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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pr 09. 2024

해는 뜬다. 일어나야 한다.

이혼한 세 자매가 드디어 한 동네에 모였다. 



식탁 위에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쌓여 있다. 진실은 실없이 웃으며 빈 술잔을 공중에 들어 흔들어 보였다. 진주는 술에 취한 듯 하얗게 된 얼굴로 꼿꼿하게, 자세 흐트러짐 없이 빈 술잔만 내려다보며 앉아 있다. 진화는 빈 술 병을 한 손에 들고 술잔에 탈탈 털어도 보고 흔들어도 보고 있다.     


”우리 셋이 이렇게 진탕 마셔 본게 얼마 만이야?“     


진화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1년 만이지?“     


진실은 피식 웃으며 자세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앉아 있는 진주를 힐끔 쳐다 봤다. 그리고 두 손을 공중에 들어 탁탁 박수를 쳤다.     


”참 대단해. 존경스러워야 하는데, 정말 항상 재수 없어.“     


진주는 차가운 얼굴로 진실을 쳐다 봤다.     


”그러게, 그런데 그렇게 재수 없는 나한테 왜 이혼 합의해 달라고 했니?“     


”내가 도와 달랬어?“     


"네가 나한테 도와 달래고 싶어도 말을 못하니까 진화가 대신 얘기해 준 거겠지.“     


진실은 순간 진주를 노려 봤다.      


”잘났다, 진짜. 그렇게 잘나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결혼을 하더니 그렇게 떠들썩하게 이혼 했니? 너는 뭐 이혼 안 했니?“     


진주는 진실을 노려 보듯 꼿꼿하게 똑바로 쳐다 봤다. 진실도 진주를 노려 보듯 쳐다 봤다. 진화는 빈 술병을 흔들어 보이며 한숨을 쉬었다.      


”술이나 더 사 올까?“     


진주와 진실이 서로를 노려 보듯 쳐다 보듯 동시에 소리쳤다.      


”사 와.“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밤으로 뒤덮였던 아파트 단지에 해가 비춰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오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기분 좋다는 듯 픽픽 웃었다. 하기사는 룸미러로 그런 태오를 힐끔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오는 헛기침을 큼큼 하더니 진주의 얼굴을 떠올리며 혼잣말을 했다.     


”어떻게 놀려 주지? 뭐, 설마 좀 놀려 준다고 날 죽이진 않겠지?“     


태오는 한 손으로 목을 쓰다듬듯 만져 본다.                          






진화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끙끙거리며 잠에서 깬다. 진실은 진화 옆자리에 아직도 잠들어 있다. 그런데 진실의 이마에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진화는 몸을 일으켜 진실의 이마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떼어 읽어 본다.     


‘오늘은 한솔이 친구 엄마가 애들 다 같이 등교 시킬 거야. 오후 1시 40분까지 데리러 가. 시간 늦지 말고. 학원 스케줄과 주소들은 네 톡으로 보내 놨으니 확인해. 너 이제 나한테 월급 받는 한솔이 베이비시터야. 애 기다리게 하지 마.’     


진화는 포스트잇과 잠들어 있는 진실을 번갈아 쳐다봤다. 고개를 좌우로 젓더니 포스트잇을 다시 진실의 이마에 붙여 놓고 일어 났다.

거실을 둘러보며 잠시 눈을 비비고 서 있는가 싶더니 깔끔하게 치워져 있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식탁 위에는 두 사람 분의 아침밥이 차려져 있었다. 포스트잇도 붙여져 있었다.

진화는 식탁 위에 붙여져 있는 포스트잇을 집어 들었다.     


‘국을 인덕션 위에 있으니 뎁혀 먹어. 설거지는 너희들이 하고, 거실 청소 정도는 해 놓고 가고.’     


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설거지 정도는 해야죠. 거실 청소 정도야, 뭐.“     


진화는 식탁 위에 차려진 아침밥을 내려다보며 한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다. 진화는 대단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인덕션 앞으로 다가가 불을 켰다. 

그때 핸드폰 진동음이 들려 왔다. 진화는 부엌과 거실을 쳐다 보며 핸드폰 진동음이 나는 쪽을 찾아 조심스레 걸었다. 소파에서 진동음이 울리고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어, 그래요. 갑자기 부탁했는데 고마워요. 내가 12시쯤 나갈 거니까 그때까지만 좀 부탁할게요. 그래요.“     


진화는 전화를 끊고 잠들어 있는 진실을 내려다보다 발로 진실의 허벅지를 툭툭 치기 시작한다.     


”막내야, 일어나. 너 언니한테 제대로 월급 받으려면 정신 차리고 일해야지. 일어나 얼른.“     


진실은 누워서 꿈틀대며 버티는 가 싶더니 몸을 일으켰다. 진화는 허리를 숙여 진실의 이마에서 포스트잇을 떼 진실의 손에 쥐어 주고는 부엌으로 갔다. 인덕션 위의 냄비 뚜껑을 열어 보고 싱크대 위를 둘러보더니 국자를 꺼내 들으며 진실이 쪽으로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말했다.     


”밥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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