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와우 Oct 01. 2018

흑백논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하얗거나, 까맣거나


둘 중 하나만 해!



애니메이션 인사이드아웃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의 감정 구슬이 슬픔, 기쁨 등 여러 감정이 섞인 구슬로 변화한다. 이 장면을 보고서 한참 생각했다.

‘아, 나는 섞인 감정이 어려웠구나.’


섞인다는 것. 이건 나에게 확실치 못하고 기피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즐거운데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불편하고, 슬픈데도 갑자기 웃음이 터지고, 너무 바쁜데 너무 허전하고... 이러한 느낌은 동시에 불안한 감정이었다. 난 어떤 감정을 느낄 때 해석하고 알아내야 스스로 이해해서 넘어가는 타입인데, 섞여있으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냥 그 섞임을, 복잡함 자체를 받아들여봐.”라고 말해줬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어딘가 찜찜한 기분때문에 나는 늘 날카로운 칼을 집어들고서 내 감정을 분류하고 헤집어놓으려는 준비를 했다.


마음이 우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기간 우울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감정에 대한 배신감’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기쁘면 그냥 기쁘거나, 우울할거면 그냥 우울해야했다. 동시에 살기 싫어지면 곧바로 죽음을 떠올렸다. ‘살기 싫어지면 죽어야지.’ 과격하고 간단한 사고와 확실한 결과물이 나를 편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하나만 해야 해.’ 이게 아니라면 저거라는 사고방식.


미움은 영원히 미움으로 남아야 하고, 사랑은 영원히 그대로 사랑으로 남아야했던 거다. 세상의 채찍질과 내가 만들어낸 스스로의 과격한 채찍질은 우울감의 끝으로 몰기 충분했다. 그리고 그 우울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나는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불편한 편안함을 느꼈다.






세상은 두 개가 아니야



죽음을 떠올리지만, 죽을 수 없는, 죽기 싫어하는 나를 보며 어느 순간 나의 분류 방식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순된 나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으로, 좀 더 알면 마음 불편한게 나아질까하며 심리학 서적들을 펼쳐보곤 했다. 그 책들은 내가 선호하던 사고 방식이 비합리적 사고 방식이라고 했다.


완벽하게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세상은 두 개로 나뉘어 있지 않아.’ 생각을 연습했다. 하나를 골라 끝까지 가버리는 사고를 좀 멈춰보기로 했다. 마음이 하나에만 쏠려 그것에만 집착하려는 걸 멈추는 연습을 했다. 이렇게 흑백논리를 버리려니 다시 불안해졌지만 동시에 자유가, 좀 더 넓은 자유가 주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전히 지금도 당황스러울 때, 힘겹다는 생각이 들 때, 복잡한 감정이 내 안에서 휘몰아칠 때 하나만 선택해버리고 싶고 아예 다 포기해버리거나 무언가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해버리고 싶어진다.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게 몰아치는 감정에 방화벽을 내려서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한 템포 쉬어가니 그 전보다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몇 번 해봤기 때문이다.


죽거나 살거나,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좋거나 싫거나, 선하거나 나쁘거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고 방식. 이 방식은 확실히 편했다. 그리고 변화하고 싶은 나를 옭아맸다.


세상은 두 개가 아니고 내 생각보다 범위가 넓다는 걸 염두에 두려고 노력한다. 불안한 마음을 조율하는 방법들도 하나 둘 만들어가고 있다. 색깔이 계속 바뀌어버리는 내 감정구슬을 두려워하거나 버리지 않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감을 기록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