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허무하다는 고민, 그리고 23살의 연애
대학 시절, 한 학기에 한 번씩 담당 교수님과 상담을 의무적으로 해야 했다. 그래야 교내 장학금 신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상담을 했다.)
22살때였나. 그쯤이었다. 한 번은 인생의 허망함에 대해 고민을 상담하자 교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난 왜 그 고민이 연애를
안 해서 그런 것 같지?
당시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했다. 나의 심오한 인생 고민이 고작 연애를 안 하기에 생기는 고민이라는 말인가 싶었다. 은근 내 중대한 고민에 대한 자존심도 상하고, 내심 ‘그럼 전투적으로 애인을 찾아야 하나...’ 교수님 말에 따르고자 하는, 내 감정과는 다른 모순적인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교수님의 말이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어서 나는 친구들에게 종종 물어보곤 했다.
“진짜 연애하면 나의 이런 우울함이나 허망함 같은 게 사라지려나?”
연애하는 친구는 “그거야 상대에 따라 다르지.”라고 답해줬고, 연애하지 않는 친구는 “안 만나봐서 모르겠는데?”, “혼자서도 인생 재미있는데.” 등의 답변을 해줬다.
이러나저러나 답변을 총정리하면, 내가 직접 해봐야 하는 영역이었다. 연애나 사랑이란 분야는.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외부의 말을 듣고 연애 관련 영상물들을 본다고 해도 그건 결국 진짜 내 사랑을 위한 ‘준비 단계’일 뿐이었다.
나는 어쩌다 보니 23살에 같은 과 선배와 사귀게 되었다. 주로 씨씨(Campus Couple, 캠퍼스 커플)란건 입학 초기에 대량으로 생성(?)되는 것이기에 3학년 때 형성된 그와의 조용한 만남은 주변에서 보기에 조금 이상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20살, 21살.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처음엔. ‘선배랑 나는 공통점이 많구나.’ 생각은 여기서 마무리됐다.
그리고 약 1년 반의 시간(그의 군 생활, 나의 휴학 생활 공백기)를 거쳐 다시 만난 그의 매력에 나는 갑자기 빠졌다. 처음에 그냥 그게 다였던 ‘공통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설레게 했다. 만나서 평소처럼 비슷한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 그를 만난 지는 2년 반 정도. 나는 그와 우리 사이를 사랑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로 연애가 나의 인생 허무 고민을 어느 정도 해결해주었는가?’
결론은 반은 맞고 반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와의 만남에서 무수한 삶의 의미를 배웠고, 주는 기쁨, 받는 기쁨을 느꼈다. 나홀로 배울 수 없었던 감정과 의미들. 몸과 마음이 아플 때, 기쁠 때 곁에 있기를 바라는 존재에 대한 복잡하고 단순한 감정을 배웠다.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 삶의 허무함에 대한 고민이 모두 사라졌는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그와 관련된 고민들을 한다. 그건 그냥 태어났기에, 인간이기에 하는 고민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군가와 계속 붙어있다고 해서 완전히 해결되는 감정이 아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나라는 삶으로 한 권을 책을 쓴다면, 나는 주체적으로 내용을 쓸 수 있는 기능이 주된 연필이고 내가 사랑하는 그는 색을 담당하는 ‘색’연필이 아닐까?’
결국 써 내려가는 건 나의 담당이다. 나의 노력만으로도 결말을 맺을 수 있다. 내 의지로 움직이고 생각하고 그것을 쓰고 책 한 권의 의미를 더 가치 있게 만들어야 하는 건 나니까.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허무함이나 인생 전반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를 다른 영역에서 다채롭게 해준다. 몰랐던 부분을 알게해주고, 일깨워주고, 다른 시각을 알려주고, 내가 나를 아끼지 않을때도 나를 아껴준다. 알록달록. 그래. 그는 나를 더 알록달록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흥미롭고 유의미하기에 나의 인생 기록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사랑하는 그는 내가 가진 현실적인 문제의 완전한 해결사는 아니지만, 나를 자기 방식대로 물들이는 묘한 존재다. 그래서 어떤 페이지는 가끔 색으로만 표현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아주 작아져버리고 그가 나를 열심히 지켜주려고 할 때는.
어쨌든 교수님께서 제시한 조언. 만병통치약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공감이 된다. 아, 참고로 나는 명예, 권력, 힘, 재력 등 여러 사회적 가치 중에서 ‘사랑’을 1등으로 꼽는 조용한 사랑꾼임을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