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아온 오리 Jun 02. 2024

세기의 이혼, 그들도 다를 게 없구나!

재벌은 다를 줄 알았다. 그래서 당당한가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진짜 부부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었다. 한 번 떨어져 버린 정은 그 어떤 강력 본드로도 다시 붙여질 수 없을 만큼 부서져 버린다.

그 부서져 버린 마음에는 잔해도 남지 않는다. 그 앞에서의 시위와 버팀은 더욱 미움과 증오만 남길 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과 결과만 존재한다.


땅, 땅, 땅!









"와! 위자료 장난 아니다. 어떻게 한 번에 20배? 30배가 올라?"


친구랑 나는 그 얘기를 하며 놀랬다. 정말 세기의 이혼이었다. 기사는 그 둘의 얘기를 앞 다투어 다루었다. 국민들도 관심이 안 갈리 없었다.

나도 지금 이혼 소송에 놓여 있는 상황이라 관심이 갔다. 솔직히 남자가 잘못 했는데도 최고의 변호사들로 구성해  여자에게 최대한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재벌의 모습에 여자의 모습이 참 초라해 보였다. 여자는상대의 귀책 사유로  남자에게도 상처 받았고, 같은 여자에게도 상처 받았는데,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으며 가정을 지키려 했던 의지마져 산산이 부서져 버렸는데, 소송마져도 결국 사회적인 힘인가 싶었다.


그런데 결과는 너무도 빼박인 상간의 증거 앞에서 재벌도 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나 싶다. 솔직히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같이 산 남자에게도 상처 받고, 가정을 뺏은 같은 여자에게도 상처 받았고, 결국 가정도 깨졌고, 아무리 성인이라도 부모의 이혼은 자식들에게도 상처일 수 밖에 없는데 법까지 내 편이 아니라면 이 나라에서 내 편은 누구일까 싶었다. 그런데 법은 증거로만 말하고, 증거로만 판결한다더니 맞긴 맞는가 보다.


상처를 줘 놓고,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상대에게 미안함도 없고, 대한민국의 일부일처제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재산 분할은 어마어마해졌다. 위자료는 몇 십배로 뛰어 있었다.


재벌도 저럴진대 명백한 증거 앞에서, 상간으로 이미 이혼은 확정인 현실 앞에서, 기생충처럼 집에 들어 오는 남의 편의 결과가 보여 나는 시원 섭섭해지려 한다. 결국 변수는 없겠구나 싶다.


너희들도 나에게 미안함과 죄의식이 없었잖아!

상간녀 답변서의 스토리가 말이 안되게 어이가 없었고, 너도 이혼 답변서를 어이 없게 제출 하겠지, 아주 오만하고 뻔뻔하게! 자기는 잘못한 거 없고,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돈 벌러 다녔으니 자신의 편을 최대한 들어 달라고!

아이의 감정과 의견과 상관 없이 어떻게든 너 살겠다고 아이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너의 짓들에도 나나 어린 아들은 달라질 게 없다는 걸 너만 모르고 있으니!


얼마 전, 아들은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색인 분홍색 운동화를 사 와서 신어 보라는 너에게 단호하게 싫다고 했지. 신어 보는 시늉도 하지 않았지.

너는 정말이지 너무 아는 게 없더라. 가족의 취향이나, 가족의 바램, 가족이 원하는 것과 싫어하는 거, 가족의 마음, 가족의 생각이나 의견 등에 대해 진짜 여전히 관심도 없고 아는 게 하나도 없더라.

언제나 네 의견, 네 생각, 네 취향으로 너만 존중 받길 바랬고 나나 어린 아들에게 그것만을 강요하고 강조해 왔지.

사람들이 그러더라 "일방적이네. 가스라이팅도 심했네."라고!


나는 소소한 거 하나라도 변호사에게 지나침 없이 정말 방대한 증거들을 보냈다. 변호사는 증거들을 한꺼번에 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소송하며 알았다. 필요할 때만 쓴다. 굳이 이 증거까지는 안 내밀어도 되겠다 싶으면 사용하지 않는듯 하다. 왜? 증거는 명백하고, 방대하고, 너희들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써야할 증거의 양이 소송 중에 정해지니까! 굳이 쓰지 않아도 되면 써도 되니까!  


이혼은 절대 인간적이지 않다. 님이 아니라 남이 됐기 때문이다.

이미 마음과 가슴 안에 그 어떤 회복의 여지가 먼지 만큼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산산 조각이 났기 때문이다.








"있잖아. 다 정리되고 엄마랑만 살게 됐을 때, 어쨌든 너한테는 아빠인 사실은 안 변하잖아. 아빠가 일주일에 한 번이든, 한 달에 한 번이든 정기적으로 만나자고 하면 만날래? 엄마는 네 의견은 존중해 주고 싶어."


"아니."


어린 아들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게 '평소에 잘하지, 가족이 먼저였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가족과 소소하게라도 즐길 줄을 알았어야지 싶어서다.


이젠 좀 나가 줄래? 그래도 애 아빠로서라도 너를 더는 증오하지 않고, '이렇게 좋지 않은 꼴로 결국 남이 되지만 잘 살아라,'하고 조금의 용서라도 하며 떠나 보내고 싶으니까!

다시는 네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고, 다시는 아는 척도 하기 싫지만,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마음으로는 어쨌든 잘 살아라, 하는 마음으로 이 집에서 내쫓을 수 있게 마지막 사람으로서의 양심은 좀 보여줬음 좋겠네.

어린 아들이 크면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얘기해 줄 거고 보여 줄 건데, 제발 아빠로서 아들에게 더는 쪽팔리지는 말아 줬음 하는 바램이 드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