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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와우 Oct 29. 2018

불안한 날들의 연속

불안하고, 또 불안한



“죽을까?”, “죽으면 끝날까?” 생이 결국 끝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서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하던 날들이 있다. 무엇이 그렇게 나를 괴롭혔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술 한 잔에, 노래 열창에, 운동에 날려버리는 듯한 일상적인 고민 덩어리들이 나에게는 계속 쌓이기만 해서 결국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왜 나는, 왜 나만 괴로운 것 같지.’ 물론 나만 괴로운 거 아닌 거 너무 잘 안다. 그러나 자꾸 마음은 외로웠고 나만 이겨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괴롭다는 건, 더 괴로울 뿐이었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과거에서 이유를 찾아내면 우울함이, 불안함이 사라질 수 있을까. 나를 슬프게 한, 충격적인, 괴롭게 한 일들을 떠올려보고 적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었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욱 어둡고 무거워졌다. 유년 시절? 학교? 대인 관계? 사고? 폭력? 이유는 찾으려면 수없이 많았고, 우울증을 유발할 정도가 아니라면 충분히 아닐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유가 옛날에 있든 가까이 있든 어디에 있든 불안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생각에 생각을 하다보니 나오는 참 답 없는 답. 결국 나 자신이 문제인가 싶었다.    



‘생각을 하지 마’,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다른 걸 해봐’, ‘즐거운 일을 떠올려봐.’ 걱정의 말들. 도와주고자 하는 말들.  누군가를 걱정시킨다는 건 나에겐 또 다른 걱정을 낳는 일이었다. 나는 걱정시키는 존재구나. 바보같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의 생각을 멈추려면 멈추려는 노력을 해야했고, 아예 다른 걸로 덮어버려야 했다. 분명 그러려는 노력을 했는데도 타인이 그렇게 느끼든 느끼지 않든 스스로 존재한다는 것이 민폐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객관적으로 그러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었다. 절실히 그렇게 느꼈다. 흔들리는 불안함. 자가 치유하지 못하는 나약한 생명체.



죄책감은 한 번 생기니 커질 줄만 알지 좀처럼 멎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의미함, 죄, 잘못의 연속, 조급함, 실패감, 불안함, 그리고 우울함.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이 이토록 다양한 줄은 그 속에 들어가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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