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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Mar 18. 2024

김밥을 싸는 마음

가족이야기3. 시어머니, 그리고 형님

 김밥은 질리지 않는 음식 중 하나다. 일터에 반찬과 국을 시어머니께서 해주시는데 주말이면 김밥을 싸주신다. 유부초밥을 싸주실 때도 있고, 온갖 김밥 재료를 다 넣어주실 때도 있다. 김치를 작게 다져 넣어 들기름에 볶아 말아 주실 때도 있다. 특히 남는 반찬으로 해주시는 김밥은 별미다. 일이 손에 익지 않아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을 때부터였다. 주말에 바쁘다 보니 일하면서 먹으라고 준비해 주시던 게, 지금은 주말 특식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만 되면 출근해서 김밥 먹을 생각에 신난다.



우리 동네가 그렇다. (다른 동네도 그럴지 모른다.) 시댁과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반찬과 육아를 도움받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호칭도 아이 이름을 붙이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다. '누구 할매'라는 게, 마치 '누구 엄마'와 같은 명함을 가진다. 


시댁에 가면 시엄마의 밥을 얻어먹고, 눈치껏 설거지를 하고 돌아온다. 오는 길에 맛있었던 반찬은 잔뜩 싸가지고 집으로 오면 여러모로 행복하다. '시어머니 찬스'는 대체로 유효하다. 가정의 행사 때마다, 도움을 받는 게 어색하지 않다. 언제 바쁘신지, 언제 모임이 있으신지 다 알고 있으니, 당연하다. 전화 한 통에 'ok'사인만 돌아오면 끝이다. 재료값밖에 안되는 용돈에, 고마움의 표시는 '감사합니다 '한마디면 족하시다고 한다. 시어른께 잘하라고 진심으로 잔소리하는 친정엄마만 봐도 그렇다. 


거의 매일 만나지만, 만날 때마다 말할 일이 생긴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그런데 시원찮은 핸드폰 충전기, 6시간 넘게 15%인 채로 있었나 보다. '그래 바꿀 때 되었지!'라고 하면서도 은근히 화가 났다. 여분의 충전기를 찾아서 부랴부랴 꽂아놓고 노트북을 폈다. 오늘은 어떤 마감을 먼저 해볼까? 브런치? 공모전? 블로그? 다이어리?


브런치 다음 주 분량을 마무리하고, 샤워를 했다. 20분 정도 시간일 텐데, 그 사이 화장을 한 듯한 거실이 낯설다. 창에서 미처 다 담지 못하는 빛이 흘러나오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빛이 한 줄기가 들어왔다. 길게 늘어진 빛을 보면서 왜 시어머님의 김밥이 생각났을까? 혹시 배가 고팠던 건 아닐까? 하필 밥솥으로 빛이 들어갔다. 시어머님은 빛일까? 의심의 여지가 없지.


또 말한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김밥이란, '조련 도구'가 아닐까, 생각도 든다.



 물을 한잔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김밥 두 줄이 보인다. 어제저녁, 형님(아주버니의 부인)이 김밥을 싸서 시조카편으로 4줄이나 보냈다. 김밥 집에서 한 줄에 4천 원이나 할법한 굵고 단단한 김밥이다. 10시 야간 출근하는 사람이 잠을 자도 부족한 시간에 김밥을 쌌다니, 김밥이 아니라 금밥이다. 고맙다고 카톡을 보내니, 전화가 왔다. 


'먹고 싶어서 쌌어. 바로 못 먹은 거 보니 바빴구나? 많이 먹어. 오늘 고생 많았어.' 


효도해야만 할 것 같다. 3살 어린 내가 딸이 된 기분이 들었다. 하는 것에 비해서 늘 받는 게 많으니, 세상 참 아름다운 불공정이다. 그러면서도 매우 좋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김밥처럼 야무진 하루 되길.


단무지처럼 짭조롬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햄, 두툼한 계란, 한 켠으로는 시금치처럼 건강한! 그런 하루 되길 바라며 어금니로 김밥을 보낸다. 행복한 미소 발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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