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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벽돌책] 2.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최종화)

by oh오마주


파트 설명


'1. '일기' 파트는 작가가 하는 말 중에 내 가슴에 꽂힌 몇 구절, 문단이다. 노트에 기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손으로 쓰는 문장은 머릿속에 박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즐겼던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2. 'omg'Oh_hoMmage_oriGinal이다. 아주 짧게 작가가 쓴 글을 보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연결시킨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싶었다. 인간의 창작은 한계가 있다. '나'의 생각에 '작가의 생각'이 부분적으로 스며드는 것이 신기했다. 다르더라도 비교하며 즐기는 시간이 매우 즐거웠다. 독보적인 표현에는 감탄과 존경, 오마주가 있었다. 소설을 따라가면서도 멀리서 관망하기도 하고, 가까이서 등장인물의 감정에 휘말리기도 했다. 글을 읽는 모든 사람에도 그 순간을 선물할 수 있기를.










1. 일기


654쪽 : "비유적인지, 상징적인지, 암시적인지 잘 모르겠지만"이라고 의대생 동생은 말했다.


657쪽 : 강한 기시감으로 온몸이 욱신거리며 저려왔다. 몸안을 도는 혈액에 어떤 보이지 않는 이물질이 섞여든 것처럼.


666쪽 : 그러나 그것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사이, 전체의 축척이 여느 때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671쪽 : "그의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이 한데 뒤섞여 있어." 그녀는 말했다. "마치 평범한 일상 속의 일들인 것처럼."


675쪽 : "당신은 누군가에게 쫓기지도 않고 남의 눈을 피해 살고 있는 것도 아니야. 직접 진취적으로 선택한 인생을 살고 있을 뿐이지."


680쪽 : 하지만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기다리고 싶다는 마음에는 나름의 가치가 있지 않을까.


681쪽 : 내가 내뱉는 숨이 딱딱한 물음표가 되어 허공에 하얗게 떠오른다.


684쪽 :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693쪽 : 나의 기억과 나의 현실이 그곳에서 포개져 하나로 이어지고 뒤섞인다. 나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본다.


696쪽 : 이제 알겠어? 우리는 둘 다 누군가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701쪽 : 길게 이어진 혹독학 겨울 사이 그들은 많은 생명을 잃었다. 태반은 늙은 개체들과 충분한 체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 새끼들이다. 어찌어찌 살아남은 짐승들도 만성적인 굶주림으로 야위었고, 가을에 황금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던 털은 광택을 잃었다.


703쪽 : 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순환한다. 빙글빙글 돌아간다. 같은 곳을? 아니, 그건 알 수 없다.


716쪽 : 찌르는 듯한 똑바른 시선이 피부가 얼얼하리만큼 느껴졌다.


725-726쪽 : 짐작건대 현실은 하나만이 아니다. 현실이란 몇 개의 선택지 가운데 내가 스스로 골라잡아야 하는 것이다.


738쪽 : "그래요. 이 도시에는 현재뿐입니다. 축적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덮어쓰이고 갱신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세계입니다."


746쪽 : 난생처음 봄날 들판에 나온 어린 토끼처럼, 내 마음이 내 의지에 반해 설명할 길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무제한의 약동을 갈구하는 것 같았다.


767쪽 :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






'나'의 독백 부분이 좋다. 다른 이들과 대화할 때는 다정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말하기보다는 주로 듣는다. 고야스와의 대화는 물론 독백에 가깝다. 독백을 할 때, '나'는 사물을 천천히 훑어보고, 감정을 바느질하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수놓는다. 격함도 차분함도 슬픔도 모두 한 올 한 올 수놓는다. 특히 독백에서 비유를 할 때, 더욱 놀란다.


소설이 막바지로 가면서, 하루키는 하고자 하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한다. 우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서글픈 기분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위로가 된다. 작은 존재이기에 큰 일을 하지 않는 지금도 괜찮다. 감정이 살아 있는 기분이 든다. 카페 여사장처럼 '총체적으로 좀 더 가설적으로' 말이다.


그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는 말은 같았다. [요컨대 진실이란 것은 일정한 어떤 정지 속이 아니라, 부단히 이행=이동하는 형체 안에 있다. 그게 이야기라는 것의 진수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할 따름이다.(767쪽)] 마지막 한 줄에 마무리되는 그의 긴 서사. '아쉽지만 헤어지자.'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아서 '시원 섭섭'했다. 여운을 남긴 '열린 결말'이었지만, 내 안에서는 당연히 해피엔딩이었다. 나는 이 소설책 속에서 누구였을까? 아마, 옐로 서브마린 아이였으리라. 아니면 '나'였을까. 젊은 날의 순수함을 갈망하는, 마음속 한편의 하얗고 작은 방의 문을 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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