옥살이를 했다고 하는 섬이 뚝을 안고 있는 모습이 역겹기 시작했다. 그가 말하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상황, 그의 오싹한 은은한 광기를 자신이 어떻게 보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범죄자 혹은 연민'으로 가득한 불편한 관계에서도 섬의 단단한 입이 보였다. 웃지 않아야 할 상황에도 웃으려 애쓰는 굳은 입이 두려웠다. 저것이 거짓을 뜻하는 것이라면, 저것이 살려달라는 모스부호라면. 밖으로 도망가야 했다.
oh오마주 오리지널 '라이프 느와르'
13화 아저씨(가제)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