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는 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143쪽 : 그들은 야윈 목을 힘없이 양옆으로 흔들고 반쯤 벌린 입으로는 하얀 숨을 토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좁은 길을 걸었다. 그리고 꿈꾸는 듯 공허한 눈으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을 찾아다녔다. 황금색 털은 겨울이 깊어감에 따라 원래 색을 잃고, 쌓인 눈에 섞여들듯 흰색에 가까워졌다.
148쪽 : 그림자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느릿하게 숨을 쉬었다. 열이 나는지 말라붙은 입술에 군데군데 딱지가 앉았다. 숨 쉴 때마다 목 안쪽에서 작게 색색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152쪽 : 만약 그렇다면 모순과 가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세계에 머무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57쪽 : 이건 기적의 자투리 같은 것일지도 몰라.
159쪽 :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났어.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아침, 맑은 하늘에서 아름다운 무언가가 팔랑팔랑 떨어지듯이.
(중략) 생명력이(정확히는 생명력 같은 것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술술 새어나가고 있어. 지금 상태로는 그 유출을 멈출 수도 없고. 내 손은 두 개뿐이고 손가락은 열 개뿐이니, 정말이지 어림도 없는 얘기야.
160쪽 : 그 검소하고 군더더기 없는 차림이 어떤 옷보다도 너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돋보이게 했다. 매끄럽고 탄력 있는 피부는 유채기름 램프 불빛 아래서 싱싱한 광채를 발했다. 방금 전에 막 완성된 것처럼.
164쪽 : "아마 의식을 죽이기 위해서겠죠." 그가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가를 훔쳤다. "때로는 그게 가장 편한 길로 여겨지니까요."
172쪽 : 그렇게 나는 너에 대한 모든 단서를 잃고 만다. 아무래도 너는 나의 세계로부터 소리 없이 퇴출된 모양이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설명 다운 설명도 없이.
186쪽 : 내가 보는 한 눈앞에 있는 건 병조림처럼 가둬진 '혼돈의 소우주'일 뿐이다. 우리의 마음이란 이토록 불명료하고 일관성이 결여된 것인가?
196쪽 : 시간은 밤이다. 구덩이 위 직사각형으로 잘린 하늘이 보인다. (중략) 나는-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의식을 잃는다. 깊은 비의식의 바다로 가라앉는다.
207쪽 : 마치 부드러운 젤리층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처럼.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무언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시간도 거리도 없고, 고르지 못한 알갱이가 섞인 듯 독특한 저항감이 느껴질 뿐이다.
3일째가 되니 그의 표현에 너무 익숙해져가고 있다. 나는 17살, 너는 16살이라는 말을 하며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소설 데미안이 떠올랐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감정은 끊임없이 소용돌이 속에서 그네를 탔다. 멀미가 날 지경이다. 그들이 지정해 놓은 사랑이 깃발 꽂기와 같아서, '사랑의 완성'이라는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짠했다. 하루키 작가는 어슴푸레 19금을 연상케 하는 장면을 넣고 있는데, 그 표현이 거부감 없이 솔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편견일까? '솔직한 학생, 솔직한 어른, 솔직한 작가'라는 기분에 자꾸 기본적인 의심도 버리게 된다.
의문과 궁금증이 아직 모호하긴 하지만, 해결되어가고 있다. 빠른 시간 전개와 영화 같은 급전환되는 장면들에도 큰 동요 없이 읽히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란,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