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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벽돌책] 2.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2일차)

by oh오마주

파트 설명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1. 일기


82~83쪽 :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너에게 설명하고 변명한다. 그건 시커먼 대형견 같은 거야. 한번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손쓸 도리가 없어. 아무리 튼튼한 목줄을 매어 잡아당겨도-


84쪽 : 올바른 어휘를 모색하는 사람의 일시적인 침묵은 아니다. 침묵을 위한 침묵 - 그 자체로 완결된 구심적인 침묵이다.


87쪽 : 우리는 손 크기가 꽤 다르다. 네 손이 얼마나 작은지 볼 때마다 나는 번번이 놀란다. 그 작은 손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하는지 감탄한다. 이를테면 병뚜껑을 비틀어 딴다거나, 여름밀감의 껍질을 벗긴다거나.


97쪽 : 노인의 달걀처럼 동그란 두상에 백발이 잡초처럼 들러붙어 있었다. 체격은 왜소하지만 등이 꼿꼿하고 움직임에 절도가 있다. 걸을 때 왼 다리를 가볍게 끌어서 불규칙한 발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102쪽 : 거기 있던 게 결코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세계의 광경이었다는 걸세.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구나 자기 안에 품고 있는 세계이기도 하지. 내 안에도 있고, 자네 안에도 있어. 그럼에도 역시, 사람이 봐서는 안 되는 광경이라네. 그렇기에 우리는 태반이 눈을 감은 채로 인생을 보는 셈이고.


106쪽~107쪽 : 너는 고개를 젓는다. "특별히 구체적인 원인 같은 건 없어. 그냥 순수하게 그렇게 돼버릴 뿐이야. 커다란 파도 같은 게 소리 없이 머리 위를 뒤덮고 나를 집어삼켜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언제 닥쳐오고 얼마나 이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그러면 불편하겠다."내가 말한다.

너는 미소 짓는다. (중략)

하지만 그건 그거고 최소한의 실제적인 질문은 필요할 것이다.


111쪽 : 나는 시간의 경과에 대해 생각한다. 규칙적으로 삐걱이는 그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가끔 내가 무언가의, 누군가의 그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너는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듯 말한다. "여기 있는 나한테는 실체 같은 게 없고, 내 실체는 다른 어딘가에 있어. 지금 여기 있는 나는 언뜻 나처럼 보여도 실은 바닥이나 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그런 생각을 지울 수 없어."


118쪽 : 이 도시에서 내오는 음식이나 음료는 하나같이 소박했고 대개 대용품이었다. 그러나 맛 자체는 결코 나쁘지 않았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 어딘가 친근하고 정겨운 맛이 났다. 사람들은 검소하지만 곳곳에 여러 지혜를 쌓아가며 생활하고 있었다.


119쪽 : 늙은 짐승들, 몸이 어딘가 약한 짐승들, 무슨 이유에선가 어미에게 버림받은 어린 짐승들 - 가장 먼저 죽어가는 건 그런 개체들이다. 계절이 그들을 엄격하게 선별한다.


125쪽 : 그림자는 말했다. "당신이 인생에서 무얼 추구할지는 당신 소관이죠. 누가 뭐래도 당신 인생이니까요. 나는 그저 부속물일 뿐이에요. 훌륭한 지혜를 가진 것도 아니고 현실에서도 거의 쓸모가 없죠. 그래도 말입니다, 내가 아예 없어지만 나름대로 불편한 점이 있을걸요. 잘난 체하고 싶진 않지만, 나도 지금껏 아무 이유 없이 당신과 함께 행동해 온 게 아니라고요."


127쪽 : 나처럼 날마다 가련하게 죽어나간 짐승들 뒤처리나 하다 보면 육체 따위, 신전은커녕 그저 너저분한 폐가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그리고 그런 궁상맞은 용기에 욱여넣어진 영혼 그 자체에 점점 신뢰를 잃는단 말이지. 그까짓 거, 사체와 함께 유채기름을 끼얹어 확 불살라버리면 되지 않나 싶을 때도 있어. 어차피 살아서 고통받는 재주 말고는 없으니. 어때, 내 생각이 틀렸나?




해가 눈부셔 커튼을 쳤다. 그 역시 벽의 도시에 들어가 눈이 아려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노인과 벽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부터 이곳은 혹시 천국이나 사후세계와 같은 곳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너'인 그녀는 평소와 달리 침묵했다. 긴 침묵은 우울증에 대한 서사였다. 평소에는 우울을 집에서 은둔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밖에서 걷는 등의 행위로 해결하지 않지만, '나'와 '너'의 만남을 위해 나온 것이다. '너'의 짙은 우울증으로 의심되는 부분에서는 '나'의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너'의 급작스러운 감정과 첫사랑을 놓치고 싶지 않은 어린 사랑을 생각했다. '너'가 그림자 이야기를 시작할 때부터 남자의 환상 같은 것이라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와 너, 그리고 지금의 나와 너는 항상 함께이다. 그녀의 벽의 도시 속에서 살고 있는 화자가 실체인지, 그림자인지, 그 세계는 어떻게 들어가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꿈은 아닐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께가 굵디 굵은 소설을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점차 알 것만 같다. 그의 표현은 새롭지만 단어들은 또 익숙하다. 묘사와 표현에서 오는 황홀감은 가슴에서 열이 나게 한다. 닮고 싶다는 마음이 아니라,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그의 필력에 매 순간 감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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