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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May 14. 2024

품에서 놓아 주기, 너는 너 나는 나!

딸들 일은 이제 딸들에게 맡겨 둡시다.


대한은 화령을 지그시 쳐다 봤다. 창가 앞에 앉아 김이 오르는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화령의 옆 모습을 쳐다 봤다.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고, 파마한 짧은 머리카락들 사이로 매가 때가 되면 흰머리가 솟아 나고, 나이 육십대 후반에 접어 든 나이지만, 아직도 대한의 두 눈에는 화령이 세상에서 제일 예뻤다.

그런 화령의 얼굴에 세 딸들의 이혼으로 근심이 가득이다. 항상 품위를 유지하려 하면서도 소녀 같고 어느 면에서는 엉뚱한 곳도 있는 여자다. 그래서 항상 대한을 미소 짓게 만든다.     


“형부, 이게 웃겨요?”     


“왜? 귀엽잖아, 우리 원여사~”     


“형부, 제발 빨리 좀 오세요. 언니 때문에 쪽팔려 죽겠다고요. 제발.”     


처제인 화정도 가끔 미치려고 하는 면이 있는 화령이지만 대한은 그런 화령이 좋았다.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창밖을 쳐다 보고 있던 화령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입을 살짝 삐죽거렸다. 그리고는 커피잔을 들어 작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마셨다.     


“한숨 쉬지 마요. 뭐 그리 한숨 쉴 일이라고...”     


화령은 대한을 빤히 쳐다 봤다. 대한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은 자신의 얼굴에 뭐가 붇었나 싶어 핸드폰을 꺼내 사진 화면을 셀카로 돌려 조심스래 화면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봤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화령은 고개를 가로 저였다.     


“아뇨, 너무 조용해서 이상해서요. 막내까지 이혼했다는데 우리 강변호사님, 이상하게 조용하고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잖아요.”     


순간 대한의 얼굴이 굳어졌다. 화령의 말에 조용히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다시 커피잔을 들고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화령은 대한의 굳은 표정에 괜히 눈치가 보였다.     


“뭐, 아니. 아무렇지 않지만 않겠지만요.”     


“내가 뭐라 한들 이미 일어난 일 다시 엎을 수 있겠어요?”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지만, 애써 침착하고 부드럽게 대답하는 대한의 목소리에 화령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대한이라고 마음이 편해서 그럴까 싶었다. 쓸데없이 욱하거나 화내는 사람도 아니다. 무슨 생각이 있어서일 거다.     


“하필이면 진실이가 이 상황일 때 화 안 내서 섭섭해요?”     


“아니, 뭐.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요.”     


“당신이랑 나랑 이제 나이 칠십을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 애들 일은 애들한테 맡깁시다. 나한테까지 말 못하고 일 년 동안의 그 소송을 함께 지지고 볶으며 견뎠을 땐 자매들끼리고 뭔가 이유가 있었겠죠.”     


화령은 그런 대한을 지그시 바라봤다. 항상 화령이 생각 못하는 부분까지 깊게 생각하는 대한이었다. 그러면서도 항상 화령을 공주 대하듯 존중해 주고 화령의 자존심이나 자존감을 절대 건드리지 않는 대한이었다. 화정은 대한이 화령에게 하는 양을 보면서 항상 부러워했다.     


“언니처럼 세상 사랑 받으며 편하게 사는 여자가 어디 흔한지 알아? 형부 같은 사람 둘만 있었어도 내가 이렇게 혼자 안 산다.”     


화령은 대한과 마주 앉아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대한의 말이 맞을 지도 몰랐다. 이제는 세 딸의 일도 세 딸에게 맡겨 보는 일 말이다. 화령이 속상해 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거 다 떨어졌어요?”     


화정은 한 손으로는 계산하고 손님이 말한 곳을 빠르게 훑었다. 그리고 큰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또 만들고 있어요. 1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어쩌죠?”     


화정은 얼른 계산을 끝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이모, 다 만들었어?”     


“아휴, 지금 막 다 됐어.”     


“어, 그럼 빨리 내 줘요.”     


“아고, 알았어. 우리가 빨리 포장해서 내보낼게.”     


“고마워, 이모.”     


화정은 웃으며 윙크를 해 보이고는 가게로 다시 나왔다. 아까 다 떨어졌냐고 묻는 손님에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찾으시는 반찬 지금 다 됐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손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계산 좀 해 주세요.”     


“네.”     


화정은 큰 소리로 대답하며 계산대로 갔다. 빠르게 계산을 마쳐 드리고 창밖을 우연히 쳐다보다가 장바구니를 들고 가게 앞을 지나가는 진실을 발견했다. 화정은 동시에 계산대 놓인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확인하며 혼잣말을 했다.     


“한솔이 데리러 갈 시간이겠네.”     


화정은 잠시 길게 넓은 가게 안에 손님들이 반찬을 구경하며 고르고 있는 가게 안을 빠르게 훑었다.      


“진실이도 손맛이 좋은 앤데. 진주가 먼저 채가 버렸네.”     


화정은 아쉬운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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