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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오마주 Apr 01. 2024

밥솥이나 운전할까 (1)

가족이야기 7. 남편집사에게 의지하는 초보운전자

메인사진 원본 : https://blog.naver.com/xiipego/220629784645

 

 인정해야겠다.


나는 만년 초보운전이다. 남편의 잔소리는 필수불가결하다. 남의 편이 초보라고 놀릴 때마다 열 번에 한 번은 진짜 화가 난다. 이를테면, “나: 의자 세웠어? 많이 불편한데?", “ 그이: 왜 이렇게 누워서 운전해? 이러다 사고 난다.” 결국 마지막에는 “머리를 묶고 있으니까, 아니면 눈을 이렇게 치켜뜰까?" 터질 게 터진다. 운전을 하는 것이 초능력이라도 되는 양 말할 때마다 '비아냥의 코웃음'을 친다. '꼬맹이'라고 놀림당하는 꼬맹이의 마음을 알긴 하는가, 말이다.


 몇 년 전 모닝이 애마였을 때 일이다. 일하는 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살았다. 4층짜리 빌라에서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걸어서 출퇴근이 가능했다. 그래서 차를 탈 일이 많이 없어졌다. 출근 전후로 차크닉이나 당근 하러 갈 때 쓰는 게 다였다. 심지어 주차난이 심각하다. 교대 근무가 시작하는 월요일 전날, 일요일 밤이면 아파트 주변으로 차로 꽉 찬다.


 그런 날이었다. 퇴근을 30분 정도 일찍 했다. 남편도 약속으로 나간 밤, 아들과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불 들어오기 직전의 차에 주유도 하고 금오산 매점에 어묵도 한 그릇 먹었다. 예전에 이사하기 전 빌라에 있을 때는 이렇게 한 번씩 아이를 데리고 야밤 드라이브를 나왔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모습, 색색깔의 불빛에 즐거워하던 모습···. 야밤 드라이브를 한 날이면,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세상모르고 잠들었었다. 생각만으로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런 날이 있었노라'라고 아이와 웃으며 즐겁게 드라이브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회상도 잠시, 커브를 틀고 아파트 입구까지 가는데 갓길에 차가 줄줄이 소시지처럼 많았다. 내 자리는 없다. 아이는 슬슬 잠이 오는지 눈을 껌뻑였다. 혹시나 싶어 지하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다. 2바퀴를 돌 때쯤 아이가 잠들었다. 이중 주차를 시도했다. 바로 앞에서 하이에나처럼 주차 자리를 찾는 다른 차도 있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전면 주차를 하기 위해 앞으로 살살, 살살. 쿵. V로 시작하는 차의 검은 엉덩이를 살짝 박아버렸다.


 ‘삐-’ 소리와 함께 시간이 멈췄다.


멀미가 났다. 박은 티도 안 나지만 ‘초보운전 김 여사’를 자주 찾아봐서(심지어 나도 김 여사) 그냥 가면 뺑소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 차량의 앞으로 향했다. 아파트에 등록된 주차 확인 스티커에 동호수가 있음을 확인했다.  


 남편이 말하길, '반드시 사고 난 직후에 연락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범퍼는 고무가 아니라 플라스틱이라는 점, 밤이고 지하주차장이기 때문에 낮에 지상에 올라가서 보면 다를 수 있다는 점, 내가 잘못했다는 점, 상대를 잘못 만나면 어쩔 수 없다는 점’ 등의 여러 가지 이유를 내어 놓았다. 나의 분한 마음을 단념시키고 있었다.


 ‘늦은 밤 문자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주차를 하려다 뒤 범퍼를 살짝 부딪쳤습니다. 확인해 보시고 연락 한 번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 문자를 쓰라는 대로, 보내라는 대로, 사진은 찍으라는 대로. 혼자 고군분투하는 사이 12시 반이 훌쩍 넘었다. 아이는 잠들어서 급한 대로 안고 집에 눕혀 놓고, 돌고 돌아도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멀리 세웠다. '차가 흙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던데, 차를 많이 사랑해서 나보다 차에 측은지심을 더 느끼면 어쩌지? 밥솥이나 운전할까?' 후회와 걱정이 시작됐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왔는데, 불 켜기가 싫었다. 일은 열심히 해도 끝이 없고, 돈은 모으면 뭘 해, 사고 쳐서 다 쓰고, 이제 좀 안정되나 싶은데 또 정신없고, 영혼이 ‘푸시일’ 하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걱정되었는지 남편이 전화를 또 했다. “내일 전화가 오면 너무 굽신거리지 않아도 돼. 이러려고 보험 가입한 거니까. 그리고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정말 죄송하다. 주차를 하려다가 운전이 미숙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제가 고쳐드리겠습니다.’라고 일단 말해. ‘문제가 있으면’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마.” 고쳐달라고 하면 보험 처리하면 되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서 얼른 자라고 말하는데, 나는 ‘어린이’, 남편은 ‘어른이’ 같았다.


 고백하자면, 첫 번째가 아니다. 이미 '비보호좌회전'으로 사고를 내서 보험료가 한 단계 올라간 상태였다. 그날도 평소보다 유난히 잔소리를 했었다. "아는 길만 가.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모르는 길 가면 꼭 사고 난다!” 잔소리에 입이 오리만큼 나왔었다. 아직 모르는 게 투성이인 '운전 신생아'였는데, 겁도 없이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라는 내비게이션 안내만 듣고 핸들을 돌렸다. 사람만 위험을 비켜갔을 뿐, 큰 사고에 차와 통장은 크게 울었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조언을 무시한 죄를 받은 것 같았다. 상대방에게 머리를 조아려 사과밖에 못했던 내 모습이, 그리고 남편이 오기만을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렸던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면 부끄러웠던 기억들이, 보험처리가 되고는 ‘이럴 때 쓰려고 보험 든 거니까 괜찮다.’라는 말로 위로받았던 것까지 죗값 같았다.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이 오지 않았다. 두 손을 모아 기도했었다. 


‘제발, 제발’


© chrisliveran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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