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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pr 16. 2024

그녀가 무서워 미치겠다.

진주와 태오의 우당탕탕 전쟁의 서막


대한은 조용히 밥을 먹었다. 화령도 조용히 밥을 먹었다. 화령은 말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대한의 눈치가 보였다.

화령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화정이 보낸 긴 문자를 읽었다. 결국 대한이 그렇게 알게 되었다는 게 싫었다. 셋째의 이혼을 그렇게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화령은 자신이 왜 술을 마신 건지 자신이 어린 아이 같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화령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다음 날 아침에 웃으며 화령의 술 버릇 얘기를 하고 있을 화령과 대한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가 말이 없었다. 서로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있었다. 일부러 피하는 건지,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그런 건지 알 수가 없다.

그 침묵을 일부러 깨 주듯 화령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화령은 대한을 힐끔 쳐다보며 살며시 일어나 거실 탁자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화정이었다.     


”왜?“     


화령은 눈치 없이 지금 전화를 하냐는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 갔다. 대한은 그런 화령을 쳐다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화정은 말폐 용기가 들어 있는 작은 종이 백을 손에 들고 화령의 동 건물 앞에 서 있었다. 동 건물 앞에 서서 동 건물 위를 쳐다 보며 통화 중이었다.     


”형부 나가셨어?“     


”아직 안 나갔어. 너 어차피 좀 있다 우리 집 올 거면서 아침부터 무슨 전화야?“     


”아니. 그냥, 나는 ...“     


 화정은 입을 삐죽였다.      


‘아니, 그래도 걱정돼 해장국 끓여 왔는데...’     


”형부 많이 화나셨어?“     


핸드폰 수화기 너머로 화령의 싶은 한숨 소리가 들려 왔다.      


”우리 변호사님이 어디 나한테 화낼 사람이니? 그렇다고, 딸들이 줄줄이 다 이혼한 마당에 웃음이 나올리도 없는 거고...“     


”그건 그렇지.“     


화정도 할 말은 없었다. 언니 만큼 팔자 좋은 여자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상하고, 능력 있고, 세상 누구 보다 가정을 아끼는 형부랑 살면서 부족한 게 없어 보였다. 솔직히 딸 셋도 공부들을 잘했다. 첫째 진주는 형부 닮아서 사법고시를 전국 수석으로 합격 했다. 둘째 진화는 고등학교 졸업 하자마자 남자한테 빠져 임신부터 덜컥 했었지만, 대학원 박사 학위까지 따고 교수로도 일하는 꽤 알려진 요리사다. 셋째 진실이는 솔직히 제일 떨어지긴 한다. 그래도 보육 학과를 나와 유치원 선생으로서 엄마들이랑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인기도 많던 딸이다.          


”네 형부 나가신단다. 일단 끊어.“     


”응, 응.“     


화정은 주변을 황급히 둘러보다가 동 옆에 있는 관리 사무실 건물로 몸을 숨겼다.                          






화령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소곳이 구두를 신고 있는 대한 앞에 서 있었다. 대한은 구두를 신고 허리를 펴고 화령과 마주 서더니 소리 없이 웃어 보였다.     


”우리 원여사 많이 속상해요?“     


화령은 대한의 웃는 얼굴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니, 뭐. 나보다 우리 강변호사님이 ...“     


대한은 살며시 화령을 안아 줬다.     


”나도 속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에 뭐 이혼이 그리 흠이에요? 안 그래도 우리 세 딸 속이 지 속들이 아닐텐데 우리라도 이혼이 무슨 흠인 것처럼 눈치 주지 맙시다.“     


대한은 화령을 안고 있던 손을 풀고 화령의 얼굴을 지그시 마주 봤다. 화령은 그런 대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솔직히 그 지지배들 얼굴 보면 울화통이 터져서...“     


대한은 조용히 웃으며 화령의 어깨를 한 손으로 토닥여 줬다.      


”점심에 나올래요? 그 지지배들은 당분간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 즐겁게 데이트나 합시다.“     


화령은 대한의 얼굴을 고맙다는 듯이 쳐다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은 그런 화령에게 웃어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대한이 동 건물 현관 밖으로 걸어 나왔다. 대한의 모습이 멀어져 가다가 거의 안 보이게 되자 관리소 건물 안에서 화정이 후다닥 뛰어 나와 대한이 걸어간 쪽을 다시 한 번 쳐다 봤다. 그리고는 동 건물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진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주영이가 기다렸다는 듯 서류를 두 팔로 품에 안고 진주 옆으로 다가가 나란히 같이 걸었다.      


”들었어?“     


”뭘?“     


주영은 조심스레 진주의 눈치를 살피며 쳐다보며 머뭇거렸다. 진주는 자신의 변호사실 문을 열려다가 문 앞에 멈춰 서서 주영을 쳐다 봤다. 빨리 말 하라는 표정으로 주영을 쳐다 보고 서 있었다.

주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진주릐 시선을 애써 피하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번 서회장님 의뢰, 이태오 변호사랑 너랑 함 팀이래.“     


”뭐?“     


진주는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거칠게 변호사실 문을 열어 젖히고 들어 갔다. 주영이 닫히려는 변호사실 문을 재빨리 낚아채 잡고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진주의 변호사실 안에서 서류 가방을 거칠게 책상 위에 내려 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변호사실 밖에까지 울렸다.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태오도 그 소리를 듣고 멈칫 멈춰 섰다. 태오는 사무실 안을 둘러 보다가 주영과 눈이 마주쳤다. 주영은 진주의 변호사실 안을 고개짓으로 가리키며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태오는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넥타이를 가다듬었다. 애써 웃어 보이며 사무실 직원들에게 소리 없이 인사를 했다.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쪽으로 재빨리 걸어 가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원한 게 아니다. 내 목을 조르지 말고 우리 아버지한테 따지라고.“     


태오는 재빨리, 되도록 소리 없이 자신의 변호사실 문을 열고 사무실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 갔다. 그리고 재빨리, 조용히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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