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하루 Nov 29. 2023

마음껏 느끼자! 퉁퉁 붓도록 울어도 좋으니.

감정 알고 느끼기



감당하기 버거운 사건을 겪으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잃기도 하고 심지어 기억을 잃기도 한다.

정말 잃어버렸다기보다 무의식에 꾹꾹 눌러 담고 돌덩이로 덮어 놓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런 사람은 감정 불감증에 걸려 있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따지면, 나도 약간은 감정 불감증이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왜냐하면 10대 중반부터 20대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거의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감정도 잘 모르겠다.


단지, 누군가 집요하게 물어보면 충격적인 사건의 사실적인 내용만 떠오를 뿐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말이다.




2년 전 만났던 상담 선생님께서도 그런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남 일이에요? 본인이 겪은 일 아닌가요? 수십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모욕을 당한 건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에요."


"아, 그런가요? 그렇긴 하죠. 근데 다 지난 일인데요. 뭐."


시니컬한 나의 대답에 상담 선생님도 좀 지쳤는지, 안경을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눈 주위를 꾹꾹 눌렀다.

1시간의 상담 시간이 거의 끝나가는데 이야기는 같은 곳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오늘은 중학교 시절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겨우 기억을 더듬어 전학 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이야기를 했건만.

그가 원하던 방향은 이게 아니었나 보다.


중간중간 선생님은 ‘힘들었겠네요? 부모님께는 말씀드렸어요? 그때 감정이 어땠어요?’ 등의 질문을 던졌고 나는 ‘잘 모르겠어요.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집안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를 간 나는 동급생 무리에 끼지 못하고 겉돌았다.

게다가 일주일 만에 학교 일진에게 단단히 찍혀 소환당해 버렸다.

내 단에는 조금 친해졌다고 여겼던 친구의 이간질 때문에.


"L이 너 2교시 끝나고 중앙 복도로 나오래."


서울에서 내려온 하얀 애를 일진이 소환했다는 특종은 일파만파 퍼졌고 2교시 쉬는 시간, 1학년 학생 대부분이 나를 둘러싸고 그 광경을 지켜봤다.


"야, 네가 선생님께 가서 일렀다며? 내가 너 괴롭힌다고! 내가 언제 널 괴롭혔냐?"


"내가 일렀다고? 그런 적 없는데."


"J가 그러던데. 교무실에 들어가는 거 봤대."


지금 생각해 보면 굉장히 황당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이다.

교무실에 들어가면 다 이르는 건가?

선생님이 불러서 간 것뿐인데, 1교시 쉬는 시간 10분 안에 나는 일진의 행태를 일러바친 내부 고발자가 되어 있었다.


내가 당하는 꼴을 지켜보는 수십 개의 눈.

짝다리를 짚고서 매섭게 노려보는 1학년 최대 권력자 L.

그 앞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나는 대형견 앞의 말티즈처럼 바들바들 떨면서도 센 척을 했다.

망망 짖기는 했지만, 십여 분간 몰아붙이는 폭언을 들으며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제대로 된 반박도 못 하고.



영화 줄거리를 설명하듯 당시를 줄줄 읊어대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시 한번 감정을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센 척하려고 했어요. 사실은 다리가 덜덜덜 떨렸지만요."


이게 뭔 동문서답인가?

감정을 물었는데, 나는 또다시 표면에 드러난 사실만을 얘기했다.

선생님은 다시 안경을 쓰고는 노트에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당시의 감정을 외면하고 있어요. 그러면 상담을 아무리 길게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정말로 상담 효과를 보고 싶으면 제대로 상담받는 법부터 배워야겠어요."


음, 그래. 내가 선생님 입장이었다면 짜증이 날 만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하고 분했다.


'1시간에 8만 원씩이나 돈을 내고 상담받는데 왜 내가 혼나야 하지?'


그래서 버럭 성을 냈다.


"감정이 도대체 뭔데요! 기억하기도 싫어서 무의식 안으로 집어넣어 버린 기억을 굳이 끄집어내서. 그때 무얼 느꼈는지! 왜 그렇게 느꼈는지! 그걸 어떻게 표현했는지! 왜 일일이 대답해야 하는데요?!"


그런 나를 향해 선생님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반박했다.


"힘들 수는 있겠지만 당시 느꼈던 걸 말하면 좋겠어요. 제대로 바라봐야 그걸 치울 수 있어요. 만약 제가 그런 일을 겪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꼈을 거 같아요. 무섭다. 두렵다. 억울하다. 분하다. 슬프다. 괴롭다. 수치심이 든다. 외롭다."


선생님이 감정을 일컫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그 단어가 쿡쿡 내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 그날 집에 돌아가서 이렇게 했겠죠. 엄마 앞에서 펑펑 울면서 봉변당한 일을 모두 얘기하고 감정을 표현했을 거예요. 얼마나 힘들겠어요. 앞으로 학교생활도 걱정됐을 거고요."


더불어 뭔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맞아. 저런 게 감정이었지.'


나는 감정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지도 잊고 살았던 거다.


"다시 말해보세요. 본인 입으로. 그때 감정이 어땠는지."


"그때 저는……. 음. 저는……."


그런데 입술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감정이 뭔지 어렴풋이 알겠는데, 심지어 선생님이 언급한 단어가 다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음에도.

나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말의 힘은 너무나도 강해서, 내뱉는 순간 폭풍 같은 감정이 몰려올 것을 알기에.

뱉어내지 않으려 꾹 눌러 담으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명치 한가운데부터 울컥한 것이 올라와 토할 지경이 되자, 나는 방언을 터뜨리듯 감정을 쏟아냈다.


"울기 싫은데……. 나쁜 놈들! 진짜 억울했어요. 엄청 무서웠어요.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그런데 아무런 대응도 못 하고 꼼짝없이 당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부끄러웠어요. 부모님께 말도 못 하고 혼자 견디려고 한 게 너무 못났고 또 불쌍해요. 힘없는 당시의 나를 인정하는 것도 쪽팔리고 수치스럽고 자괴감 들어요."


"그랬군요. 괜찮아요.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상황이었어요.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거세게 대항하지 못해요. 그래서 많이 수치심을 느끼고 자책도 하죠. 하지만 이건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본인 잘못이 아니에요. 충분히 억울해하고 슬픔을 표현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 되는 거예요."


그는 여전히 엉엉 우는 나에게 휴지 몇 장을 더 건넸다.


"뒤에 예약된 상담 없습니다. 천천히 울다 일어나도 돼요."


나는 참 오랜만에 시원하게 울었다.

1시간이 훌쩍 넘었지만 그는 내가 다 울 때까지 지긋이 지켜보았다.

간혹 눈물에 절은 휴지를 집어 쓰레기통에 버려주면서.




나와 감정의 거리는 가까워야 한다.

인생의 중요한 것들 대부분이 감정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오롯이 감정을 느껴야 가슴에 응어리가 지지 않고 깨끗하고 건강한 마음 상태가 된다.

하지만 감정을 꾹 눌러 담고 외면하기만 하면 마음 상태가 어지러워지고 결정적인 순간, 삶을 흔들어 버릴 선택을 하기 쉽다.


이런, 헛똑똑이.

한(恨), 슬픔, 괴로움 등 문학 시간에 시에 나타난 정서를 달달 외우는 것만 잘했지.

내 삶에서 감정을 제대로 느끼는 법은 배우지 못했었나 보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게 되다니!

상담받을 당시의 정서 발달 수준은 꼬꼬마 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전 02화 감정 저장고는 안녕하신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