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은 확정인데 왜 이리 오래 걸릴까!
"OO이 아빠 좋아?"
"아뇨."
"아빠 싫어?"
아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인자하면서도 사람의 눈과 마음을 들여다 보듯 들여다는 보는 의사 선생님의 시선과 질문에 지켜 보고 있던 나는 이게 무슨 일이지 싶었다.
"아빠 미워?"
아들은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일듯 말듯 가만히 앉아서 머뭇거리며 의사 선생님의 시선과 맞닿아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시면서 뭔가 좀 안타깝다는 표정을 애써 감춘 듯 했다.
"아빠 미워는 하지마."
의사 선생님은 그제야 나를 쳐다 보셨다.
"애가 참 선한 애네. 그런데 뭔가 눌려 있어. 엄마가 잘 안아 줘요. 나도 애를 셋을 키웠어요. 첫째가 이번에 결혼하는데 내가 첫째한테는 미안한 점이 있어요."
학교에서 하라는 건강 검진을 하러 갔을 뿐이었다. 마지막 문진 시간에 의사 선생님은 뭔가 지금의 우리 상황을 알고 계신 것처럼 아이한테 부드럽고 꽤나 자연스럽게 몇 가지 물으셨다. 자신의 얘기도 잠간 해 주시며 나와 아들을 다독여 주셨다.
"문진하는데 의사가? 우리 , OO이는 잘자라고 있다고 한 마디만 하시고 1분도 안돼서 끝났는데."
"언니 문진하는데 보통 그런 얘기 안 묻죠?"
"그러게. 희한하네."
"기분이 이상해요. 되게 부드럽고 자상하게 그러면서도 상대의 심리나 감정을 들여다 보듯한 표정과 눈빛, 그것도 부답스럽거나 거부감 없이 그런 말들을 하시며 다독이기까지 해 주시는데, 뭐지 싶었어요."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안 그래도 법원에서 7월 중순에 이혼 조정 기일을 잡았다는 통보를 받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았다.
되도록 빨리 끝내 줬으면 했는데, 얼굴도 마주 하기 싫고 목소리도 듣기 싫은 사람과 나란히 마주 앉아서 판사와 명망있는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심의관들 앞에서 또 그 사람의 변명을 들어 주고 내 얘기를 하라니, 너무 잔인했다.
어이가 없어서 변호사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몇 마디 했다.
법원도 나름의 과정이 있고 규정은 있겠지만 우리나라 이혼 소송 과정이 피해자들에게 더 고통인 것은 맞는 거 같다. 나와 아들이 이 고통을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나와 아들은 언제나 법원의 보호를 받는 판결을 받을 수 있는 건지 솔직히 욱한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대로 이혼은 확정이고, 법적인 정리가 필요할 뿐이라면서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며 피고의 상식 이하의 행동들을 감당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고통 속에 미성년자와 피해자인 원고를 방치하는 법적인 이유를 평범한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건강 검진 받으러 가라해 간 거다. 아들의 검진을 다 끝내고 마지막으로 문진 시간에 만난 의사의 말들이 계속 머리 속에 남았다.
혹시 조정 기일날 오시는 심사관 중 한 분이신가? 아니면 우연인가? 시력 얘기 하다가 갑자기 애한테 아빠에 대한 얘기는 왜 물으신 걸까? 나는 왜 그 자리에서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조심스럽게 여쭤 보질 못했을까?
그러다 그냥 우연이겠지, 설마 그럴리가 없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오늘은 참으로 묘한 날이라고만 생각하기로 했다.
조정날 당일, 그는 혼자 나왔다. 나는 내 변호사들이 참석 했다.
그는 끝까지 빚과 본인 때문에 발생한 위약금 등 불리한 건 나한테 나 떠넘기고 자신의 몫만 챙기고 사인 했다. 기가 막혔지만, 1년이 넘는 재판까지 가기엔 나와 아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렇게 이혼을 했다. 너무도 뻔뻔하고 이기적인 그와의 이별을 했다. 진짜로 끝냈다. 이 이혼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