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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오리 Aug 07. 2024

빠아에게 전화오는 날이 곤란한 아들

빠아는 아들이 저장한 아빠의 명칭이다.



점심밥을 먹고 있는데 아들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들의 핸드폰이 내 옆에 있었기에 집어서 건네 주는데 발신자가 빠아였다. 아들은 핸드폰을 건네 받아 발신자를 보더니 표정이 안 좋아졌다. 


"왜?"


조금은 짜증이 섞인 듯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더니 침대 방으로 조용히 들어가 통화를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었다. 30분 넘게 열린 방문 너머로 아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통화가 끝나자 아들은 입맛이 없다면서 점심밥을 더는 먹지 않았다.


"만나기 싫은데 만나기 싫은 이유를 말하래. 그냥 만나기 싫은 게 이유인데..."


아들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OOO 종이백 어딨냐고 했더니 어디 있는지 모른대."


나는 정말이지 '그 인간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만 속으로 되풀이 하고 있다. 

아들이 너무 좋아하는 유투버라 나와 친정 아빠가 백화점에서 팝업 스토어 연다는 소식에 아들을 데리고 갔었다. 가서 실물도 영접하고 사인도 받았다. 사인 받은, 구입한 물품을 소중하게도 그 유투버의 로고가 새겨진 종이백에 넣어 고이 보관해 두었다. 아들이 아끼는 물품이라 나도 함부로 손을 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사 나가면서 아들한테 묻지도 않고 맘대로 가지고 나가더니 아들이 그 종이백을 찾고 싶어 묻는데 어디 있는지 모른단다. 

정말이지 사람이 아니다.


빠아(아들이 저장한 아빠의 별칭)한테 전화 오는 날은 아들의 표정이 안 좋게 변하는 날이다. 나는 그 유투버가 운영하는 카페에 전화를 걸었다. 그 종이백을 다시 구입해서라도 아들에게 돌려 주고 싶어서 말이다.












바다가 보고 싶지만 참고 있다. 아들은 한 쪽 발에 깁스를 한 지 한 달이 넘었다. 3주가 넘게 깁스를 하느라 씻지도 못한 한 쪽 발은 피부병까지 생겨 버렸다.


폭염으로 힘든 이 여름에 한 쪽 발에 깁스를 하고 목발까지 하며 고생하는 어린 아들을 위해 나는 바다가 보고 싶은 걸 참고 있다. 아들이 우선이다. 

그나마 3주 동안의 깁스를 푸르고 씻어도 되는 반깁스를 차고는 있다. 그래도 한참 뛰어 놀고, 친구들 만나야 할 나이에 집콕을 하고 있는 아들이 안쓰럽다. 급한 동네 볼일은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나 혼자 나갔다 오곤 한다. 간혹 내가 면접 보러 갈 때는 친정 식구가 와서 아들이랑 같이 있어 준다. 

모든 볼 일은 한 시간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하고 있다. 


아들이 돈까스 사 오라고 할때, 시청이나 구청에 볼일 있을때, 간단하게라도 장을 봐 와야 할때, 면접 보러 갈때, 아들의 심부름으로 편의점에 갈때, 등 등


여름 방학이다. 아들은 깁스로 인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집콕으로 다 흘려 보내고 있다. 아들이랑 단 둘이 1박으로 기차 여행도 하고 싶었는데 깁스라는 변수에 눌러 앉아 있다. 이것도 나름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는 나에겐 글도 쓰고, 독서 지도사 강의도 듣는 나름의 시간으로 보내지고 있다.

마지막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들과 현실적인 대안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바다가 보고 싶다. 아들과 바다 앞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우리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소소하게라도 즐겁게 살자!"라고 외치고 싶다.


아들아, 그 깁스 풀자마자 엄마랑 바다 보러 가자, 알았지?  ^___^





 





몰랐다. 조정 기일이 끝나고 3일 안에 조정문이 나왔고, 피고한테도 조정문이 송달 됐단다. 그런데 2주가 넘도록 나의 대리인이신 변호인 팀은 나에게 조정문이 나왔다는 사실조차 말해 주지 않았다. 조정문 가지고 한 달 안에 구청에 가서 신고를 마무리 해야만 과태료를 안 문다는 걸 인터넷에서 알았다. 그런 사실조차 변호사는 알려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난 법원에 전화를 해 봐야만 했다. 

그러고 난 후, 오후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바로 보내 준단다. 


나는 그렇게 급하게 오늘 조종문을 건네 받아 구청에 가서 마무리 이혼 신고를 끝냈다. 그리고 조정문을 다 읽어 보고 처음으로 판사에게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그동안 피고로 인해 받은 고통과 상처, 지긋지긋한 서러움이 조금은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조정으로 끝나서 위자료는 물 건너 갔구나 했는데 아니었다.

 

피고인 그 인간에게 위자료 3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써 있었다. 양육비로 매달 말 120만원을 지급하라고도 돼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소유는 원고인 내게 있고, 친권과 양육권도 원고인 내게 있음을 분명하게 명시해 놨다. 이혼 사유는 모든 게 피고로 인한 것이라는, 민법 840조 1.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 2. 배우자의 악의적 유기, 3. 배우자 또는 그의 직계존속에 의한 심히 부당한 대우 임도 명확히 명시돼 있다.

판사가 그래도 판결까지 해 줬구나 했는데, 변호사가 답이 왔다. 변호사가 명시해 달라고 판사한테 요청해서 조정문 맨 끝에 위자료 부분까지 명시가 된 거란다. 


이제 피고, 너는 나와 아들의 일상 생활에서 아웃이다. 없다. 나는 속 시원하고 이제야 진짜 끝났구나 싶은 기분 좋은 눈물이 흘렀다. 


나의 소중한 하나뿐인 내 아들, 우리 힘내자! 힘든 순간들을 버티고 이겨내면 분명히 좋은 일도 생긴대. 그게 인생의 순리래.



(이제 3일 있다가 건강보험 공단에도 가야한다. 직원 분이 이혼하고 오면 처리해 준다고 했던, 피고가 내 명의로 유기 했던 보험료와 내가 대리 결제 해 줬던 보험료에 대해 공공 기관의 합당한 처리를 받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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