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톨스토이) -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의 소설『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첫 문장입니다. 문학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글귀입니다. 왜 이 문장이 그토록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을까요? 소설의 매력은 읽는 사람마다 자신의 관점과 해석으로 읽는다는 점이죠. 저의 관점은 이렇습니다. 이 문장이 '진리'를 관통하기 때문입니다. 저 문장은 모든 '공동체'에 통용되는 문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관점으로 문장을 바꿔 보겠습니다.
"행복한 신체는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지만, 불행한 신체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행복한 회사는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지만, 불행한 회사는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조금 더 우리의 맥락에 맞게 바꾸어 볼까요?
"건강한 신체는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지만, 병든 신체는 저마다의 이유로 병들어 있다."
"건강한 회사는 모두 비슷하게 닮아있지만, 병근 회사는 저마다의 이유로 병들어 있다."
이 말은 '진리'이지 않나요? 실제로 건강한 사람은 모두 비슷합니다. 잘 움직이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죠. 하지만 아픔은 모두 제 각각입니다. 누군가는 소화가 잘 안 되고 누군가는 어깨가 아프고 누군가는 암에 걸릴 수 도 있죠. 저는 회사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회사는 조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고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매출과 이익이 안정적으로 잘 나오거나 성장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병든 회사는 저마다의 문제로 힘들어하죠. 정부의 정책변화에 적응 실패, 타사와 경쟁에서의 패배, 공장의 화재, 부서 간의 다툼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회사가 가진 모든 어려움의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여러 문제은 여러 원인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는 여기서 그 여러 원인들 중 한 가지, '직원들의 불행감'을 만들어내는 '자신을 부속품으로 취급해 버리는 사고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입사한 이후로 부품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그냥 옆의 톱니바퀴 돌아가니까 같이 돌아가는 무지성 톱니바퀴."
"다들 퇴근하고 행복해 보인다. 나는 톱니바퀴일 뿐인데."
"최저시급 받으면서 충실한 톱니바퀴 역할로 청춘이 갈려나가는 나"
"아 직장 너무 싫다. 그냥 톱니바퀴 1개로 보는 관리자가 싫고 나가고 싶다."
"뭐 하며 사는 건지 모르겠다... 회사의 부속품으로 일하는 삶. 너무 권태롭다."
한 직장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 들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은 스스로를 톱니바퀴와 같은 회사의 부속품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톱니바퀴". 제가 정말 싫어하는 표현입니다. 톱니바퀴는 사람이라는 존엄한 존재를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사고방식입니다. 너무나 많은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하찮고 보잘것없는 '톱니바퀴'같은 존재로 취급해 버리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직원뿐만이 아닙니다. 회사를 이끌어가는 경영진도 직원들을 언제든 교체해 버리면 그만인 존재로 대하곤 하죠.
'회사의 부속품'... 왜 이런 프레임을 가지게 된 걸까요?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1764년 잉글랜드의 제임스 하그리브스(James Hargreaves)라는 사람이 '제니 방적기'를 발명하며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하여 실용화하면서 기계화 시대가 열리게 되었죠. 기계화된 생산라인과 분업화 시스템을 통해 대량생산을 갖추게 된 공장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분업 시스템에 의해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담당하게 되었죠.
당시 기업들의 중점과제는 효율성, 표준화, 생산성이었습니다. 당 시대의 흐름 속에서는 직원 개개인의 창의성이나 독립적 판단보다는 정해진 규칙과 절차를 정확히 동일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직원은 기계처럼 동일한 작업을 반복했고 관리자는 그들이 더욱 기계처럼 일하도록 관리했습니다. 이렇게 인간은 제품을 생산하는 거대한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습니다. 1936년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보면 기계적인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희의 머릿속에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의 모습이 '톱니바퀴'라는 부품으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는데도 이러한 사고의 틀이 남아있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경공업, 중화학공업 산업의 시대를 거쳐 정보통신산업과 반도체 첨단산업의 강자가 되었고 최근에는 콘텐츠 산업까지 리드하는 경제강국이 되었습니다. 지금 시대의 키워드는 창의성, 자율성, 도전정신 같은 것들입니다. 정보에 대한 장벽이 낮아지고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그들이 발휘하고 싶어 하는 역할도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데 본인들이 톱니바퀴라는 생각 하니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요.
'조용한 퇴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지만 마음으로는 그만두고 정해진 시간 내에서 업무 범위 내의 일만 하겠다는 매우 수동적인 태도를 의미합니다. 회사가 직원을 톱니바퀴로 바라보고 직원들 스스로도 본인이 부품이라고 생각이드니 직원들은 회사를 거대한 기계로 바라봅니다. 회사는 공동체가 아닌 그저 돈 버는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회사는 돈버는 도구다', '나는 부속품에 불과해'.
이런 생각을 하는 일도 하게 만드는 일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