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ADA MOMENT_24.

고요는 눈으로도, 귀로도,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by 오하다 OHADA

OHADA MOMENT_30.

단지 소리가 없다고 고요한 건 아니다.

햇살에 안긴 시골길을 걷다 잠시 쉬어간 적이 있다.

나는 그걸 눈으로 먼저 알았다.

바람이 멈춘 청보리밭에 누워

길고 얇은 비행운이 그어진 하늘을 눈에 담은 순간

정지된 채 확산하는 푸른 고요를 눈에 가장 먼저 새겼다.

어느새 내 눈은 구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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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나 자체가 소리의 일부가 된 상태.

풀잎이 스치는 음률과 흐르는 강물의 울림,

숨소리와 심장 박동마저 일체가 되어 멈춰 서는 순간.

고요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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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서 햇살이 느껴졌다.

꽤나 부드럽고 솜털처럼 따끈한 질감이 지문을 따라 부서져 내렸다.

들이마신 숨에 라일락 한 줌, 내쉰 숨에 유채꽃이 흐드러진다.

입이 사라진 자리에 흙의 향을 머금은 바람이 자유로이 유영한다.


내가 사라지고 몸의 모든 감각은 배경이 되었다.

눈으로, 귀로, 손으로 고요는 천천히 스며들어

5월의 햇살 아래 투명해진 나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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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동하는 감각의 순간 속

증발한 자아에 모순적이게도 꾸덕한 밀도감이 자리 잡는다.


아무것도 없는 이 순간이

실은 내가 가장 선명하게 살아 있는 시간인 것을.


고요는 눈으로도, 귀로도, 손끝으로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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