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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hara Sep 24. 2024

게으른 정원사와 느긋한 식물

성장일기_일상

나이를 먹어서인지 화초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냐고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자기 전에 잘 자라고 내일 보자고 얘기해 준다.


내가 화초와 대화를 하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우리 집에는 산세베리아와 금전수가 있다. 

나같이 식물을 잘 못 키우는 게으른 사람과 정말 어울리는 식물이다.  


내가 게으르다고 말하면 주변사람들이 무슨 소리냐며 깜짝 놀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개인적 성취와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들의 식사준비 이외에는 다른 것은 도통 관심이 없다. 관심을 줄 시간이 없다.  

그 점을 게으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느 날 문득 두 식물을 바라보며 식물도 운명의 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거실에서 혹은 정원에서 식물을 잘 키우는 것을 볼 때면 많이 부러워진다. 


"어떻게 그렇게 식물을 잘 키우세요!"라고 물으면 하나와 같은 대답이다.


"이거 키우기 너무 쉬워!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주면 돼!"


그들의 말을 듣고  토마토, 고추, 상추 혹은 라벤더, 담쟁이이과 식물들을  키우는 것에 도전해 보았지만 

일주일도 못 가 모두 시들어 버린다. 


그들이 자세히 알려준 대로 키웠는데도 말이다.


'난 식물 하나도 잘 못 키우는 사람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다들 쉽다는데 왜 이리 어렵냐고!'


잠정적으로 식물 키우기를 포기했다. 


그러다 몇 해 전 집안에 식물이 있으면 풍수에 좋다는 말에 1년 6개월 전에 들여놓았던 산세베리아와 금전수 

그들과 함께 들여왔던 이름 모를 식물들.


현재까지 나와 함께 있는 아이들은 산세베리아와 금전수뿐이다. 


이 아이들을 아침저녁 보고 있으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식물도 나와 궁합이 맞는 짝이 있다보다!'라며 중얼거린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 것도 싫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지는 것도 싫다. 

적당히 가깝지만 적당히 먼 거리감이 있는 사이가 좋다.

나는 적당한 거리감에 안정감을 느낀다. 


너무 가깝게 다가오면 부담스럽고, 너무 멀어지면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늘 지인향핸 진심 어린 애정은 넘쳐난다. 나만의 방식으로...


산세베리아와 금전수는 나와 닮았다.


쨍한 빛보다는 은은한 빛을 좋아하고, 집 밖 시원한 공기보다 집안의 따듯한 공기를 즐기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주는 갈증을 겨우 해소할 만큼 소량의 물을 마시지만 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아름답게 자리고 있는 모두 식물들


매일 아침에 두 아이들을 보면서 작은 행복을 느낀다. 가슴이 따듯해진다.  


'최소한의 물, 빛 그리고 관심만 주었는데 이렇게 아름답게 자라주고 있다니? 너무 예쁘다. 너희들 정말 대단하다!'


매일 두 화분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나는 식물을 왜 이렇게 못 키우지? 잘 키우고 싶은데.'


스스로를 게으르다 자책하며 식물 키우기는 나와 인연이 없는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의 게으른  관심과 너희의 느긋하고 기다림이 이렇게 환상적인 궁합일 줄이야.


내 인생에  수많이 널려있는 상황들을 정리하고 겨우 한숨 돌리는 저녁시간, 이른 아침 눈을 떠 따듯한 물 한잔 마시며 정신없이 보낼 하루를 정리하며 컵을 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다 잠시 멈춰 바라보게 되는 너희들.


나는 매일이 정신이 없지만, 너희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초록의 싱그러운 잎사귀를 반짝이며 예쁘게 나를 맞이해고 있었구나. 


나의 관심과 사랑만 기다리며...


늘 그렇게 바라봐주고 있었구나. 느긋하게 천천히 아무 말 없이 


"고맙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오늘 너희로 인해  잘 키우는 식물을 하나 없는 사람에서,  잘 키우는 식물이 두 가지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문득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생각해 본다. 


나의 사랑은 늘 정신없이 분주했다.  분명 진중하고 차분한 엄마도 있을 테지만 나는 정신없이 분주한 사랑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나의 이런 사랑을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늘 식사를 준비하느라 뒷모습만 보이는 엄마이기보다 조미김에다 흰밥만 싸 먹을지언정 얼굴 마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 오래 나눠주는 엄마의 사랑을 더 원하지 않았을까? 


받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상관없이 내가 주는 사랑만 생각하니 

사랑을 이리 주는데도 배부른 소린 한다며 아이들을 향해 불평을 하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까 생각해 본다.


나는 참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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