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들은 자기가 가해자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집 주인 마냥 거실과 아들 방을 점령한 그 인간을 피해서 저녁이면 작은 화장실이 딸리 패밀리 침대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는다.
그 인간이 들어 오기 전에 재빨리 샤워를 마치고 재빨리 저녁 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해 놓아야 한다.
변호사와 경찰은 혼인 유지 중이라 집에서 쫓아낼 수는 없지만, 솔직히 저렇게 집에 들어 오면 안되는 거라고는 하셨다. 하지만 그 인간은 그 현실을 모르는 거 같다.
"그래도 아뿌가 잘한 일 한 가지는 있네."
"응? 뭐?"
나는 자려고 나란히 누워서 갑작스레 아들이 하는 말에 무슨 말이지 싶었다.
"나를 낳게 해 준 거."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나려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그 인간과 살면서 제일 후회 안하고 제일 감사하는 건 내 아들을 얻은 거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가 싫어서 말없이 아들을 꼭 안아 주었다.
"나 학원 안 다녀도 돼. 학원 못 다녀도 엄마랑 살거야."
"학원을 왜 못 다녀. 엄마가 일도 구할거고, 당분간만 힘든 거야. 다 정리되면 괜찮아. 엄마는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거야."
아들은 내 품에 꼭 안겨서 내가 등을 토닥이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더니 또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나도 아들을 꼭 안아 주며 말했다.
"엄마는 네가 있어서 너무 행복해. 엄마는 너만 있으면 돼."
"고객님 그러면 착신이랑 발신벝호 표시해 놓은 서비스 만이라도 해제 하시면 어떨까요? 고객님 명의니까 고객님이 해지 하시겠다고 하면 가능하십니다."
"아, 그래요? 그러면 지금 바로 그 두 가지는 해지해 주세요."
남의 편이 내 명의로 쓰고 있는, 내가 내 카드로 자동이체해 전화비를 내고 있는, 02로 시작하는 일반 전화 번호를 해지하고 싶었다.
이 와중에 이제는 더 이상 내 명의를 그 인간이 쓰는 거 자체가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내가 왜 지금 이 상황에 그 인간의 영업 대표 번호 전화비까지 내 줘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상간녀의 위자료가 높아지면, 상간에 이혼 소송 대상인 피고 남의 편의 위자료는 그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는데 무슨 염치와 명목으로 재산 분할을 계속 주장하며 집에 꼬박꼬박 들어 오는지도 상식적으로 다들 이해를 못하는 현실이다.
"막 나가기로 하신 거에요? 너무 이상해요."
어느 분이 얘기 듣더니 너무 이해가 안가는 얼굴로 해 주신 말씀이다. 누가 이해하겠는가 지금 저 인간을, 답변서도 상식 이하의 안하 무인으로 내서 변호사도 놀래는 중이다.
증거가 너무 낼 게 없는지 급하게 준비해 낸 첨부 사항들조차도 본인에게 전혀 도움이 안되시는데 참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라 할 정도다.
이혼이란 게 그냥 법적 정리만이 아니다. 생활적으로 정리할 게 많다.
1. 통신사 패밀리로 묶여 있는 것도 가족에서 빼 버려야 하는데 본인한테 인증 번호 받고 진행해야 한단다.
2. 내 명의로 쓰고 있는 사업상 일반 번호도 아직 약정 기간이 안 끝나 전화비도 내가 어이 없게 내고 있는데 위약금 110,000원까지 내야만 해지 가능하단다.
3. 상간에, 정서적 학대에, 유서 써 놓고 형사 출동 시킨 겁박에, 혼수도 하나 안하고 돈 한 푼없이 빈 몸으로 들어와 살아 놓고 재산 분활 요구에, 몇 달 내주고 내가 대출 받은 돈으로 할부금 다 값은 차 사 준 유세에, 그 모든 뻔뻔한 짓들에도 쫓아낼 수 없다고 집에 들어 오면 안되는데 들어 오는 정신 나간 짓까지 참아 줘야 한다.
4. 행정복지 센터에서 서류를 띠면 아직도 그 인간 이름이 세대주인 내 이름 아래 함께 찍혀 있는 걸 아직도 참아야 한다.
5. 아이가 자신의 방을 자신의 의견과 상관 없이 뺏기고 불편해야 한다.
6. 아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랑 살겠다고 하는데 아이 의견 무시하고 양육권 주장하는 걸 참고 긴 소송 기간을 버텨야 한다. (대신 그만큼 저쪽의 귀책 사유는 더 많아지고, 넘치는 증거에 소송 결과는 점점 더 확신으로 가 버린다.)
상간녀 소송과 이혼 소송 만이 끝이 아니다. 그 뒤로 소소하게 정리할 것들도 있고 위자료 받아 내기 위해 변호사와 회사 통장이든 그들 명의의 집과 차든 뭐든 압류 진행도 해야 하고, 채무 불이행 등록도 해야 한다.
판결문 나오자마자 더 강력한 일 처리들이 남아 있다.
세상을 살면서 상식의 선이란 게 있다. 이 세상을 어쨌든 사람들이 모여 살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 가는 사회이자 공동체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식 선에서 굴때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상식 선 밖으로 벗어난 언행은 결국 자신만 더 파국으로 몰아 가는 꼴 밖에는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