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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Mar 27. 2024

텀블러 노래방

가족이야기 6. 조카 아들 그리고 메모


 우리 일상, 마음속 바닥에는 우울함이 깔렸다. 그럴 때마다 촉촉하고 푹신한 우울함 위로 노래를 부르며 방방 뛰어보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으로는 아쉽다. 말하고 싶다. 며칠간 말을 아꼈다. 반박하는 말을 하고 싶어서 몇 번이나 목젖에 진동이 일렁였다. 마음먹었으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기분이 '탄 음식이 몸에 안 좋은 걸 알지만, 꿀꺽 삼킨 것'같았다. 유쾌하지 않았다. 그저 참는 것보다 생산적인 것이 좋았다. '메모', 기분들을 단어와 문장으로 모아 썼다. 대체로 억울했구나, 잘 자고 일어난 내가 그때의 나를 위로한다. 의외로 예쁘장한 단어들도 나왔다. 


'감각과 반응을 최소화했다. 나쁜 일 앞에서는 절전모드로 살자.'

'비아냥이 행복 조건이었을지 모른다. 착한 마음일지도 모르는 말들을 포장되었다고 생각하지 말자. '

'삶의 단락을 끊어 읽었다. 하루키처럼 그림자까지 토막 내면 어떨까. 삶이 되기 전에 상상으로 세상을 펼쳐본다.'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았다.'


감상과 감정이 뒤섞인 글들은 기억의 서랍을 뒤적이는 것 같다. 그 사이로 한 단어를 보며 '푸핫' 웃어버린다.




나에게는 고등학생 조카가 있다. 같은 동네에 살다 보니 거의 매일 와서 짧게 이야기하고 간다. 방학 동안 매일 코인 노래방을 간다. 시댁에서 오직 한 분, 시어머니께서 노래를 매우 잘하시는데 직계 가족 중에 노래 잘하는 사람이 없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조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 같다. (아직 못 들어봤다.) 작년을 돌아보면, 조카는 학교에서 갔던 야영에서 노래로 장기자랑 상품을 받아왔다. 라면을 잔뜩 받았다며 우리 가게에도 가져왔다. 6개 들어있는 박스를 세 개나 선물 받았다.


"오늘 조용해서, 일할 힘이 안 난다. 훈아, 노래 불러도. 함 들어보자."


"아, 숙모, 에코가 없잖아요."


"에코 탓하기 있기 없기? 못하면 못한다 해라잉!"


"아니에요. 잘해요."


"그럼 이 텀블러에다 대고 노래 불러봐!"



© andrewtneel, 출처 Unsplash

텀블러는 보온 보냉이 되는 스테인리스 재질이다. 커피를 사니 옆에 박스테이프로 붙어있어서 두 통을 샀었다. 그 텀블러에 매일 커피와 물을 번갈아 담아 마신다. 일하는 곳 가까이 두고 매일 쓰는 거라 대충 헹궈서 내밀었다.


"네?"


"이렇게 말이야. 타요타요 타요타요"


완벽한 에코가 들렸다. '자기 차례야' 하고 남편에게 갖다 댔다. 남편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질렀다.







 


"오겡끼데스까~~와따시와 오겡끼데스~~"

사진 출처 : 봄날부동산 님

   


남편의 가슴을 과한 듯 세게 '자기 몰라 몰라'를 시전 했다. 남편은 아픈데 참는 듯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같이 목젖 자랑하듯이 '깔깔깔 깔 우 걀걀 걀걀' 웃었다. 앙코르를 외쳤다. 우리 부부는 입맛이랑 성격은 다르지만, 개그코드가 완벽하게 잘 맞다.


조카는 상황이 이해 안 되는 듯했다.


"그래 이걸 알면 2000년 대생이 아니지."


(깔깔깔 깔 우 걀걀 걀걀)


너무 웃어서 배가 고파질 정도였다.


'텀블러 노래방, 배고픔' 메모..


이런 에피소드를 메모하지 않고, 그저 시간에 흘려보냈더라면... 그래서 쉽게 잊었다면, 아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메모로 나쁜 감정을 묵히고 꺼내겠지만, 또 메모로 좋은 감정도 기억한다. (이제 텀블러만 봐도 웃기다.) 마음을 꿀꺽 삼키지 말고, 메모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텀블러 노래방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찬장을 열어요. 얼른 이요. 에코 is 행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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