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욕심, 성격 차이라는 참극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158쪽 : 남편 없이 혼자 당하는 그 일은 막막하기가 하늘 넓이였고 바다 넓이였다.
159쪽 : 여자한테 남편 하나 없어봐라. 그보다 더한 쪽박신세는 없다. 의지할 데라고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그보다 더한 한데가 없고, 세상 사람 모두가 얕잡고 들고, 강아지까지 짖고 덤빈다. 여자가 잘하면 그 은덕 모르는 남정네 없니라.
176쪽 : 인물이 못생겼으면 맘씨나 곱든지, 벌이가 션찮으면 패지나 말든지, 술이 고래면 삭히기나 잘 허든지, 천하에 질로 못된 인종이었으니 다 내 팔자소관이겄제, 머."
181쪽 : '돈은 죽는 길에서도 필요하구나. 고모는 그 돈이 모자라지 않게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아이그, 그놈의 돈.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한 놈의 돈!' 그녀는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185~186쪽 : 큰고모의 연립주택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하는 아들의 욕심도 놀라웠고, 도저히 치료할 가망이 없어 의사가 호스피스병원으로 보낸 큰고모가 사색 짙은 모습으로 그 집을 안 빼앗기겠다고 부들부들 떠는 욕심도 놀라웠던 것이다.
193쪽 : 다급하게 돈 욕심을 드러내 그렇게 불신을 당하고 있는 아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 있는데 아들에게 모든 걸 비밀에 부치며 돈 욕심을 부리고 있는 큰고모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199쪽 : 오수자는 그런 큰고모가 자못 충격이었다. 큰고모는 여든여섯이었다. 평생 고생고생하며 여든여섯까지 살았으면 참 질기게 살아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죽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더 살고만 싶은 것이다. 큰고모는 하루가 다르게 사색이 짙어져 가면서도 두 가지 욕심밖에 없다. 돈 욕심, 살 욕심...
215쪽 : 당신이 속 시원하게 딱 말하지 않고 뜨뜻미지근하니까 그렇죠. 당신 절대로 서린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당신 혹시 이런 얘기 알아요? 어떤 테레비에서 젊은 여자들 300명을 모아놓고 아주 재미있고 실감 나는 게임을 했어요. '현재 애인은 가난한데 10억 가진 남자가 나타나 프러포즈를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애인을 바꿀 것인가, 말 것인가?' 조용한 가운데 여자들은 비밀 전자투표기의 버튼을 눌렀어요. 그리고 곧 커다란 스크린에 그 결과가 나타났어요. 표시된 숫자는 210.
216쪽 : 허지만 그건 15년 전 얘기일 뿐이에요. 내 친구 막내딸이 여자대학 4학년인데, 축제 때 500명에게 똑같은 게임을 했대요. 그랬더니 어쨌겠어요? 490명이 애인을 바꾼다고 했대요. 15년 동안 또 그렇게 변한 거예요. 그건 당연한 일이죠. 점점 더 돈 없으면 못 사는 세상이 돼가니까요.
230쪽 : "우리 그만 헤어져요. 끝내요. 성격이 서로 안 맞아요!"
236쪽 : 그런데 딸과 아버지의 태도가 어떻게 그렇게도 똑같지? 나를 떼쳐버리려는 것이. 성격 차이 ...? 딸도 아버지도 그 막연하기 작이 없는 말을 내세우며 헤어지자고? 끝장내자고?
243쪽 : 그 어마어마한 재력 앞에서 박서린의 정절은 햇볕 아래 눈사람 녹듯 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 흔들려 배신을 도모하면서 엉뚱하게 내세운 이유가 그 모호하고 흔해빠진 '성격 차이'였다. -중략- 집안이 거덜 난 남자와 인생을 시작할 수 없다면 거짓말을 하지 말고 솔직했어야 한다. 희망이 없어 함께 못 살겠다고. 그만 헤어져 서로 잊자고.
1) 살 욕심, 돈 욕심
'내가 오래 살아서..'라는 말을 자주 하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요즘은 그런 말을 거의 듣지 못하는 것 같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은 장수라는 말이 무색하다. '병이 나으면 제주도에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하는 큰 고모를 보면서 주인공은 '돈이 뭐길래'라고 한다. 욕심일까? 솔직함일까? 80살이 넘은 조정래 작가는 이 글을 쓰면서, 읽는 나와는 달리 깊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날카로운 문장과 날 것 그대로의 표현에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것보다 스스로를 평가하는 게 더 냉혹한 사람이라 추측되었다. 마음이 쓰라리기도 했지만,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는 사람의 욕심 앞에서도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2) 스토킹하는 사람은 스토킹이 아니라고 하고, 헤어짐의 이유에 화가 났다.
뉴스에서 봤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결이 달랐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잘못되었음을 알면서도 이기적인 인간의 양면을 보니, '추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별반 다르지 않은 나라는 인간이 신랄하게 비판당하는 것 같았다.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동반했다. 돈의 묶음인 '부'가 기본적으로 인간미가 있어야 함을 뚜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요량을 바라지 말고, 마음가짐을 바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사에 '돈'이라는 물건이 주인이 되는 모습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3) 돈 교육 3일차,
눈 내려 온 세상이 하앴다. 거센 돈 교육에 그 눈들이 돈으로 보일 지경이다. 황금종이라는 책의 표지를 보며, 5만 원권을 떠올렸다. 신사임당 얼굴이 그려진 오만 원을 떠올리자니, 인간이 만든 종이에 가상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 10살 아들이 수학 공부를 했던 학습지와 다름없는 종이라는 걸 우연히 깨달았다. '돈이 필요한가?' 질문은 답이 정해져있지만, '돈이 많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