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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pr 02. 2024

너만 아픈거 같지, 나도 아파!

나도 아프다고! 나도 눈물이 난다고! 나보고 어쩌라고?


”이상해. 아빠가 이번엔 너무 반응이 조용하시지? 그지 언니?“


골똘히 생각하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화는 혼자 떠들고 있었다. 진실은 차창 밖을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진주도 운전대를 잡고 아무 말 없이 운전만 했다.                         





진상은 빈 잔에 술을 따르며 웃었다. 에라, 모르겠단 표정으로 실없이 웃으며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시원하다.“     


수진이가 술집 안으로 들어와 술집 안을 둘러보더니 진상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수진은 진상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마주 앉았다.      


”사랑하는 와이프 쫓아내시고 속이 시원하시니?“     


”놀리지 마라. 서변호사야.“     


진상은 실없는 사람처럼 실실거리고 웃으며 술잔에 술을 가득 따르더니 또 단숨에 원샷을 했다. 수진은 참 안됐다는 표정으로 바람 빠지듯, 피식 웃더니 직원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잔 하나 더 주세요.“                         





머리에 수건을 돌돌 말아 두른 채 진실은 아무 말 없이 식탁에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겨 있다.

진주와 진화의 뒤를 따라 대문을 나서는데 소파에 등을 보이고 앉아 탁자 위에 있던 이혼 판결문 서류를 집어 들더니 손으로 서류를 꾹 움켜 잡는 대한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진주가 막 화장실에서 머리에 수건을 돌돌 두른 채 나오는데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린다. 진화가 양손에 소주랑 맥주 캔이 가득 든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와 식탁에 올려놓더니 털썩 주저앉는다. 애써 웃으며 눈치를 살피는 듯 진주를 쳐다 본다.     


”한잔 하고 털고 자자. 한솔이 파자마 파티 가고 집에 없으니 괜찮지, 언니?“     


진주는 말없이 찬장에서 소주 잔 2개와 맥주 잔 1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더니 마주 앉는다.

진실은 그런 진주를 한 번 힐끔 하고는 얼굴 쳐다보기 싫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맥주잔을 집어 들었다.

진화는 맥주 캔 하나를 따서 진실의 맥주잔에 가득 따랐다. 그리고 진주와 서로의 소주 잔에 술을 가득 채워줬다.

진주와 진화, 진실은 서로 말없이 잔을 비웠다. 진화는 시원하다는 듯 기분 좋게 얼굴을 살짝 찡그려 보이더니 비닐에서 마른 안주 봉지들을 꺼내 뜯어서 늘어 놨다. 진주는 빈 잔에 스스로 술을 채웠다. 진화는 한손으로는 진실의 잔에 맥주를 따라 주며 진주를 반갑다는 듯 쳐다 봤다.     


”오~ 오랜만에 우리 세 자매 같이 달리는 거야?“     


진화는 자신의 잔에도 기분 좋다는 듯 웃으며 술을 채웠다. 그리고 잔을 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건배 해야지? 돌아온 우리 세 자매의 합체를 위해서!“     


진실은 못말리겠다는 듯 피식 웃더니 잔을 들어 진화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갖다 댔다. 진주도 작은 한숨을 쉬는가 싶더니 ‘그래, 마시자!’는 표정으로 잔을 들어 진화와 진실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갖다 댔다.

진주, 진화, 진실은 피식 웃으며 각자의 잔을 시원하게 원샷 했다.                         





대한은 아파트 주차장 나무 옆에 서 있었다. 아파트 동 입구를 쳐다보며 담배갑을 손에 쥐고 한 개피 꺼내서 입에 물더니, 다시 담배갑에 집어 넣었다. 대한의 입에서 한숨이 저절로 새어 나왔다.

잠시 후, 아파트 동 앞으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진상의 모습이 보였다. 대한은 혼자 노래를 흥얼거리며 동 안으로 걸어 올라가는 진상을 가만히 쳐다 봤다. 대한의 발걸음이 동 안으로 들어가는 진상 쪽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가 다시 물러났다.

진상이 처음, 술에 만취가 되어 대한의 집 대문을 두드렸던 생각이 났다.      


”진실아, 제발! 나랑 결혼하자. 나랑 결혼 좀 해 달라고 이 지지배야.“     


대한의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대문을 두드리며 울면서 진실을 찾던 진상이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대한은 진상이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간 동 입구를 쳐다 보고 서 있다가 돌아 섰다. 대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씁쓸하고 슬픈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돌아 섰다.     


”지켰어야지. 그렇게 난리를 치고 결혼을 했으면 네가 남자 답게 지켜 줬어야지.“                         






거실에 웨딩 사진이 바닥에 박살난 대로 그대로 흩어져 있고, 조용한 집 안이 깜깜했다. 그래도 베란다 창 밖을 통해 외부의 불빛이 조금은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대문 여닫는 소리가 들리더니 진상이 거실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와 거실에 흩어져 있던 유리 조각을 밟은 거 같다.     


”아, 씨. 뭐야?“     


진상은 한 쪽 발로 깽깽이 하듯 식탁 쪽으로 가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유리 조각을 밟은 발을 무릎 위로 들어 올리더니 양말을 벗겼다. 그리고 발바닥을 손으로 탁탁 쓸면서 털어 버렸다.

진상은 가만히 텅 빈, 불도 켜지 않은 거실을 쳐다 봤다. 그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진상은 벨소리를 듣고 있다가 주머니에서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왜? 왜 또?“     


다그치듯 묻는 화자의 목소리가 진상의 귀를 거슬리도록 시끄럽게 파고 들었다.     


”걔 짐 싸서 나갔니? 나갔지? 아직도 그 집에 있는 거 아니지?“     


”네, 네. 싸그리 짐 다 싸가지고 나갔어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쫓아 냈으니까, 이제 이 집에 나 혼자니까, 전화 좀 그만 하라고.“     


진상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끊었다. 진상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진상은 핸드폰을 거실 바닥에 집어 던졌다.

불이 다 꺼진 텅 빈 집에서 진상은 혼자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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