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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Mar 20. 2024

담백한 사랑, 결혼 생활

가족 이야기 4. 남편

“여전히 단짠단짠인가요?”

나의 결혼생활은 담백하다.


친정아버지 퇴직 1년 남기고 효도를 했다. 결혼식을 했고, 정년 퇴임일에 맞춰 출산했다. 퇴직 후 무료할 1년을 '딸의 아들'을 위해 일하게 하였다. 결혼을 한다면 '지금 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당시, 내 결혼관은 하려면 시기를 지나지 말고, 시기가 지나버린다면 하지 말자, 주의였다.

남편에게는 어떻게 보면 몹쓸 짓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임신한 걸 가장 후회한다. 직업도 없이 외벌이 남편을 힘들게 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결혼했을까? 누구는 결혼 후 몇 년간 아이 없이 직업을 갖고, 혹은 아이 하나에 직업을 계속 갖는 것을 전제로, 누구는 집도 반반, 누구는 친정에서 차를 예물로 해줬다더라.. 남의 이야기만 들렸다. 그런 남들을 결혼으로 양 집안을 거덜 낼 요량으로 결혼할는지도 모르겠다 했다. 모두 간소화했다.


 결혼 전, '우리는 사랑일까?' 매번 되감았다. 남편은 회사 생활을 오래 했지만, 투자의 시행착오를 많이 거친 통장 잔고를 가졌다. 결혼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고 했다. 나는 벌어놓은 돈을 어학연수에 탕진하고, 늦게 다시 취업해서 결혼 당시 연봉의 반뿐이었다.


 남편은 지금도 농담으로 말한다. '눈 질끈 감고 결혼했다, 그때 아니면 결혼 못 했을 것 같아서.'

 물론 나도 받아친다. '그렇다면 나는 눈 질끈 감고 이 악물고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결혼했지, 어쩔 수 없이.'

  반은 사실이었다. 지독히 뜨거웠던 불꽃을 바탕으로 연애했다고 생각했다. 반대편에서는 기억은 왜곡되었다고 말했다. 성격이 안 맞아서 힘들었다고 한다. 서로가 불같아서, 너무 불같아서.

결혼해도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우리가 잘 살아나갈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뱃속의 아기도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나만 잘하면 되니까! 다 자신 있었다. 자신감은 희망 같은 주문이었고, 현실은 현실이었다.


  결혼은 '합'이 아니었다. '곱'이었다. 내가 힘들어서 제로 상태가 되었을 때, 그도 제로가 되었다. 기대어줄 나무 같은 건 정말 나무에게나 가능했다. '사회적, 경제적 공동체'가 된다는 것은 고통을 반으로 쪼개는 게 아니라, 무조건 같이 들어야 해결되었다. 힘든 시간은 우리에게 그런 날들이었다.

  지금은 그때를 다행히 추억한다. 웃으며 마트에서 '천 원짜리 햄'이냐, '이천 원짜리 햄'이야 몇 분이나 고민했던 그때가, 장날이면 함께 웃으며 만 원의 행복 찍었던 그때가, 넉넉하지 않아 답답하면서도 웃겼던 날들이 전부 결혼이라는 액자에 담겼다.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서도 앞만 걱정하면 되니까, 그래도 좋다고 한다. '그때에 비하면'을 매일 덧붙이며.

  시간을 쪼개어 산다는 게 눈치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크게 관심 없이, 조언이나 충고 따위 없는 남편이, 그저 진지한 취미 정도로만 봐주는 것이, 내가 쓰는 글은 머리 아파서 싫다고 모르는척하는 남편이, 편하고 좋다. 호수처럼 조용하고 닭 가슴살처럼 담백하고 건강한 우리 사이가 고맙다. 월요일은 사랑이 극에 달한다. 12시에 출근하는 날이다. 그는 푹 자고,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그렇게 안개가 걷히고 오늘도 쨍한 해가 얼굴에 비치리라. 함께여서 앞으로 걱정되지 않는다. 

이런 우리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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