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에는 결국, 내가 남는다

터뜨리면 터지는 게 있고, 커지는 폭탄이 있다.

by oh오마주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최후에는 결국, 내가 남는다.


번-아웃, 발현되었을 때 스스로도 사나워서 무서웠다.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남았다. 비난하는 사람은 선을 그었고, 모습 자체로도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상에서 관계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고객, 이웃 사장님들이 있었다. 나에게 유리한 사람들도 철저하게 관계에서 시작했다. 혈연, 지연, 혹은 동질감, 연민, 동정일지라도 각자의 입장이었다. 거울 속에 모든 걸 받아들이는 내가 있었다. 모자 아래 젖은 머리, 기름진 안경 아래 움푹 파인 눈동자가 처연했다. 자기 연민은 당장 해결 못할 땀자국 같았다. 최대한 단정하게 땀을 닦고 옷을 털었을 때, 내가 다시 보였다. 잘하고 있을까 물었고, 잘하고 있다 답했다. 나에게 있어 자영업은 마스크를 쓴 코 끝이 젖는 삶이었다. 내 땀을 빌려 돈을 버는 인생이었다. 조금 더 나은 일상에서 관계란, 가족과 친구 그리고 고객, 이웃 사장님들, 그리고 언제나 내 편인 독서가 있었다. 가장 힘든 순간 '바다는 잘 있습니다' 시집을 펼치고, 그 안의 바다를 또다시 보고 오곤 했다.


책에 닿는 것만이 큰 위로였다.


독서 역시 삶의 방식이라서, 단점도 있다. 독서 원액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상은 괴리감에 늘 실망하게 된다. 온전한 부모의 역할, 친구의 우호적 역할, 인류애를 통한 만민공동체, 책에 담긴 좋은 것과 소설 속의 사건들은 터뜨리면 도파민이 터지는 기폭제가 된다. 그러나, 좋은 양육조차 장단점의 양면이 있는 법이다. 모두가 권장하는 올바른 양육이라도, '내가 아닌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은 몸으로 느껴야만 알 수 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고, 만들어가는 환경은 대체로 지속된다. 특히, 개성이 아닌 도덕과 경계에 있다면 어려워진다. '도덕'을 협소하게 '법'(이를테면 벌금형과 구금형을 구분하는)의 정도가 아닌 일반 상식으로 접근해도 어려워지면, 세상이 무너지게 된다. 쉽게 말하는, '이 정도로 안 죽어', '아무도 모른다'라는 말에 오싹해지곤 했다. 책에서 알 수 없다. 몸으로 느껴야 하고, 책으로 덧대면 또 달라지는 문장들이다.


독서는 나를 완성하지만, 편견을 만들기도 했다. '모름지기 병'을 앓았다. 사회적 동물이라면 모름지기, 부모라면 모름지기, 생명을 가졌다면 응당 모름지기... 인간 사이에 있는 아름다운 글들로 착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해한 시 한 구절도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아픔이 된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체면을 위해 화를 내고, 남의 상처보다는 당장 손상된 자존심에 분노하여 별별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가만히 듣고 있었다. 먼산을 바라봤다. 준비한 단어들을 쏟아내다가 선을 넘기 직전에 눈이 번뜩였다. 멈추지 않았다면, 폭발했을 것이다.

스승 아닌 사람이 없고, 도움이 되지 않은 시련은 없었다.


"내가 왜?"라는 말에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모두 돌려받는 것, 자신의 행동을 회수하고 있을 뿐이다.'


글을 읽고 쓰면서 '단어에 집착'하는 게 가장 불편하다. 절대적으로 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평소에 단어들을 꼬집어서 많은 시간을 생각한다. 일하면서도, 자기 직전에도, 목욕을 하면서도, 밥을 준비하면서도 손과 머리는 따로 움직인다. 공중에 어떤 단어들을 띄워 곱씹고 문장들에 집어넣고 반복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날 때 괴로워진다. 단편적인, 혹은 불가분의 감정으로 취급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한다. '섭섭하다'와 '듣기 싫다'는 얼굴에 비슷한 표정을 드러낸다. '섭섭하니까, 어쨌든 듣기 싫은 거잖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목뒤가 서늘해졌다. 뉘앙스와 결론이 엄연히 다르지 않냐고 답했을 때, 똑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관계에 대해서 완벽하게 선을 그었을 때,

소설 하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독서, 포근한 독서시간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내가 살아남았다. 그리고 일상을 살아간다. 아쉽지만 소설의 결말처럼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 갈등의 구도가 멋진 소설을 읽었을 뿐, 여운이 길더라도 또 다른 소설을 펼치면 된다ㅡ 그렇게 생각했다.


최후에는 결국, 내가 남는다

응원의 말들을 하나씩 꺼냈다. 친한 대학 후배에게 안부전화를 했더니, 생각나서 들렸다고 종이가방을 내밀었다. 크리스마스에 산타는 여름에도 찾아왔다. 아주 따뜻한 포옹처럼 큰 감동이 밀려왔다. 크고 작은 선물들을 하나씩 펼쳐보니 저절로 미소 지어졌다. 볼펜, 스티커, 쿠키, 연필이 마음까지 들어왔다. '내 취향'이라던 후배의 표정을 떠올렸다. 영속되는 관계에 감탄했다. 가방에 쓰던 볼펜을 선물 받은 볼펜으로 교체했다. 여전히 잘 나오는 볼펜들이지만, 오늘의 볼펜에게 나를 양보했다. 노트북에 낡은 스티커들을 떼어내고 선물 받은 새로운 스티커를 공들여 붙였다. 뜯어낼 때 안녕을 외치고, 붙일 때 또다시 안녕을 외쳤다.

작은 선물들은 마침표가 되었고, 새로운 이야기의 첫 줄의 공백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나만 남은 이야기들을,

다시 천천히, 공들여 시작해보려 한다.


내게 닿은 세상이 터지지 않고 커지기를 바라본다.

누군가의 세상도 하나만이 남더라도

다시 천천히, 커져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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